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하반기를 맞이하는 마음가짐
들어가며,
야심 차게 시작했던 브런치 블로그가 이렇게 또 거리감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일과 창작물, 읽은 책, 일상과 육아 등 여러 가지 생각들을 차근히 정리해서 올리고 싶었는데, 이곳에 글을 올리는 것 또한 관성이고 습관이어서, 한 번 안 하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늘어지고, 오랜만이 되면 괜히 글을 올리기가 뻘쭘해진다. 이래저래 시작하기도 전부터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나 할까. 항상 묘한 부담감과 거리감을 가진 공간이라는 점이 재미있기도 하고.. 오랜만의 업데이트는 이런 낯가림을 털어내고 인스타와 블로그에 적어두었던 글을 조금 다듬어서 올려본다.
2022년 상반기 요약
작년에 이어 올해도 스펙타클한 상반기를 살았다. 작년 가을에 완전히 새롭고 도전적인 필드, IT 스타트업으로 이직해서 열심히 일했고,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꺼냈으며, 내가 가진 모든 스킬을 사용해서 일을 해냈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집어넣었다. 매일 정신없이 강남과 강북을, 일산 집과 마포 집을, 틈틈이 양양 집을 오갔고, 바쁘다고 말할 새도 없이 바빴으며, 지친다고 할 틈 없이 빠르게 지쳐갔다.
이렇게 나 자신을 내버려 둔 채로 분주하게만 살아도 되는 걸까 싶던 찰나 건강에 노란불이 켜지는 바람에 자의 반 타의 반 또 얼마간 숨을 돌렸다.
유치원의 도움이 있었지만 주중에는 거의 대부분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하는 삶도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타이밍 좋게 코로나 확진자 수가 눈에 띄게 잦아들 즈음 무려 6년 만에 캐나다 집에 왔다.
새롭게 도전한 배움
상반기에 새롭게 도전했던 배움, 취미는 바로 발레다. 어렸을 때부터 한 번은 배우고 싶었던 거라 선뜻 시작했는데, 해본 소감이라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아주 큰 운동이라 느꼈다. 와, 재미있고 신난다! 보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먼저 드는.. 약간 내가 싫어하는 모든 것의 총집합이라 느꼈다. 이를테면 끝까지 견디고 버티기, 정확한 동작이 될 때까지 수없이 반복하기, 같은 부분에서.
발레는 중력을 거스르는 것은 물론이고, 신체가 기본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한계치를 다 쓰는 것도 모자라 그것의 가동범위까지 모조리 거스르는, 보는 것과 달리 마냥 우아하지만은 않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근력을 필요로 하는 운동이라는 표현으로 일축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레슨 못 간 지 두 달이 넘어가니 기껏 적응했던 몸이 굳어버린 것은 조금 아쉽다. 음, 과연 계속할 수 있을까.
사이드 잡
친구의 부탁으로 시작한 개인 비지니스 영어 튜터링도 의미 있고 재미있었다. 직장인 스케줄에 맞추다 보니 시간적으로, 체력적으로 무리하게 된 부분이 있긴 했지만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학생의 태도에 반해 나 역시도 더 진지한 자세로 임하게 되었던 일 중에 하나.
매달 수업 내용 정리한 요약서와 클래스 타임 트래커, 리포트를 써서 보내주었는데, '문장력이 지난달에 대비하여 개선되었다, 말할 때 표현이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나온다, 발음과 문법이 좋아졌다'라고 쓰면서 뿌듯하고 보람찼던 기억이 난다. 열심히 해줘서 참 고마운 마음.
나의 마음 상태
무엇, 을 어떻게, 한다, 에 온 정신이 팔려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즐거운 날도 더러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
즐겁게 재미있게 잘할 수 있다고 믿었고, 잘해내고 싶었는데 이제 막 시작했으면서 진행이 더디게만 느껴져서, 상황이 계획한 대로 가지 않아서, 결과가 빨리 보이지 않아서, 게다가 나 개인의 성장은 더더욱 눈에 보이지 않으니 매일이 불안하고 조바심이 났다.
목이 마르고 갈급했던 만큼 사막의 오아시스를 향해 전력을 다해 달려가고 싶은 욕심은 그득하나, 그것을 지속시킬 저력, 버텨낼 정신력, 조금도 받쳐주지 않는 체력이 원망스러웠고, 무리를 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몸이 아플라치면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있었던 것 같다.
장대비가 억수로 와서 맞았는데 더 큰 우산을, 더 목이 긴 장화를, 가방까지 다 커버되는 커다란 우비를 준비하지 못한 나 자신을 어리석다 여기며 미워했던 것 같다. 급기야는 밖에 폭우가 쏟아지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안전한 집을 떠난 사실마저 후회하기 바빴다. 다 내가 자초한 일이구나, 지혜롭지 못한 결정이었나, 하며. 끊임없이 자책하고 잣대를 들이대고, 부족하다, 수준 미달이다, 이래가지곤 택도 없다, 언제 잘할래, 하며 괴롭히기 일쑤였다.
취미에서 배운 지혜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졌던 찰나, (죽을 만큼 움직이기 싫지만) 운동 한 가지라도 새롭게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위에도 언급했던 발레를 시작하게 되었다. '보기보다 많이 고된 일'임은 분명했으나 발레를 해보니까 알겠더라. 처음부터 기대만큼, 수준만큼 해내고야 말겠다는 완벽주의자의 성향을 버리고 완료 주의자 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계기가 되었다. 제대로, 잘,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단 하는 것이라는 것. 그냥, 많이 생각하지 말고 Just do it.
살도 찌고 몸도 부어 무거운데 온몸에 찰싹 달라붙는 레오타드 입고 발레 하는 거? 뭐 어떤가. 거울 속의 나에게만 집중하기도 바쁘다. 내 반쪽만 한 사람보다 훨씬 더 동작을 유연하게 잘할 수 있다! 그마저도 잘 안되면 또 어떤가. 오늘의 발레 세션을 갔다는 것, 앞 동작을 놓쳤더라도 새로운 동작, 시퀀스를 끝까지 집중하여 따라 했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오운완 대신 #오발완 - 오늘발레완료 를 해낸 것에 방점이 있었다.
스스로를 괴롭혀가며 마음이 닳고 무너져있던 나에게 있어 아주 사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다,"는 성취를 쌓는 과정은 무엇보다 소중한 회복탄력성의 씨앗이 되어주었다.
2022년 하반기 시작
하반기는 나의 고향(?) 캐나다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캐나다에 이민 왔을 때도 이곳의 눈부신 여름, 7월의 한가운데였는데, 아이와 함께 돌아온 캐나다의 여름은, 우리가 살던 집에 부모님까지 같이 계셔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어린 시절의 나, 열여섯의 그때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아이 하나 추가된 것 외에는 이곳을 떠나 한국으로 일하러 가기 전/결혼 전의 세팅과 같아서 괜한 어리광을 피우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게 무엇이든 새롭게 힘차게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고,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저 이렇게 한량 마냥 일 안 하고, 돈 안 벌고, 유유자적 노닥대며 살고 싶기도 하고...
마치며,
시차 적응하느라 열흘-2주는 족히 헤맸는데 (나이 들어 그런가? 체감상 더 오래 걸린 느낌이다 ㅎ), 다시 루틴을 회복했고, 잘 지키며 지내려 한다. 시간에 급급해서 살기보다 조금 느려도 괜찮으니, 내 안의 조급함과 분주함, 불안 따위의 감정들을 잘 다스리면서.
무엇보다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아무래도 몸과 마음의 건강이니 매일 몸을 위한 작은 습관들은 꾸준히 챙기기로. 사실 언젠가부터 컨디션이 가뿐하게 좋았던 적이 언제였을까 기억도 안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겠는가, 남은 인생 얼마나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잘 살아봐야 하지 않겠나. 나 자신을 도닥여가며, 달래가며, 잘 데리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올해 남은 반을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