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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Jun 27. 2022

3. 사원증은 걸었는데

커튼월 건물은 어디에 있나요?





  전에 인턴으로 일할 때 사원증을 패용한 정규직 여직원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20대 중후반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뽀얀 얼굴에 늘씬한 몸으로 하늘하늘한 원피스나 정장 펜슬스커트를 입은 그녀들이 지나가는 길마다 파우더같은 향이 퍼졌다. 그런 옷 자체가 부럽다기보단, 그들에게서 풍겨나오는 분위기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여유와 자신감. 거기에서 나오는 안정감. 한창 이력서를 쓰던 나도 언젠가는 직장에 들어가 저런 모습이 될 수 있겠지. 꿈꿨다. 커튼월로 된 고층빌딩숲으로 출근해서 사원증을 목에 걸고 띡-하는 시크한 디지털소릴 내며 당당히 건물안쪽으로 출입하고, 점심시간이면 파란 목걸이의 사원증을 패용한 채 근처 식당에 나가 밥을 먹고, 스타벅스에서 식후 까페라떼를 즐기다, 돌아와서 다시금 멋진 직장인 모드로 돌아가는. 



 모든 회사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가 인턴으로 다니던 회사의 계약직 여직원들은 일상복 차림이었다. 굳이 빼 입고 다니면 매우 우스워 보이거나 튀어보일 것 같은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아무도 청바지를 입으라고 한 건 아니지만, 엄연히 신분과 직급이 명확한 세계에서 나 혼자 정장 차림으로 다니는 것은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계약직이었던 나의 업무는 주로 영수증 처리, 행정업무 지원과 커피 등 다과를 준비하는 일 정도였다. 월급 또한 아주 적었다. 나와 비슷한 수준의 대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환경에서 나는 언젠가 나갈 직원, 이었다. 그런 내게 일을 가르쳐줄 필요도, 굳이 싫은 소리를 해가며 관심을 줄 필요도 없었다. 커피 타 주고, 전화 좀 받아주는 그런 애. 같은 회사지붕 아래 있지만 정직원인 “그들”과는 급이 다른 애. 나도 굳이 이력서를 넣거나 취업준비중이라는 걸 숨기지 않았다. 정규직이던 아니던 같은 직원이고 같은 사원복을 받고 회식을 함께 했지만 나는 그들과 다른 종족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그들을 보며 나는 꿈을 꿨다. 언젠가는 나는 그들과 같은 것을 누리고 살기를.



 우여곡절 끝에 최종 입사 통보를 받았다. 사실, 그렇게 크게 감흥이 오진 않았다. 물론 너무 원했던 취업이었지만 면접 때 본 본사 건물은 내 상상속 직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람인에서 본 연봉은 너무나 적었다. 그것까진 괜찮았다. 빌딩숲이 있는 강남 테헤란로나 종로, 용산의 그 곳과는 사뭇 다른 곳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사는 곳보다도 더 시골같이 낙후된 구도심에 저 구석에 쳐박혀있는 오래된 임시건물처럼 보였다. 아주 오래된 관공서나 초등학교같은 느낌? 과장 조금 보태면 일제시대에도 썼을 것 같은 관공서 비주얼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계단이 딱 보이고 양옆으로 사무실이 있는 구조의 옛날건물이었다. 최종면접 때 들어갔던 임원회의실만이 그나마 아, 리모델링은 한번 했구나 싶은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런데 화장실은 더했다. 2칸밖에 되지 않는데 하수구 냄새가 조금씩 올라왔다. 



더 놀랐던 건 회사 앞 풍경이었다. 21세기에 다방이 왜 이리 많어? 

 나는 고맙게도 없는 친구 중 두 명의 신원진술서를 받아 임용등록을 하러 그 회사로 갔다.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한 시간 정도를 가서야 회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서류를 내고 나오니 점심시간이었다. 직원으로 보이는 시커멓고 똑같은 공장잠바를 입은 직원들이 회사로 무리지어 들어갔다. 잠깐. 아니 지금 왜 저런 옷들을 입는거지? 정장수트차림의 멋진 오빠언니들은 어디에 있나요? 그리고 그들의 신발은 삼선슬리퍼. 언니들은 머리를 질끈묶은 채로 거의 맨얼굴 수준의 얼굴이었다. 아. 맨얼굴의 여인들을 폄하하는게 아니다. 내가 상상하던 직장과 직장인의 모습이 아니라는 뜻이다. 



 주변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속에서 나의 마음은 복잡했다. 이곳이 정말 맞나? 싶었다. 취업준비생이자 대기업의 인턴 나부랭이인 내가 지금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다들 공기업이다 신이 내린 직장이다 이 정도면 최상급이다 손을 들어 축하해 주었건만 나는 뭔가가 내가 원하는 그것이 아닌 것 같은 불만감을 가지고 있었다. 



 손에 그렇게 원하던 파란 목줄의 사원증이 쥐어졌다. 나는 드디어 정규직 공기업 직원이 되었다. 전에 있던 대기업의 하늘 높은 데 있던 상무님도 이곳에 취업되었단 얘기에 반장난으로 “갑님” 이라며 술을 두손으로 따라주셨다. 이 조직은 그 정도의 권위가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엔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내가 이런 곳에 취업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던 건가? 허무했다. 그렇게 쥐어진 사원증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니, 너무 짧았다. 앞으로 겪어봐야 알겠지만. 그냥 시작도 전의 내 마음은 허무함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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