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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Jun 04. 2022

예비 퇴사자의 고민

어떻게 살고 싶은가 - 퇴사자 인더 하우스를 꿈꾸며


휴직을 하니 남아도는 건 시간이었다.

자, 그래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 나는 빨리 퇴사하고 진정한 자유인으로 거듭날것인가.

그리고 숨만쉬고 살까. 그렇다면 의식주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순 의식주 때문에 계속 회사를 다녀야되는 거라면 다시 복직했을 때 최악의 상태로 돌아오는건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나는 살려고 STOP 버튼을 눌렀다. 생계를 유지하겠다고 다시 사지로 들어갈 사람은 없다.

 

회사를 그만둬야 할 이유와 그만두지 말아야 할 이유는 비등비등하다.

안정적이고 워라밸도 괜찮다. 하지만 보수적이고 발전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나와 결이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이 회사가 나쁘냐 좋냐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고싶은가 이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많은 퇴사희망러들과 휴직자들, 그리고 매일같이 가슴에 사직서 하나쯤

품고 살고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며 내가 휴직 중, 그리고 복직 후에 했던 고민과 과정, 그리고 잠정결과를 간단히 공유해본다.



1.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


  퇴사를 원하는 사람들은 99.9퍼센트가 지쳐있다.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도피성이나 홧김에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쉽다. 정신과 육체가 어느정도의 안정을 찾은 상태에서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물론 쫓기듯 하게 된 선택이 대박이 날 경우도 있지만 우리는 가능하면 중대결정은 휴가를 내든 아니면 퇴근 후 일정시간을 할애해서 쉬든 지치지 않은 프레쉬한 상태에서 결정하는 것이 좋다. 일시적으로 지쳐서 그만두고 싶은 거였거나 여유를 갖고보니 퇴사하고싶은 사유가 애초 생각보다는 중대하지 않다면 쉬는 기간에 자신이 알아챌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건강상태가 안 좋았기 때문에 휴직을 선택했다.  정확한 나 자신의 사태파악을 위해서는 그 시간이 꼭 필요했다.



2. 나 자신 알기


 퇴사를 선택할 때 사람들은 자신을 들여다보기보다는 몸담았던 조직을 본다. 그리고 판단한다. 조직문화, 급여, 평가, 인간관계.... 하지만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뭔지에 대한 고민은 뒤로 미뤄둔다. 나 자신을 알라는 건 주제를 알라는 뜻이 아니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 가고자 하는 방향, 앞으로 10년 후 내 모습을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나의 경우 내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조직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란 걸 마흔이 다 되어서야 알게됐다. 창의적인 일을 좋아하며 급여나 지위, 승진에 별로 목말라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제서야 깨달았다. 변화에 민감하며 루틴하거나 규칙에 딱 짜여져 있는 일에서 흥미를 전혀 못 느낀다. 경쟁심이나 승부욕이 있는 건 또 아니어서 집단생활에서 도태되기 딱 좋은 기질을 가지고 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다. 시간, 공간의 제약을 받기 싫다. 또 내 신상이나 사생활을 간섭받거나 남들에게 평가받기도 싫다. 남을 평가하기도 싫다. 나는 나만의 독특한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을 설명하거나 숨기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부자일 필요는 없다. 하루에 한두끼 정도만 먹으면 된다. 친구 별로 필요없다. 나는 앞으로 그런 자유로운 세상에서 평가받지 않고 살고싶다. 10년 후에도 나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살고싶다. 꾸준하고 성실한 것으로는 사실 어릴때부터 인정받은 편이고 매사 대충대충 하는 사람은 또 아니다.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하고 재미가 있어야 일을 바짝 하는 성향이지만 그래도 그 일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내게 맞는 직업은 프리랜서다.


 그 후에 내가 잘하거나 좋아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본다.   


 나는 취미부자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데 주저함이 없고 호기심도 많다. 그런데 쉽게 질리는 편이고 꾸준히 하는 일은 몇가지로 압축된다. 글쓰기, 운동, 여행이다.

나는 글쓰는 것을 좋아하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해석하는 일도 좋아한다. 그런데 남의 작품을 번역하거나 평하는 것보다는 내가 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일기를 꾸준히 써 왔다. 장르를 불문하고 학교에서 쓴 글로 상도 곧잘 받았으며 대학에서도 회사에서도 글을 쓰거나 교정, 편집해서 기사를 내보내는 일을 하기도 했다.

 

 운동은 취미라기보다 내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이다. 나는 몸쓰는 일을 꽤 좋아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락실에 달려가서 농구게임 앞으로 간다. 그다음엔 사격이다. 집안에 있을 땐 청소를 한다. 공황장애가 오고나서 추천받은 필라테스는 2년째 꾸준히 하고 있다.


 여행은 내가 일하는 이유이며 직장인 신분인 내게는 도피처이다. 좁은 인간관계와 답답한 조직사회에서 벗어나 1년에 1~2회 해외로 나가 자유롭게 새로운 세상을 보며 해방감을 느꼈다. 그 한번의 여행을 기다리며 1년을 버티곤 했다. 새로운 세상에는 나의 직업이나 나이, 결혼유무, 업무성과로 평가하는 인간이 없다. 그곳에서 나는 그저 한 이방인이 된다. 여행은 주로 혼자 하는데 어디엘 가든 신기하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 그리고 오히려 매이지 않은 그 사람들과의 대화가 훨씬 깊이도 있고 치유도 된다.  긴 시간을 알아온 동료나 지인보다도 짧지만 내 영혼을 자라게 하는 대화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랑 조금 더 하자면 나의 여행계획은 정말 가성비가 끝내준다. 내가 찍은 여행지를 갈 때면 나는 6개월전부터 30분 단위로 동선과 대안을 고려한 여행계획을 짜고 90퍼센트 이상 꼭 달성하고 온다. 그렇다고 안 쉬는 것도 아니다. 나는 맞춤여행에 특화되어 있다.  물갈이도 거의 안 한다. 시차적응 끝내준다.  


 여행을 가서 글을 쓰며 돈을 벌수 있으면 좋겠다. 는 잠정적 결론이 났다.



3. 천리 길도 한 걸음 부터


물론 작가는 셀 수 없이 많다. 요즘은 영상 시대라 유튜버들도 많다. 그들은 특출나다. 하지만 난 평범하다. 그런데 평범함의 위대함을 나는 안다. 이건 나의 장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일단 써보자고. 내 이야기부터 하나씩 써보자고. 한 명이든 두 명이든 독자가 있다면 써 볼 가치가 있었다.  일단 일기부터 썼다. 우울할 때도, 무기력해서 하루종일 누워있을 때도. 한줄이든 두줄이든.  조금 나아진 후에는 하루에 30분씩은 꼭 컴퓨터 앞에 앉아 뭐라도 쓰려고 했다. 공모전도 냈고 물론 고배를 마셨지만 수확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다 브런치를 알게 되었고 될까? 하는 마음에 글을 내봤는데 덜컥 글을 써보라며 편지가 왔다. 아무것도 안 하고 머릿 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 보단 작은 것부터 실천하다 보니 그래도 이렇게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



4. 시간과의 싸움


 브런치에 글을 올릴 수 있게 된 거지 아직 작가가 되었다고 하기에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나의 가능성을 믿는다. 누구보다도 다이나믹했던 나의 지난 과거사는 글감으로는 차고 넘친다. 내게 필요한 건 그것들을 "잘" 생각하고 "잘"읽히도록 쓰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물론 나는 아직 회사 소속이다. 하지만 내 마음 속 본업은 글을 쓰는 일이다. 회사에서는 회사가 요구하는 업무수행을 하되 최소한의 에너지를 쓴다. 승진할 거 아니니까.  이런 나를 자르던지 인사조치 하는 것은 회사에서 알아서 판단할 일이고, 나는 내 길을 간다. 본업에 중대한 방해가 된다면 회사는 언제든 그만둘 작정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회사에 대한 마음도 스트레스도 달라졌다. 퇴사는 실제로 사직서를 내느냐 마느냐로 판가름나는 거긴 하지만 가고자하는 방향과 마음가짐을 분명히 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5. 선택의 문제. 감당하실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란 말은 사회인들은 누구나 알 것이다. 기존의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포기하는 대가는 분명 있다. 쉽게 말해 내가 백수(또는 프리랜서)라는 길을 선택했을 때 당장 따라오는 필연적 가난과 사회적 지위의 상실을 받아들여야 된다는 것이다. 경제성을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파이프라인을 구축해두고 나서 그것이 안정되었을 때 회사를 버리겠지만 인간사가 다 경제적인 원리로 돌아갈 수는 없다. 회사 다니면서 내가 미치고 팔짝 뛰겠다면 빨리 도망나와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문젠 이럴 때다. 우린 선택을 하여야만 한다. 어쩔수 없이 하이리스크를 선택했을 때 오히려 크게 돌아올 수도 있다. (꼭 그렇지 않을 경우도 많다) 그런 모든 위험성을 감수하고서 내가 한 선택에는 책임을 져야만 하다. 오롯이 나의 앞날을 담보로 말이다.   혹시라도, 부모님이 재력이 좀 되신다던가 모아놓은 돈이 있다면..이런 고민도 안 하겠지?


  나의 경우는 회사에서 "아직은" 뛰어내리지 않았다. (나중에 글로 이 지난한 과정이 서술될 예정이다) 하지만 업무가 바뀌거나 예전의 그 과정이 되풀이 될 상황이 오면 바로 뛰어내릴 준비를 하는 것이지 계속 다닐 생각도 의지도 없다. 마지노선과 잠정 결론은 이미 마음속에 내려졌다는 의미다.

 선택은 용기의 문제다. 무작정 뛰어드는 것도 어리석다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다만 나란 사람이 어느정도로 감수할 수 있을지, 얼만큼을 책임질 수 있는지는 정말 냉철하게 생각해보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내인생은 아무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데다 단 한번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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