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갑지 않은 목소리의 습격
휴직한 지도 어언 반년이 지났다.
나는 처음보다는 확실히 사람 꼴을 하고 살고있었다.
해가 바뀌었고, 나는 아픔의 이유가 되었던 많은 것들을 해소하였고,
또한 내 인생의 과제들도 조금씩은 해결하고 있었다. 이 모든 건 시간과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회사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무슨 일을 해야 하나를 고민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이제 좀 숨을 돌렸는데 돌아오라고? 전혀 그러고 싶지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의사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제 상태는 회사에 가도 되는 상태인가요?"
"회사에 갈지 말지는 앨리스님에게 달렸습니다."
"그럼, 저는 치료가 필요 없는 상태인가요?"
"아뇨. 아직 앨리스님은 계속 병원에 다니시면서 약을 줄이셔야 합니다. 천천히 쉬시면서 회복하는 것도
좋고, 회사에서 부딪히면서 균형을 찾아가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럼 저는 더 쉬고 싶습니다."
의사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전과 같이 진단서를 끊어주셨다.
나는 휴직계를 다시 회사로 보냈다. 회사에서는 다행히도 휴직 연장 처리를 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남쪽으로 떠났다. 어느 날은 항구에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매화가 피는 장터에 가기도 했다.
운전을 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날 묵은 숙소를 취소하고 집으로 가던 길이어서 혹시 숙소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다.
"앨리스 씨? 나 본부장이야."
아. 그놈이었다.
나를 골로 보내버린 그 놈 목소리.
본부장은 확실히 언성을 높이거나 흥분하는 스타일의 상사는 아니었다. 조곤조곤하고 자기고집이 확고해
꼼꼼한 성향의 사람들에게 잘 맞지만 너무 완고하고 선입견이 강해 함께 일하기 편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예의 조곤조곤한 말투로 나를 두번 죽인 그 인간.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상사인지 몰라도,
내게는 마주하기 싫은 사람이었다. 혹시나 내가 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에게 예의 그 직선적 태도로 할말 다 해버릴까봐 피한 것도 있었다. 그런 일은 내가 퇴직을 하거나 그가 퇴직을 하거나 이제 정말 볼일이 단 한번도 없겠다 싶을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에서야 그게 뭐 어렵다고 할말도 못하나 싶지만, 그때는 그 정도로 회복이 된 게 아니었다. 어떻게 죽인 건지는 아래 두 글에서 확인 가능하다.
그는 내게 잘 지냈냐며 상태가 안 좋은 내 목소리를 느낀 건지 돌아오면 무조건 원하는 부서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돌아오면. 이라.... 원하는 부서라는 말이 전혀 신경쓰이지도 않을 만큼 나는 그 회사에도 그에게도 신뢰가 없었다. 그에게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다기보다 나의 분노와 울화의 원인이 된 회사를 대변하는 입장인 임원의 전화가 당연히 반갑지 않았다. 나는 그냥 의미없는 네 라는 대답만 반복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어쩌면 크게 악의가 없었을지 모른다. 관리자는 나만 관리하는 게 아니다.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의 직원을 관리한다. 그런 그가 내가 아픈지 어쩐지, 이말을 하면 상처를 받을지 안 받을지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싶기는 하다. 그런데 나 역시도 아무리 노력해봐도, 내가 상사라면 그런 말을 뱉을 수 있을까? 입장 바꿔 생각해봐도 이해가 도통 되지 않는다. 너무 마음에 안 드는 직원이라 할지라도 그런 식으로 비하는 안 했을 것 같다. 생각하면 할 수록 그와 마주치기도 싫고 통화하기도 싫었다. 손에 칼 안 들었다고, 쌍욕 안 했다고 사람을 안 죽이는 건 아니다. 사회생활이라는 미명 하에 나도 견뎌 온 세월이 있었다. 더는 참고 싶지 않았다. 여기 담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 말로 다 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당신도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을 참아왔을 테지만 나에겐 더이상 기운도 의지도 없었다. 그래서 휴직 면담도 안 했다. 분명 말릴 테고 나는 들을 생각도 없었으니까.
처음 그가 모욕을 주었을 때는 모르니까 저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나 역시도 조곤조곤 설명하며 반박했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했던 일이 어떤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었으니까. 업무를 다 몰라서 그럴 수 있다고 바보같이 착각하고 열심히 설명하기 바빴던 지난 날의 나를 반성한다. 인간이 너무 보이는 게 다라고 바보같이 생각했던 거지. 한국 사람들의 표현법이 가끔 너무 저열하다 생각되는 이유는 돌려말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더 모욕을 주는 것임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럴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조적으로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안 되는 관계에서 무슨 할말 있으면 다 해보라는 말은 왜 하는건지. 그럴꺼면 진짜 감정없이 받아들이던가. 받아들일 생각도 준비도 안 돼 있으면서 말이다.
훗날 들은 얘긴데 이 분이 내가 최초 휴직을 낼 때도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땐 전화기고 뭐고 그냥 시체처럼 늘어져 있을 때여서 당연히 받지 않았었다. 회사에서 어떤 처분을 하던지 말던지 신경 쓸 여력이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그나마 지금은 나아져서 사람이 된 거지. 가족들도 그렇고 의사도 그렇고(나중에는 직원들도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그때 너의 상태가 심각해보였다고) 휴직 전이나 휴직 직후에 나는 사람꼴이 아니었다고들 말했다. 나는 내 꼴이 어땠는지 잘 모른다. 그땐 그냥 버티기에 바빴으니까. 아마 본부장은 얘는 뭔데 전화도 안 받냐고 한마디 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의 번호를 저장했다. 그의 이름은 "본받지마요"
나에게 6개월이란 시간이 더 주어졌다. 회사에는 더욱더 신경을 끊고 앞으로의 내 삶에 더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끝이 퇴사라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