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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Jun 24. 2022

2. 인턴 나부랭이에서 갑님으로

내인생 최초의 롤러코스터 6개월

 


 업무담당부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몇월 몇일까지 면접장소로 와서 계약서를 쓰라는 말만 들었다. 

미리 알 수는 없는걸까. 나는 잔뜩 기대하며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그 곳에는 20명 남짓한 사람들이 와 있었다. 인사담당자는 한명씩 호명하며 근무지를 불러주었다. 그런데 엥? 본사가 아닌 경우도 있다? 나는 설마설마 하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마침내 내 이름이 호명되었고 나는 현장 발령을 받았다. 다행인 건 우리 동네라는 점이다. 설마... 우리 동네라서 붙여준 걸까. 생각하며 담당자에게 물어보았다.      



“저...혹시 제가@@동네에 살아서 붙은걸까요?”


“그건 아니구요. 면접보실 때 현장근무 가능이라고 체크하셨죠? 고려해서 배정했습니다.”     



내가 그랬나? 그랬나보다. 절박한 마음에 현장근무 가능여부 체크박스에 당연히 가능을 체크했던 것도 같다. 그제서야 기억이 난다. 헉. 근데 난 기술직군도 아닌데 건설현장에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심란한 마음을 안고 내려와서 합격자 카페에 들어가 질문을 해보았다. 전기에 뽑은 인턴들이 있는데 현장 인턴도 있는 것 같아 그에게 쪽지를 보냈더니 아마도 공무나 회계 경리 직군일 것 같다고 답장이 왔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 공무는 뭔가. 회계는...공부 해본 적도 없다. 문과라고 다 회계를 아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첫 출근 날이 다가왔고 나는 약속된 시간에 현장으로 갔다. 그 현장은 해당회사 사옥을 짓는 곳이었다. 건설 중인 건물 외벽에 붙어있는 엘리베이터(호이스트)를 타고 20층까지 올라갔다. 호이스트에는 안전모에 작업복 차림의 아저씨들만 즐비했다. 검은 정장 차림의 내가 이상한지 사람들은 나를 힐끗거렸다. 가뜩이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기겁을 할 뻔했다. 어찌됐든 사무실이 20층이라니까 가긴 가는데. 나 이래서 다닐 수 있을까. 호이스트를 타고 내린 곳에는 사무실이 진짜 있었다.      



 자재를 들고 가던 아저씨와 잠깐 부딪혔다. 그러면서 스타킹 올이 나갔다. 안 어울리고 우스운 꼴을 한 채 나는 사무실로 들어왔고 인사를 했다. 관리과장이라는 분이 나를 소장님께 인사시켰다. 현장 사무실에는 몇십 명이 되는 직원들이 앉아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 작업복 차림의 수십명의 직원들 사이에서 검은 정장에 올나간 스타킹을 신고 말이다.  


 팀장급의 직원분들 몇몇이 의논을 하더니 내게 와서 경리 업무를 보는 직원의 보조를 하면 된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차차 배울 것이라고 했다. 진짜 일을 시키려는 건지 뭔지 모르겠다. 나는 건설의 기역 자도 모르는 사범대 출신의 문송한 졸업생이었다. 직원들은 내게 안전모, 각반, 작업복, 작업화를 주었고 나는 쓸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것들을 입었다. 물론 현장구경을 다음날 시켜주기는 했다. 그래도 뭔지 잘 모르겠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적극적으로 뭘 어떻게 하는지 자체를 몰랐다. 지금보다도 더 소심했던 나는 진짜 하나하나 알려주지 않으면 모르는, 백지상태의 졸업생이었다. 그런 나를 현장에서는 그저 취업 전에 잠깐 왔다가는 애 정도로 생각했을 것 같다. (현재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몇 달짜리 체험형 인턴들에게 일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런 상황을 내가 좀더 빨리 파악했더라면 좋았을까. 그냥 앉은 자리가 바늘방석이었고 소화는 늘 되지 않았다. 바쁜 와중에 그런 인턴까지 혹으로 달고 있었을 직원분들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내가 눈치를 보며 몇 달을 현장사무실에 다닌 후에야 현장에서 본부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주었다. 물론 같은 동네에 있었지만 현장과 본부 사무실은 천지차이였다. 본부에서 나는 임원비서의 일을 지원하고 약간의 행정업무를 했다. 다행히도 그때 나는 내 처지를 너무 잘 알고 취업준비에 매진했고, 비슷한 계열의 공공기관에 입사지원을 했다. 두군데에서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을 오라고 연락을 받았고, 그 중 한 곳에서 최종 입사 통보를 받았다. 그게 현재의 직장이자  최초의 정규직 직장이다.      


 이 회사의 필기시험은 전공과 영어, 상식이었다. 상식은 솔직히 말해 내게는 어느 회사 시험이던 쉽게 느껴졌다. 그전에 공부하던 것들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회계쪽의 지식이 없다보니 전공시험에서 그 부분이 좀 어려웠다. 필기는 어렵지 않게 붙었던 것 같다. 그리고 면접에서는 토론면접과 전공 등 질문면접이 있었다. 토론면접에서는 무난했던 것 같고 전공면접에서 두개 정도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였지만 나머지 질문에서 잘 다른 후보자들보다 잘 대답했던 것 같다. 특히 회사입사 후 소원이 뭔지 말해보라는 질문에 결혼하겠다거나 회사에 뼈를 묻겠다거나 하는 뻔한 대답을 한 후보들보다는 확실히 나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집을 짓겠다고 말했다. 사실 큰 생각을 했다기보다 진짜 그냥 소원이라 한 말이었는데 부동산 개발회사 직원으로는 집을 사겠다거나 집을 짓겠다는 답변이 더 와닿았을 것 같다. 


 인턴이었던 회사 건설현장에서도 그렇고 사무실에서도 나는 약간 천덕꾸러기 같았다. 건설분야에 어떠한 배경지식도 없이 뭘 하려해도 어려웠다. 하다못해 회의용 자료를 취합할 때도 건설용어 자체를 아예 모르다보니 오타도 발견해내지 못했다. 그런 나를 써먹으려 노력했을 모 차장님께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 (이 글을 읽게 되실지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생각해도 노답이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중엔 눈치보지 않고 남는시간엔 시험준비에 매진했다. 어떻게든 내가 빨리 취업해서 잘된 케이스로 나가면 그 회사에 또 다른 고객이 될 테다. 아마도 이 대기업에선 그런 효과를 기대하고 있지 않았을까.      



 나는 회사에서 기대한 대로 그 기수의 인턴 중 정규직으로는 최초로 취업에 성공한 케이스가 되었다.

그것도 건설사들의 갑의 위치에 있는 시행사이자, 공공기관이었다. 인턴나부랭이에서 갑님으로 지위가 수직상승했다. 회사에서도 다르게 봤다. 내게 생전 말 한 번 걸지 않았던 옆 팀의 다른 직원들도 축하한다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본부 상무님도 요번에 취업 되었다는 인턴 누구냐며 축하해주셨다. 나는 회식자리마다 불려다녔다. 얼떨떨 했지만 좋긴 좋았다. 내가 이제 드디어 사람 취급을 받는구나. 긴 터널에서 이제야 빛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땐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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