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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Jun 23. 2022

1. 자네는 왜 왔나?

왜 왔긴 먹고살려고 왔지

 



 서울은 오랜만이었다. 강남 고시원에서 짐을 빼서 집으로 와 수험생활을 하면서 한 몇 개월은 집 근처 외엔 움직이지 않았었다. 대학 졸업 때 입어보고 몇 년동안 안 입어본 검은 투피스 정장을 입고 강남 한복판에 있는 고층빌딩 29층에서 스물다섯의 나는 누구나 들어보면 아는 TOP10 대기업 건설사의 인턴 면접 대기중이었다. 복도에는 똑같은 복장을 한 20대 후반 즈음의 수십 명의 남자들과 열 명이 채 안 되는 여자들이 저마다 긴장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우린 사회의 루저들이었다. 나는 그들과 한 뭉텅이로 묶여 같이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취업을 못한 백수들이다. 나라에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6개월동안 체험이나 해보라며 반강제성으로 대기업인턴으로 채용토록 했고 나는 은혜로이 그 시혜를 받아보고자 줄을 섰던 것이었다.     



 내 차례가 다가왔다. 한 조당 다섯명인데 내 뒤에 한 명이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인사담당자가 그의 이름을 두 번정도 불렀을 때 엘리베이터 쪽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담당자에게 간신히 대답하고 내 옆에 앉았다. 헉헉대는 그가 참 안돼보였다. 나는 내가 부채질하는 척하면서 그에게 살짝 부채 바람을 나눠주었다. 그는 애써 땀을 닦아보지만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가 앉고 1분쯤 되었을까. 면접관이 안쪽에서 우리 조를 불렀다.     



 “사범대를 졸업했네. 졸업하고 꽤 됐는데, 뭘 했어요?”     



 물어볼 줄 알았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고 잘 되지 않아서 취업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러자 또다시 물었다.     



“선생님이나 될 것이지 건설회사는 왜 지원한거죠?”     



 그것도 물어볼 줄 알았다. 하지만 선생님이나 라는 말이 거슬렸다. 나는 선생님 되려고 했던 게 아닌데. 그리고 선생님이나 라니. 나는 그것도 대답했다. 교육학은 사람의 성장과 가능성에 관한 학문이다, 그러니 이런 대기업에서도 내가 배운 것들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좋은 대답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왜 지원했긴. 먹고살려고 왔다 이눔아. 이 말을 돌려돌려 저렇게 포장하느라고 참 고생했다.


 그때 같은 조의 멤버들이 모두 남자들이었다. 그들에겐 전공에 대해 좋게 물어보면서 나에게는 저따구로 물어봤다는 게 벌써 난 틀려먹었구나. 그땐 다들 그렇겠지만 자존감은 바닥을 내리치고 서류에서 탈락될 때마다 아 이게 내 바닥이 아니구나를 매번 갱신하며 땅을 파고있을 때다. 그런 내게 질문공격은 채 5분의 시간이었어도 영겁처럼 고역이었다.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리는 시간이었는지. 인턴은 쓰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그 많고많던 지원자 중에서 겨우 20여명 뽑는단다. 우리 조에서 제일 점수를 잘 받아도 될까말까인데. 될까? 안 되겠지. 아. 떨어지겠구나.      


 29층을 같은 조 멤버들과 함께 내려가게 되었다. 29층은 정말 높은 층이었다. 내 생전 그렇게 느린 엘리베이터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기대하지 않고 매일같이 사람@을 들락거리며 원서를 쓰던 어느날.


지원자 박@@님 합격을 축하합니다. 라는 메일을 받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 4대 보험이 가능한 6개월짜리 첫 직장을 얻게 되었다.

장하다 박@@. 퍽 실감이 나진 않았지만 나는 출근을 하게 되었다.


추가. 그때 지각한 남성분은 떨어졌다.

면접때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았어도 나만큼

다굴 당하지는 않았는데 내가 붙은 건 왤까.

면접도 알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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