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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e Apr 29. 2024

점심은 보양삼계탕

플러스 마이너스 원


“나... 과자님들한테 고백할 거 있어.”


지윤이 탕비실에서 모닝커피를 타는 둘에게 대뜸 주어 없이 말을 건넸다.


“왜, 왜, 뭔데.”


제일 정신없고 바쁜 시간이지만 자고로 월요일 아침에 마시는 커피는 드립으로 찬찬히 내려 마셔야 한 주가 차분하고 무사히 흘러간다는 다소 미신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선하가 찬장에서 컵을 꺼내고, 접힌 필터를 펴서 드리퍼 안쪽에 끼우고, 원두 가루를 두 스쿱 퍼서 넣고, 작은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받으며 되물었다.


“아, 음.. 이런 얘기 좀 그런가? 월요일 아침부터.”


지윤이 상기된 표정으로 또 말을 하려다 말고 선하 곁에 서서 컵 손잡이만 만지작 거렸다.


“뭔데 이렇게 뜸을 들여요, 여행 얘기? 어서 말해봐요.”


보리차 티백을 하나 꺼내어 컵에 쓱 던지듯이 넣으며 수현이 재촉했다.


“그때, 요기 앞 카페에서 일하던 귀여운 애, 알지.”


“응, 과자님 맨날 보러 갔잖아. ‘톰톰’이었던가. 걔 근데 일 관뒀다며.”


“나, 걔랑 잤다.”


“헐........ 대박. 그게 어떻게 가능???”







지윤이 회사 앞 카페에서 ‘톰톰’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은 대략 6개월 전쯤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의 외모부터 피지컬, 풍기는 분위기까지 모두 자기 스타일이라며, 첫눈에 반했다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수현과 선하 역시 지윤의 성화에 못 이겨 평소에는 잘 가지 않던 그 카페까지 끌려가 식후 커피를 사 마시며 일하던 그를 본 적이 있다.


‘톰톰’은 정석적인 미남은 아니지만 ‘요즘 스타일 훈남’으로, 파트너들이 쓰는 까만 볼캡 아래로 작은 얼굴, 하얀 피부와 서글서글 웃는 눈매가 호감을 주는 스타일이었다. 거기에 제법 큰 키,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그가 직장인이 많은 동네의 가장 붐비는 점심 무렵 일명 '컨디바'라 불리는 셀프 스테이션에 무자비하게 쌓인 매장용 머그들을 척척 들어다 백룸으로 옮기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지윤은 둘의 얼굴을 가까이 끌어다가 귀에 속삭이며 ‘저기 저기 우리 톰토미으 그뉴기를 바바바,’ ‘솟아나는 전완근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아냐,’ ‘어머머, 쟤 팔 즘 봐, 힘줄 봐!’ ‘운동 많이 하나 봐. 뒷태가.....’ 라고, 귀엣말로만 해야 할 수위의 말들도 서슴지 않았다.


당신들이 보기엔 어떤 것 같냐며 감상평(?)을 채근하는 지윤에게 수현은 “저런 스타일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더 산적 같은 스타일 좋다지 않았어? 수염도 많은? 뭐, 귀염상이네요, 근데 여자친구 있을 거 같지 않아? 아님 일찍 결혼을 했을 수도 있구. 아니면 당신한테 관심 가질 껀덕지가 하낫-또 없는 게이거나. 한국도 예전 같지 않다고..”라고 했고, 선하는 시종일관 시큰둥한 표정으로 “당신들 함부로 남의 얼평, 몸평 좀 하지 마, 요새 그러다 진짜 큰일나,” 라고 엄포를 놓았다.


지윤은 일부러 그가 일하는 요일에 맞춰 뻔질나게 카페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방향이 달라 그쪽으로 식후커피를 안 가도 되는데도 굳이 가자고 했다. 음료가 준비되고, 닉네임을 부르고, 쪼르르 가서 커피를 받을 때마다 꼭 한 마디씩 시시껄렁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그와 안면을 텄다.


원래 ‘아부다비 공주’ 였던 오더 앱의 닉네임도 본명인 ‘지윤’으로 바꾸었다. 수현과 선하는 “너무 관종의 검은 속내가 훤히 보이는 짓 아니냐”며 지윤을 타박했는데, 센스까지 겸비한 우리의 ‘톰톰’이는 ‘아부다비 공주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를 외치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부다비 공주’님, 닉네임 변경하셨네요? 지윤님, 따뜻한 오트 라떼 나왔습니다.“ 오, 좀 치는 친구일세. 아님 진짜 혹시, 그린라이트....?


그렇게 그에게 본인의 이름을 각인시키고 그린라이트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소소한 설렘도 잠시, 곧 그 귀여운 ‘톰톰’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 며칠은 오프인가 보다, 그다음은 스케줄이 바뀌었나 보다, 집에 무슨 일 있는거 아니야? 설마.. 대학교 시험 기간인가, 와 근데 과자님, 대학생은 좀 아니지 않아? 그래, 그렇긴 하지.. 우리 나이를 생각해야지. 차이가 어마어마하잖아, 라고 해놓고도 아닌 척 카페에 들를 때마다 눈으로 그를 열심히 찾았더랬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어느 날 다른 파트너에게 톰톰님의 안부를 물어보았단다. 아, 톰톰님이요. 일 그만두셨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온 그 날부로 지윤은 한동안 (안구가 특히) 즐거웠던 카페 생활을 즉시 청산했다.






지난 주, 지윤은 ‘이번 시즌 마지막 파도의 기회래. 연말 되면 진짜 시간 없을 것 같아서.’ 라는 말과 함께 귀한 연휴에 몇 개 남은 연차를 붙여 휴가 일정을 만들었다. 서퍼들의 천국이라는 발리에 서핑을 다녀오겠다 했다.


그런데 발리에서, 하고 많은 힙플 중 첫날 한 잔 하러 갔던 바에서 우연찮게도 바로 그 ‘톰톰’을 만났다고. 혼자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았던, 하지만 한동안 못 봤던 귀요미를 해외에서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지윤을 알아본 ‘톰톰’에게 “어머, 이런 데서 ‘톰톰’님을 보네요!” 라고 반갑게 말을 붙였고, 그쪽도 “발리에서 ‘아부다비 공주’님을 만나다니요! 반가워요,” 같은 인사가 오갔다고. 반가우니 술 한 잔 할까요? 해서 술도 마셨단다.


둘째 날, 셋째 날은 함께 서핑 캠프에 참가해서 파도도 타고 물도 많이 먹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고, 캠프 마지막 날 저녁을 같이 먹고, 술 한 잔 더 하고 들어가자, 해서 자연스럽게 또 술을 마셨고...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알몸인 채로 끌어안고 세상 사랑하는 연인들 마냥 있었더라는 거다. 나 진짜, 진짜, 잠자리에 예민해서 그게 설령 호텔일지언정 집 아닌 곳에서 자는 것도, 누구랑 같이 자는 것도 잘 못하는데, 라는 다소 앞뒤 맞지 않는 말까지 덧붙여가며.






“그리고 바로 한국 온 거?”


“서핑 끝나면 '만나서 반가웠다,' 하고 말 줄 알았거든.”


“응, 근데..?”


"마지막 날, 혹시 번호 줄 수 있냐고 물어봤거든."


“그래서, 땄어?“


"1-4-1-6,“ 이래.


“엥?”


“자기네 집 현관 비번이라며."


“와씨, 미친......."


"와우, 톰톰이가 덱스를 능가하는 플러팅 고수였네요,”


“캬..... 그 말로만 듣던 선섹스 후연애! 우리 과자님 겁나 힙하네. 역시 젊은이를 만나려면 그 정도는!!!”


“아, 과자님아.. 좀 작게 말해..”


“왜! 어린 남친도 생겼는데!!! 왜 부끄러워해? 자랑스러워해야지!!! 온 동네방네 소문내야지!!!!!“


관심 없는 태도로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선하가 격한 반응을 보이며 지윤을 놀렸다.


“아, 역시 팔 근육은 거들뿐....? 남의 연애 얘기 세상에서 제일 재밌네요. 그나저나 과자님, 전완근이 특히 매력적인 너네 톰톰이는 며짤이에영~? 과자님 잠자리 예민한 거 마쟈영~?”


수현도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지윤에게 한 마디를 보탠다.


“아무래도 울 과자님 삼 좀 맥여야겠네? 키킥...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오늘 삼과점 메뉴 보양 삼계탕, 콜?!”


갓 시작한 남의 연애에 이러쿵저러쿵 훈수 두는 게 제일 재미있는 유부녀와 발리에서 우연찮게 만난 플러팅 고수 연하남과 만남을 시작한 여자, 그리고 남이사 선섹스 후연애를 하든 말든 동료 놀리기와 월요일 커피 내리기 리추얼에 심취한 여자 셋의 점심 메뉴가 정해졌다. 오전에 해야 할 일 중 가장 큰 업무를 해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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