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 위의 앨리스 Oct 13. 2024

고무장갑 끼고 개 만지는 여자

곰선생에게.

곰돌, 곰도리도리, 곰탕이, 곰멍멍, 곰선생!

요즘 부쩍 너의 어린시절이 떠오르는구나.

짧은 다리로 발발거리며 집안 곳곳을 우다다하기도 하던 너의 팔팔했던 시절을.


너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엄마에게는 어린시절부터 키우던 똘똘이라는 개형님이 있었거든?

누나가 어릴 때에도 외갓집에 가면 집 마당에 묶여 있었어. 매우 앙칼진 녀석이었지.

몸집도 별로 크지 않은 것이 대문만 열면 웍!웍! 하고 미친듯이 짖으면서 물려고 했어.

누나 뽀시래기 시절엔 그래서 외갓집에 들어가는 게 두려웠지.

우리엄마는 그런 똘똘이를 빗자루로 멀리 밀어버린 다음 우리를 데리고 집에 들어가곤 했어.


우리엄만 똘똘이에게 밥을 준 적이 거의 없대. 

개를 싫어했다나봐. 

그래서 똘똘이가 엄마랑 우리를 싫어했나? 


넌 처음 우리집에 왔을 때부터 나보단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녔었지.

빗자루로 10년넘은 집강아지 똘똘이를 쫓아내던 엄마가 그래도 너한텐 무척 관대했던 거 알아?

안방에만 출입금지시켰었지 화장실에 따라들어가도 너를 제지하지 않았잖니.


밤이 되어 잠을 자려고 누나 방 방문을 닫으면 넌 나가고 싶어 낑낑대며 문을 발로 긁었었지.

네가 좋아하는 방석을 누나 침대 바로 옆에 놔줬는데도 말야.

그래서 할수 없이 문을 열어주면 넌 꼭 닫힌 엄마방 앞에서 잠들곤 했어.

왜였을까? 밥도 내가 주고, 대소변도 내가 치워주고, 간식도 내가 줬는데....


심지어 엄만 널 만지지도 못했잖니?

강아지를 어떻게 만져야 할지 몰라서, 어디서 고무장갑을 구해 와서 소파에 올려달라고 낑낑대는 널 

고무장갑을 끼고 머릴 겨우 쓰다듬어준 거 기억나?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가지고.

소파에 올려주려고 하니 엄마는 "얘, 난 강아지랑 같이 못 앉아!"라고 쌀쌀맞게 말했었는데.

그런데....

하루이틀이 지나고 몇달이 지나더니, 너와 엄마는 궁뎅이를 붙이고 소파에 같이 앉아

티비를 시청하는 소파메이트가 되어있었지.

고무장갑은 한 한달 쓰셨나???

추운 겨울이 되고 그 시절 옥장판을 거실에 놓고 쓰던 부모님은 어느새 너와 장판위에 누워 낮잠도 같이 자는 사이가 되어버렸어.

그놈의 옥장판....

겨울이 지나면 네가 꼭 숨던 엄마방 침대 밑에서 먼지와 함께 너와 뒹굴던 그놈의 옥장판.


소파에도 혼자 못 올라가던 짧다리 네가 가족들이 외출에서 돌아온 어느날, 식탁 위에 놓여진 남은 된장찌개 뚝배기에 코를 박고 있다 딱 걸렸을 때도 잊을 수가 없어. 

대체 너 어떻게 거길 올라간 거야?

덮개까지 씌워져있던 걸 어떻게 벗겼고???

분노한 엄마 손에 끌려내려와 똥같은 걸 잔뜩 묻은 얼굴을 벅벅 씻으면서

눈물 쏙 빠지게 혼났던 거 알지?

사실은 우리들 다 너땜에 그때 웃겨 죽는줄 알았다.

다행히 네가 본격 범행 직전 검거되어서 큰 일은 없었으니 웃었지만.


그래도 그 시절이 우리가 가장 사이가 좋았던 것 같아.

아무것도 모를 쌀강아지 시절, 

쉬아 아무데나 쌌다고 엄마가 날카롭게 "곰돌이!"라고 부르면 내 뒤에 쪼르르 와 숨던 시절.

그립네. 곰돌.

고무장갑 끼고 널 만지던 여자는 아직도 네 얘기만 하면 울먹인단다.

빨래를 할 때면 꼭 빨래위에 올라와 깔고 앉아서 엄마 빨래 개는 걸 방해하던 네가 떠오르나봐.

시간이 되면, 그 여자 꿈에 한번 나와서 뽀뽀나 해주고 가련??


-너의 영원한 뒷배, 눈나.


기어이 소파를 차지하게 된 곰돌군.


이전 01화 안녕 곰돌! 나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