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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Oct 06. 2024

안녕 곰돌! 나야.

 나의 절친 곰돌이에게.


헤이 친구! 벌써부터 네 으르릉 경운기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구나

나야. 너의 전 룸메이트이자 누나. (넌 내이름을 모를 것 같아 쓰지 않겠어)

짜식. 잘 지내고 있지? 

매일같이 네가 바둥거려도 안아주던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참 오래전 일인 것 같아. 

넌 좋지? 맨날 와서 귀찮게 하는 내가 없어서? 

짜식아. 너 나 아니었음 우리집에서 서열1위 최고존엄에 빛나는 생활이 가능했을 것 같아?!

열아홉살이나 됐음 이제 철들 때도 됐잖아!


너, 우리의 첫 만남이 언제였는지 아니? 2006년 9월 초, 아직 무더위가 가시지 않았을 때라구.


 너는 곤지암 근교의 한 야산에서 네 엄마멍멍이와 함께 작은 굴에서 발견이 되었었지. 나는 그때 대학교 4학년이었어^^ 학교와 본가가 꽤 멀어서 너의 형아와 함께 자취집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본가가 이사를 해서 새집이 너무 좋아 자취집에 안 가려고 최대한 학교 수업일수를 줄이려 애를 쓰고 있을 때였지.

나는 주3파였어. 아니? 주4파와 주3파는 레베루가 다르다구! 나는 주3일 열심히 학교에 나가면 나머지 4일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황금시간표를 짰단 말이지?! 그 만족감에 집에서 쉬면서 네이버라는 포털사이트를 목적없이 뒤지고 있을 때였어. 


 "산속 곰돌이네를 도와주세요"


흙으로 된 작은 굴에 아주 쪼꼬미인 너와 너의 누님?!의 뽀시래기 멍멍이들의 사진이 네이버 메인에 배너로 저 문구와 함께 떠 있었어. 난 그때까지 그렇게 털쟁이 네발짐승 너희 종족에 관심이 없었을 때란 말이지? 그런데도 그냥 눈길이 갔어. 홀린듯이 배너를 클릭하고 "유기견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라는 카페에 들어가 너희 모자의 사연을 읽게 되었어. 산에서 살던 흰둥이(엄마)가 너와 너의 누나(곰순이)를 낳고 살고 있는데 입양해서 잘 살게 해달라는 그런 내용이었어. 대학생이었던 난 그저 그렇구나...할 뿐이었어. 난 학생이고, 강아지를 입양해서 키울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너희 남매의 사진이 2박 3일동안 생각이 났어. 앉으나 서나, 잠들고 깨도 기억이 났어. 특히 누나 뒤에 숨어서 빼꼼 고개만 뺀 네 모습이 말이야. (TMI인데, 널 구해준 사람들 말론 첨엔 앞에 있는 애가 남아고, 뒤에있는 네가 여아인줄 알았대. 넌 너무 소심얌전이고 네 누난 너무 왈가닥 발랑이었다나봐.) 이상하지? 내가 짝사랑할 때도 이런 적이 없었거든. 3일째 되는 날,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고는 일을 저질렀어. 자꾸 생각이 나는데 어떡해. 그래서 댓글을 달았지. 뭐. 사실 내가 입양신청을 해도 1순위는 아니었어. 자취하는 대학생한테 누가 강아지를 입양보내 주겠어. 게다가 너희의 사진이 네이버 메인에 걸렸는데 입양하고 싶단 댓글이 좀 많았겠어?!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정말 신기하게도 내게 전화가 왔어! 

 나한테 너를 보내주겠다는 거야.


 에이~ 설마. 했는데 정말 우리 자취집으로 너를 데리고 오셨더라고. 넌 기억할지 모르지만 너의 엄마 흰둥이 보호자와 너의 누나 곰순(재롱)이의 보호자가 너를 동대문구에 있던 나의 자취집으로 데리고 오셨던거야?! 너는 그때 2킬로의 작디 작은 쌀강아지여서, 정말 작은 박스에 담겨있었어. 난 몇 장의 각서와 서류를 쓰고는 너의 보호자가 됐어. 널 처음 본 지 1주일이 되지 않아서야.


 어찌나 쪼꼬미했던지 인천의 본가에 내려갈 때 난 너를 내 책가방에 넣어 버스와 전철을 타고 가도 문제가 없을 정도였어.


 전철을 타고, 고속 버스를 타고....자그마한 넌 몇년 후의 너와 다르게 너무너무 얌전해서, 잠깐 가방 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 때를 빼고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어. 그때는 큰 개가 아니면 소형견을 데리고 타도 대중교통에서 크게 뭐라 하진 않았던 것 같아. 버스 아저씨도 꼬물거리는 널 보고 예쁘다고 쓰다듬었고 전철에서도 고개만 내민 네 작은 머리통을 몇명이나 쓰다듬었으니까. 그렇게 두어시간 가서 본가에 도착한 널 본 엄마는 어머, 너무 작네 라는 말만 내뱉었어. 너 아니? 울 엄만 어릴 적 십몇년 키운 마당개 똘똘이도 싫어해서 빗자루로 훠이훠이 하며 치우고 집안을 들락거린 사람이란 걸? 그런 사람이 너한테 고작 오메 작네? 정도란 건 거의 기적이야. 네가 참 예뻤나봐. 그래서 넌 우려와 달리 넓디넓은 집안 곳곳을 다녀도 혼난적이 없었어. 아빠야 뭐, 어릴적에 쉐퍼트를 방에 데리고 들어와서 끌어안고 자다 혼난 사람이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그렇게 넌 우리가족에게 스며들기 시작했지.


 곰돌, 네 이름을 바꾸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 그냥 곰돌이란 이름이 네 외모와 너무 찰떡이었거든. 곰돌아 곰돌아 부르는 부모님도 너무 빨리 네 이름에 적응해서 바꿀 필요가 없었어. 너도 그랬잖아. 그냥 곰! 만 해도 네 뒤꿈치를 졸졸 따라다녔었지. 곰돌! 그때 넌 2개월령이었고 난 2개월령 같은 사람나이 스물 셋이었단다. 우린 제법 절친이 될 가능성이 충만한 조건이었던 거야.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널 만나고 난 참 정서적으로 충만했던 것 같아. 털을 뽈뽈 날리며 헥헥대고 뛰어다니는 너와 행복했었어. 넌 어땠을까. 네가 말할 수 있다면 그땔 뭐라고 말할까. 늘 궁금해. 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겠지만! 그때 너는 내 쫄따구였다고. 아주 뒤만 졸졸졸~


 짧은 다리로 뽈뽈대며 다니는 게 어찌나 귀엽던지. 크~ 정말 너의 리즈시절이었다. 요즘은 SNS에 네 친구멍멍이들이 인플루언서처럼 유명해지기도 하더라고. (그때는 스마트폰도 없고 사진도 똑딱이라 동영상 찍는 것도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었다고.)그땐 아니었지만 지금은 특히 너처럼 혈통이 원앤 온리 믹스 시고르자브종들이 인기가 많아. 아~ 조금만 늦게 태어났어도 너도 위풍당당 견플루언서가 되었을지 모르는데! 암튼 뭐, 그땐 네 미모가 초큼, 괜찮았어? 배변판에 쉬아는 늘 끄트머리에 싸서 바닥이 엉망이 되고, 사람이 조금만 안 보여도 꺄울~~하고 울던 거 보면 수퍼겁쟁이는 내추럴본 같긴 해. 너의 빛나는 아가시절 사진들을 몇장 동봉할게. 네가 봐도 귀엽지? ㅋㅋㅋ 다음주에 편지할게. 안녕! 


- 영원한 너의 짝사랑, 너의 특별한 친구 눈나.


P.S. 그시절 화질이긴 하지만, 네 사진과 동영상, 네 육아일기를 블로그에 남겨뒀더니 유용하구나.

리즈사진 더 못찍어둔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

곰돌이와 곰순이. 곰돌이는 뒤에 낑겨있는 아이.
곰돌이가 온 다음날 아침.  자취집에서.
본가에 온 지 얼마 안 된 어느날. 아직도 엄마의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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