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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Oct 20. 2024

나도 강아지는 처음이니까 너도 사람은 처음이니까

곰돌 안뇽?


어제는 네가 지구별을 떠나 강아지별로 여행을 시작한지 49일이 지나는 날이었어.

사람들이 지구별을 떠나면 49일째 되는 날을 기념하거든? 그건 49일째가 되면 목적지에 다다른다고 믿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때서야 진정 그 사람이 지구별을 떠났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날이랄까? 그래.

난 내 서재의 곰멍멍존에 놓인 너의 간식을 새 것으로 바꿔놓았지. 

혹시 네가 떠나는 길에 잠깐이라도 들러 요기라고 할까 싶어서.


네가 있을 적에 좋아했던, 해가 잘 드는 창문가 그곳을 하루에도 두어번씩 서성이곤 한단다.

분명히 락스로도 닦아낸 너의 소변냄새가 가끔 나는 것 같아서, 네가 혹시 왔다갔나 하는 생각에.

네가 어릴때 쓰던 파란색 밥그릇은 아직 있는데 꺼내보기가 두려워.

그걸 보면 네가 마지막으로 거기 담긴 물을 할짝이던게 생각이 나서 너무 힘들거든.


너의 아빠는 너를 생각하며 네가 좋아하는 닭집에 갔었더랜다.

그리고 누나는 많이 아파서 계속 누워서 잠만 잤어. 약을 먹었더니 끝도없이 잠이 오더라고.

차라리 어디가 아파서 생각을 못하게 되는 게 더 나은 것도 같아.

곰돌! 그래서 넌 강아지별에 잘 도착했니?

네 전성기때의 빠른 발걸음으로 토도도도 잘 도착했기를 바라.

네 경쾌했던 발걸음 소리. 발톱으로 바닥을 톡톡톡톡 치며 나는 리드미컬한 네 발걸음. 


우리가족은 널 정말 한없이 사랑했지만 네게 훌륭한 가족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

특히 난 그래. 널 첨 데려왔을 때는 지금처럼 너튜브도 활성화되어있지 않아서 강아지를 어떻게 대하는게 좋은지, 이럴때 강아지는 어떤건지 전혀 몰랐던 것 같아. 그저 산책 길게 시켜주고 밥 주고 물 주고 그게 다였던 것 같아. 남들처럼 애견펜션 이런델 데려가지도 못했고 또 강아지유치원도 데려가주지 못했어. 너에게 여행은 그저 근처 바닷가 몇번 가본게 다였을거야. 다른 강아지들과 어울리고, 놀고, 집에서 먼 곳에서 맘껏 뛰놀면서 즐길 시간을 주지못해 미안해. 그리고 몇개월밖에 되지 않은 어린 네게 배변훈련 시킨답시고 아무데나 쉬하면 방에서 못나오게 하기도 했었어. 지금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텐데. 정말 미안해. 변명이겠지만 그때는 나도 많이 어렸거든. 돈도 없었고. 우리 부모님도 강아지를 집안에서 키우는 게 거의 처음이었으니까 너를 데리고 함께 여행을 떠나는 건 생각을 하지 못하셨던 것 같아. 강아지를 유치원에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고. 


 너도 참 예민한 녀석이었지. 거의 집에 사람이 한명도 없어본 적은 별로 없었는데도 어쩌다가 집이 비면 온동네가 떠나가도록 하울링에 웍웍 짖어서 이웃분들께 엄청난 피해를 주기도 했었지. 그때 짖음교정기라고 목에 차서 짖으면 향이 나오는 그런 목줄이 있었는데 그때 네가 정말 무척 싫어했던 게 기억이 나. 레몬향이 나는 그것을 싫어하면서도 너는 끝까지 짖었었지. 짖고 괴로워하고, 또 짖고 괴로워하고... 결국 무용지물이란 걸 알고 너에게 다시 채우지 않게 됐지만. 나도 나고, 너도 너다. 참. 하지만 그냥 다른 방법을 썼음 어땠을까 지금와서 생각을 해. 다만 너를 괴롭히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니란 걸 알아주면 좋을텐데. 그리고 엄마가 몇일 여행을 떠나고 안계실때면 물도 안마시고 밥도 안먹고 그저 현관문쪽만 바라보던 너....그게 분리불안이란 걸 너무 늦게 알아서 교정의 타이밍을 놓친 것 같아. 하지만 네가 지난 5월에 우리가 캐나다에 있을 때 엄마목소리를 듣고 힘을 내 주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왜 그렇게 넌 엄마를 좋아했을까. 엄마는 엄마만의 냄새가 있어서 그럴까? 엄만 사실 널 처음부터 사랑한 것은 아니었는데 말야. 아마 그런 엄말 바꿔놓은 건 순전히 너의 엄마를 향한 밑도끝도 없는 사랑 때문일 거야. 


  곰돌아, 이젠 너때문에 엄마아빠가 매일같이 우시지 않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내가 때때로 네 얘길 할 때 반응이 전과 같지 않아서 나혼자 좀 섭섭할 때가 있어. 나만 너를 기억하려 붙잡고 있나 싶고. 난 너와 이번 크리스마스를 꼭 같이 보내고 싶었거든. 아마도 그날이 되면 나는 정말 많이 울 것 같아. 너의 여행도 내 맘대로 되지 않았듯이 나의 마음도 내 맘대로 되지는 않거든. 너, 뽀시래기 시절에 공원에서 너를 잡고있던 줄을 내가 놓쳤을때 기억하지? 누나가 그렇게 애타게 불렀는데 너, 아주 쏜살같이 뒤돌아서 반대방향으로 뛰어갔잖아. 

그땐 참 어이없고 웃겼는데......지금도 우리는 그러고있네?

괜찮아 곰돌. 넌 너의 길을 잘 뛰어가길 바라. 나는 너의 그런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을게!

그래도 너의 첫 사람친구인 날 기억해줘! 미워해도 괜찮아!


-사랑하는 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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