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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Jul 18. 2022

6. 내 가치는 1xx만원

인턴 월급하고 차이가 안나


신입사원 첫 월급날.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1xx 만원. 1호봉인 나의 월급은 정말 앞자리가 1이었다.

 월급이 조금 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인턴월급하고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다.


 가슴에 손을 얹고 나에게 회사가 주는 업무를 생각해보면 각종 자잘하고 불필요해보이는 구닥다리같은 잡무들이었다. 그런 일을 하고 받는 월급으로는 엄청 형편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내 노동의 가치가 그정도뿐인 것이다. 라떼는 그와중에 눈치도 보고 야근도 하고 그랬어야 했으니...솔직히 보자마자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때의 나는 내 금전적 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는 없었을까?


 정답은 "없다" 이다.


 이것이 공기업의 가장 큰 맹점이자, 숙명이다.


나는 사기업은 경험이 없다시피 한지라 잘 모른다. 하지만 성과급으로는 고과에 따라서 큰 차이를 보일 수도 있고, 승진 순서도 동기라도 엄청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기업은 다르다. 내 가치는 1년이 지나야 상승한다. 그것은 나도 그렇고 내 동기들 모두도 그렇다. 승진은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월급의 획기적 차이를 낳지 못한다. 예를 들어 2년 먼저 부장 단 내 동기와 차장인 나의 월급차이는 호봉이 동일하다는 전제 하에 약간의 차이 뿐이다.


 그렇다면 아마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그럼 성과연봉제를 도입해야지. 그래야 이 철밥통 공기업 새끼들이 일하는 시늉이라도 할 것 아니냐고. 이상적으론 그게 맞다. 그런데 실제는 어떨까. 성과대로 연봉제를 도입하려면 어느 놈이 잘하고 어느 놈이 못하는지를 "평가" 해야 한다. 오너회사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명확하다. 이놈이 회사주머니를 불려주는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따지면 된다. 우리가 아는 대기업들은 오너회사들이라 오너가의 주머니를 불려주는 것과 회사를 흥하게 하는 것에 등호가 대부분은 성립한다. 하지만 공기업의 경우 그것을 평가할 기준이 명확치 않다. 오너가 국민이니까 공공성에 기여한 바를 따지면 되지 않냐고?  문제는 평가자가 국민이 아니라 정치인 "낙하산" 들인 특정인물들이라는 것이다. 평가를 국민들에게 맡길 수가 없다.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를 하겠는가. 그럼 결국 그들이 뽑은 철새같은 정치인들과 그 끄나풀들이 평가를 하게 되고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하기 딱 좋은 시스템이 심화되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측면이 있다. 낙하산 정치인들에게 잘 보이거나 줄을 타서 승진을 하고 그들이 나가더라도 자신이 실권을 움켜쥘수 있는 자리에 앉아있는 찐 실세들이 있고 그들이 득세하는 동안 그들의 세력이 승승장구한다.  그렇게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하는 것이다.  공기업의 진짜 폐해는 태생적 한계에 있다.


 다시 화제를 앞의 이야기로 돌려서.

 그렇다면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혹자는 그랬다. 직접적인 금전적 가치에만 매몰되지 말고 포괄적으로 너의 가치를 높일수 있게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업무태도를 유지하면서 능력을 고양해야 할 거라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공공기관에서 일한다. 준공무원으로서의 나는 국민에게 봉사할 의무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런 의무감에만 내적동기를 갖고 가기에는 너무 보상이 없다. 정년이 보장된 직장이라는 것도 물론 큰 메리트다. 하지만 그 시스템도 잘 들여다보면 헛점투성이다.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진 20년된 공기업의 업무란 뜯어보면 언제든지 직위해제로 사람하나 날리는 것쯤은 일도 아닌 성질의 것들이 많다.  물론 이건 사기업도 마찬가지일 수 있는데 "공" 자가 붙음으로 인해서 법적인 구속력이 훨씬 더 강력하다. 게다가 영리활동 겸업은 거의 안 된다.

 그리고 고백컨대 내가 제일 먼저 회사에서 배운 업무는 문서 위조다. 요식행위로서 하는 업무들이 너무 짜치게 많았다. 최고학력은 아니었지만 어디가서 바보 소리 한번 듣지 않고 살아왔던 내게 신입사원으로서의 하루하루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존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바보 멍청이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어쨌든, 10여년 전 신입사원 박@@의 회사 내 가치는 월 1xx만원이었다. 좋은 걸까? 나쁜 걸까? 그건 글을 읽고있을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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