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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Jul 23. 2022

실망스러운 기자와의 만남


 식사를 했다. 그냥 식사는 아니고 관계가 있는 기자와의 식사자리였다. 사실, 나는 어릴적 한때 기자를 꿈꿨던 적이 있다. 취업을 마음먹었을 때 기자직군에 원서를 냈던 적도 여러번 있었다. 글 쓰는 것도 관심있었고 또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도 있었기에 나에게 맞는 직업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일반 직장인이 되면서 기자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기자는 진실을 쫓는 정의로운 직업일 것이라는 환상은 많이 깨졌다. 나는 취재를 당하는 회사의 실무자 입장이기 때문에 이것은 어쩔수 없는 변화일 수도 있다.

솔직히 내가 일하면서 만났던 기자 10명 중 9명은 무례했다. 취재를 할 권리를 가지고 직원들에게 전화하고 찾아와서 보따리 맡겨둔 것처럼 굴었다. 취재할 권리만큼 직장을 대표하는 담당자로서, 아니 한 인간으로서

취재원을 원래 무시하는 것이 기자의 오래된 관행인가 싶을 만큼 기자를 만나거나 통화할 때마다 느낀 불쾌감은 컸다. 그 와중에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를 가지고 취재에 임하는 기자는 물론 있었다. 근데 그게 당연한 건데도 하도 막무가내인 기자들을 많이 겪다보니 그 사람이 참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식사를 하게 된 기자는 이름대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 알 만한 메이저 언론사 간부급 기자였다. 처음엔 식사를 하면서 가벼운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날씨 이야기, 코로나 이야기, 휴가 이야기....그러다 점점 식사 말미에 가면 대화내용은 두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정보 소스에 관한 취재비슷한 질문 그리고 광고비(영업) 이다.

방송국 보도기자들은 정도가 덜한 것 같지만 대부분의 신문사 기자들은 영업을 겸해서 뛴다. 특히나 간부급들이 그렇다. 그렇게 기업에 광고를 따고 기업에 우호적인 기사를 내주고, 때로는 비우호적인 이슈가 있을때 톤조절을 해주는 물밑 딜을 한다. 내가 평기자로 취업을 해서 일을 했다면 데스크나 임원급에서 벌어지는 물밑 딜에 내 기사가 영향받을 때 매우 좌절했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아직도 세상은 흑막에서 벌어지는 권력과 정치싸움이 그 판세를 움직인다. 그걸 눈앞에서 목도하는 것은 어릴때보다는 그 배신감과 타격이 덜하긴 하지만 여전히 비위에 거슬린다.  


 식사가 끝날 무렵 기자는 우리 회사에 관련된 가십을 말하면서 한 고위공무원과 우리 회사 여직원과의 스캔들 이야기를 꺼냈다. 10년도 더된 이야기였고 그 여직원은 지금 다른 분과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잘 살고있다. 그 공무원과 여자분은 결혼적령기에 만나 사귀다 오래전에 헤어졌다. 하지만 그 얘기를 아직도 하며 낄낄대는 기자를 보고 있자니 구역질이 치밀었다. 자기는 자식도 없나. 그냥 그걸 떠나서, 50대 초로의 나이쯤 먹은 지식인이 조카뻘의 여자를 가루가 되도록 까며 뭘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추해보였다. 취재를 하기에 앞서 워밍업으로 그들의 사생활을 에피타이저 쯤으로 쓰는 저급함에 나는 표정관리가 안되어 썩은 표정이 되었고 그 얼굴을 팀장님이 보셨다. 그래. 나도 나이 먹을만큼 먹었으면 속으로만 에이 더럽다 하고 말 일인데 표정으로 마음이 다 드러나는 거 보면 아직은 멀었나보다 생각했다.


 그와 우리의 관계는 업무적 제휴관계다. 그 사람의 인격적인 수준과 관계없이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기 위해서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프로라면 그런 걸 드러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른 이슈로 넘기는 방법도 있겠지. 난 아직 멀었나보다. 그런 사람도 상대해야 하는 나의 자리를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가. 하는 반성도 했지만 그냥 너무 싫다. 그렇게 살다가 나도 그게 아무렇지 않아지는 사람이 될까봐 싫다.  


 그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무리 일이 중요하다지만 그렇게 무디고 저급하게 늙어가지 말자고. 그렇게 하지 않고도 취재를 할 방법이, 기자와 그런 대화를 피하면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방법이 있을까. 그건 솔직히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아직도 그 물밑을 움직이는 자들은 그런 자들이니까. 그런 순간들을 만나면 솔직히 회의가 든다. 나의 팀장님 정도의 지위가 되면 역해도 버텨야 되는건데 그걸 내가 할수 없을 것 같고 그렇게 하기도 싫다. 언제쯤 세상의 실망스런 어른들을 보면서도 의연하게 될 수 있을까.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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