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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Jul 22. 2022

오늘은 힘들었지만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

오늘의 불행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얼마 전, 나는 친분관계가 적은 지인에게 상담을 요청받은 적이 있다. 이미 내 글을 읽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내 앞가림 하기에도 벅찬 부족한 사람이다. 그런 내게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내게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얼굴에서,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나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그냥 담담히 사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이야기에서 힘듦이, 상처가, 분노가, 슬픔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위로에 서툴다. 섣불리 말을 했다가는 상대에게 더 상처를 줄거같아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정말 오래된 친구라면 가감없이 말을 할수도 있지만 설사 친하다고 해도 남의 속사정을 이야기 하나로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냥 내가 느끼는 대로 느끼되 표현은 최대한 아낀다. 그리고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내가 힘들때 내 얘기를 듣고 섣불리 충고질하는 사람보다는 그냥 조용히 들어주는 상대에게서 훨씬 편안함을 느꼈으니까. 해결은 되지 않아도 말없이 경청해주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되곤 하니까. 위로의 말 한마디 못할 거 같으면 그냥 나는 입을 다물고 말을 듣는다. 상대에게는 그게 도움이 되었을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했다. 최소한 상처를 드러내 보이는 상대에게 소금뿌리는 짓은 하지 않는게 인간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상대는 이야기를 하다가 주로 눈물을 보인다. 무슨 감정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저 내게상처받아서 우는 것만 아니였음 좋겠다. 



 나는 아픈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있을텐데, 오히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의외로 지인이건 누구건 그렇게 속을 털어놓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그렇게 다른 사람 사는 얘길 듣다보면 정말 답이 없는 문제들이 거의 99.9프로다. 누구의 잘못이라기 보단 마치 교통사고 같이 살다보니 만나지는 불행한 이벤트나 상황에 놓여 마음이 울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 그 상황을 벗어나라고 할 것 같은데 그게 안되니까 힘든 것이다. 사랑하는 자식들이 날 힘들게 한다고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런 문제들이다. 입장 바꿔놓고 나의 문제를 타인에게 오픈해도 그건 마찬가지일 것 같다. 과거에 받은 상처들은 아직도 내 마음속을 할퀴고있는데 그걸 지금와서 뭘 어쩔 수도 없다. 그냥 지나가기를 기다릴밖에. 남의 얘기지만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때론 그분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러면서 아. 그때 내 마음도 이랬었구나 한다. 사람의 인생은 왜이렇게 갈수록 힘들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저마다 멀리서, 겉으로 보기엔 별탈없이 사는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 곪고 터진 구석이 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방법은 조금씩 다른것 같다. 어떤 사람은 화난 모습으로 그 상처를 울부짖고 어떤 사람은 무기력하게 가라앉는다. 표출되는 모습은 다르지만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아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이는 건 똑같다. 표현만 봐서는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없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저마다 그 안에는 다른 사연들이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와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다.  나에게 온 사람들은 오히려 내가 가깝지 않아서 더 말하기 편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누군가가 나라도 잡고 그 힘듦을 잠깐이나마 토로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힘들 때 누군가도 나에게 그런 역할을 해주었던 것 같다. 뜬금없이 맛있는 빵집에서 내 생각 나서 빵을 샀다면서 아침에 빵을 물려주기도 하고, 책상 위에 말없이 커피를 두고가기도 하고. 그냥 밥먹자고 해서 별말없이 밥만 먹기도 했던 나의 주변 사람들. 그렇게 힘든 사람들끼리 조금씩 봐 주면서 조금씩 숨 좀 돌리며 사는 것 아닐까. 사람이 산다는 건 참 별거긴 하지만 의외로 별거 없기도 하다. 


 어차피 하는 직장생활, 내가 나가는 날까지는 최소한 나까지 냉소적이지는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주변 눈치 보느라 인생을 허비할 생각은 없지만 누군가의 힘든 날에 섣불리 이렇다 저렇다 비난어린 시선을 가지려고 하지 말자 생각했다. 내 옆에 사람도 오늘은 힘든 하루였을지도 모르니까. 오늘은 금요일. 긴 한 주가 드디어 지나가고 드디어 주말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최소한 이틀은 별일없이 보낼 수 있을테니까 좋다. 행 불행은 상태다. 상태는 계속 변하니까. 내일은 좀더 좋은 상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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