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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Sep 19. 2022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였습니다

축하한다 빌런들아 


 


 모든 히어로물에서 결론은 정해져 있다. (히어로 승, 빌런 패) 히어로들은 늘 선과 정의, 약자의 편에 서서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이정표를 세우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떨까?



 다수의 암묵적 합의에 의해 비교적 종합적으로 고르게 "괜찮은" 인간들이 인정을 받고 보다 높은 자리로 올라서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보다는 시류 편승 능력이 뛰어나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자들을 선별하여 처세하는 능력이 탁월하여 기회를 능수능란하게 잡는 자(하지만 경쟁상대나 약자, 타인에겐 관심이 없고 밟고 일어서는 것도 별 감흥이 없는, A.K.A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들이 비교적 높은 자리로 올라선다. 적어도 내가 밥벌이를 시작하고 나서 본 내가 몸담은 조직의 사회구조는 지금까지 쭉 그래왔다. 



 아직 공식퇴사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1년째 연명 중인 내가 본  회사는 보다 나아졌는가? 일정부분 그렇다.  그러나 여전히, 일은 선택적으로 몰리고 (좋은일은 특정 인물들에게, 나쁜일도 꼭 해본 자들에게만) 일하는 "척" 잘 하고 상사에게 동료들을 은근히 "엿"먹이며 "권모술수" (라고 쓰고 쓸데없는 견제와 뒷담화로 남의 에너지를 쪽쪽 빨아당기는) 기회주의자들이 높은 자리를 꿰찬다. 최소한 진짜 내심은 기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그런 듯 포장하고 처세해야 좋은 자리가 주어진다.  


 최근에 다른 여러 분야에서 일을 해온 사람들과 협업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개인생활을 모두 내려놓고 자신의 일에 모든 열과 성을 다해 자기 몫을 해내고 있었다.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니일 내일을 따지기보단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상대방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들도 말없이 나서서 처리하고, 전반적인 분위기와 타인의 감정도 배려하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누구하나 찡그리지 않고 일했다. 프로젝트의 성패를 떠나 이런 환경이라면 너무 힘들어도 일하고 싶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의 지난 워크라이프를 되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남을 떠나 나는, 이런 조건과 환경 속에서도 불만 하나 없이 자기 몫 이상을 해내며 서로 도닥이는 동료가 나는 되었던가? 나 또한,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타인의 도움 요청에도 방어선을 치기 바빴던 동료 A와 나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다.  


  내가 생각하는 조직세계의 "악화"의 기준은 인화성의 정도이다. 이건 비단 내가 몸담은 조직 뿐 아니라 세상 어떤 조직에서도 보편적으로 적용된다고 본다. 업무 수행 능력은 사람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어차피 개인 플레이로 돌아가는 조직은 이세상에 한 군데도 없다. 내가 이것이 뛰어나면 상대방은 저것이 뛰어나다. 각자 뛰어난 것을 서로 잘 뽑아낼 수 있도록 협력하는 능력이 바로 인간세상의 양화와 악화를 구분짓는다. 그러려면 공감 능력도 뛰어나야 하고 협동심이 있어야 한다. 저 사람은 어떤 과업을 함께 해결해나가는 동료라는. 동료애 말이다.  

 쉽게 말하면 인성이다. 인성쓰레기들이 득세하는 세상은 시간의 흐름으로 저절로 진보는 할수 있어도 근본적인 변화 (긍정적인)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끼리끼리 싸이언스라는 말은 조직사회에서 너무 잘 들어맞는다.

비슷한 놈들은 서로 잡아당기는 속성이라도 있는지 지들끼리 어울린다. 그렇게 조직사회의 빌런이 회사를 다 차지하는 동안 좀 괜찮은 인간들은 병들고 견제받다가 제 발로 나가거나 떨어져 나간다. 그렇게 빌런들의 액기스가 남으면 그 회사는 쓰레기통이 된다. 가스가 스며들듯이 서서히, 자연스럽게 말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역시 사람은 남녀노소 세상 밖으로 나가 많은 환경을 접해봐야 견문이 넓어진다. 그러면서 단 한명의 빌런도 없었던 그 프로젝트 구성원들 한명 한명에 감사했다. 당연히 사람의 일인지라 조금 아쉬운 부분은 당연히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일을 하면서 그동안 회사에서 느꼈던 답답함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더없이 편안한 근무조건 속에서도 나는 왜 힘들었나에 대한 질문의 답도 얻었다. 


 부디 세상사가 내가 본 대로만 그렇게 썩어고인 물의 찌꺼기 끝판왕들이 끝까지 잘먹고 잘 사는 스토리대로만 흘러가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세상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가슴 속에 갖고 살다보면 계속해서 상처를 받으니 말이다.  나는 사람의 본질은 잘 변하지 않지만 오로지 자신의 의지와 각성으로 어떤 방향이든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회사 내 쓰레기 코인같은 것들의 대환장 파티를 바라보며, 부디 그 세상에도 희망의 싹은 언젠가 틔어나길 바란다. (나는 떠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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