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막상 해보니 나쁘진 않더라구
예전의 나는 체력이랄게 없었다. 원래부터도 나는 침대나 쇼파와 한 몸이 되어 지내는 걸 좋아했고, 자칭 타칭 '집순이'였다. 어디 나가는 걸 제일 싫어하고, 나갈 일이 있으면 최대한 모아 하루에 다 처리해버리는 스타일. 게다가 미국에 오고 나서는 걸을 일이 없어! 어디를 가든 차를 타고 가야하는 이 곳은 일부러 운동을 하지 않으면 여기는 걸을 일이 없는 그런 동네다. 그나마 걸을 일이라고는 마트에서 뿐. 그 마저도 마트까지는 당연히 차를 타고 가니.. 운동을 하려고 마음 먹고 걷든 뛰든 헬스장을 등록하든 하지 않으면 하루종일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는. 한국에서는 그나마 걸어서 슈퍼도 가고, 버스 정류장도 가고, 지하철도 타니 생활 속에서의 움직임이 있었는데 여기선 붙박이 장 마냥 집 안에만 붙어 있게 됐다.
처음에는 우리 마을을 걸었다. 한 500미터 걷다 교회가 나오는데 그 교회 앞에 적당한 크기의 잔디 축구장이 있다. 거길 3바퀴 돌고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오면 대충 3km였다. 3km라니, 지금은 웃음이 나오지만 처음에는 그 3km도 채우기 힘들었다. 30분을 열심히 걸어도 겨우 2.8km가 안됐다. 그 때는 3km가 되지 않아도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는 고작 30분 걷고 힘들어 변기 붙들고 구역질을 한 적도 있다. 그 날은 특히 컨디션이 안 좋기도 했는데, 어쨌든 내 체력이 그 정도로 약했다.
심지어 운동을 완전 한 여름, 7월에 시작해서 처음엔 아침 9시 쯤 걷다가 땡볕이 너무 힘들어 조금씩 시간을 당기다 보니 나중엔 5시 30분 스캇 회사 알람시계에 맞춰 나도 일어나 양치하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바로 집을 나섰다. 심지어 스캇보다 먼저. 그렇게 하루 이틀 하다 보니 습관이 되었고, 운동을 안하거나 못하는 날은 찝찝해 질 지경이 됐다. (정말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믿을 수가 없다.)
이제는 비 오는 날이나 일 때문에 정말 스케줄이 안 되는 날 빼고는 매일 하루에 두번 씩 운동을 하고 있다. 아침에 5km, 저녁에 4km 걷는 게 요즘의 루틴인데 일 때문에 시간이 없을 때는 그것보다 짧더라도 잠시나마 나가서 걸으려고 노력한다. 붓기라도 좀 빠지도록, 그리고 내 운동 패턴을 깨기 싫어서.
7월 10일부터 운동 시작해서 5개월이 지났다. 걷기는 이제 지루하고 딱히 체력 소모도 되지 않아 러닝을 시작하려 한다. 30초씩, 1분씩.. 천천히 달리다보면 언젠가 작은 마라톤 대회도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운동을 하다보면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동지애를 느낀다. 주말에는 스캇과 함께 다른 큰 공원이나 해변 길을 따라 걷고, 평일 아침에는 나 혼자 우리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공원에서 걷는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가다보니 만나는 사람도 거의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개 데리고 산책하는 할아버지 커플 두 분, 매일 회사 가기 전에 한 30분 정도 걸으러 오는 사람, 자기 얼굴이랑 꼭 닮은 회색 귀여운 강아지 데리고 산책하러 오는 사람.. 거의 매일 만나다보니 어느 날 보이지 않으면 궁금해지고 다음 날 다시 만나면 반갑게 "모닝!".
(운동 같은 거 다음 생에나 할 줄 알았던 내가 이젠 매일 운동을 합니다. 실제 경험담이니 소소하지만 도움이 될 거에요.)
- 눈 뜨자마자 침대에서 일어나라.
일어나서 휴대폰을 한다거나 기껏 거실까지 나와서 쇼파에 앉아버리면 무용지물. '생각 따위 하지 말고' 바로 일어나 양말을 신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뒤 양치하고 열쇠들고 집을 나서자. 절대 한 곳에라도 오래 머무는 순간 시간은 자꾸 지나고.. 나가기 싫은 마음만, 하루 쉴까? 하는 마음만 커진다.
- 내일 입을 운동복은 미리 세팅해놓자.
위의 내용에 이어, 아침에 일어나서 졸린 와중에 서랍에서 옷 찾는데 "어, 그 바지가 어디갔지?"하고 뒤적이다보면 귀찮음이 스물스물 올라오고 의욕이 상실된다. 양말까지 미리 준비해놓자.
- 휴대폰 트래킹 어플을 사용하자.
나는 Fitbit 스마트 워치가 있어 휴대폰과 연동해 사용 중이다. 꼭 스마트 워치가 없어도 삼성헬스나 아이폰의 건강 앱 같은 어플로 운동 시간, 거리, 심박 수, 칼로리 소모량 등을 추적하다보면 발전하는 자신을 발견 할 수 있고, 자신만의 목표를 세워 달성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나 같은 경우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30분 걷기를 하다 3km 걷기, 3.5km 걷기, 4km 걷기, 5km 걷기, 그 이상 걷기.. 이런 식으로 점차 늘려나갔다. 걷는 페이스도 점차 빨라지는 걸 보는 재미가 있다.
- 마음에 드는 운동복을 구비하자.
처음엔 운동복이랄 것도 없어 헐렁한 고무줄 바지를 입고 걸었다. 운동을 한 적이 없으니 운동복이 없는 건 당연했던... 레깅스는 있었지만 내겐 운동용이 아니라 그냥 생활복이었다. 근데 여름이라 너무 더워 반바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타겟(마트)에 가서 운동 반바지를 두개 구입했다. (맞다, 나 장비병 있다.) 이제 운동 시작한 지 겨우 2~3일 됐는데 운동복을 구입하는 게 좀 성급해보였지만.. 운동 같은 거 시작하기도 전에 스마트 워치를 산 내가 아닌가? 반바지 정도야.. 어쨌든 반바지를 샀더니 입고 싶어졌고,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운동 반바지를 입고 집을 나섰다. 뭔가 갖춰입고 운동을 하니 뭔가 '나도 이제 운동하는 사람이야!' 하는 느낌이 들어 운동하러 나가는데 어느 정도 동기부여가 됐다. 하지만 너무 많이 사는 건 금물. 사이즈가 작아져 금방 못 입게 될 수도 있으니.
- 우선은 집 근처부터.
나 같은 집순이, 집돌이들에게는 집 밖을 나서 어디를 가야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집에서 멀면 멀수록, 꾸며야하면 꾸며야할 수록 더 스트레스. 그래서 나는 처음에 그냥 우리 마을을 걸었다. 집 근처에서 큰 길가의 교회까지. 그렇게 한달 반을 걷다 익숙해지고 심심해지자 주변까지 시야를 넓혔고, 집에서 차 타고 5분 거리에 있는 공원을 메인 운동 장소로 결정해 지금까지 잘 이어오고 있다. 주말에는 집에서 15분~20분씩 달려서 더 큰 공원이나 해변을 걸으며 지루함을 달랜다. 만약 처음부터 집에서 제법 가야 하는 곳에서 운동을 시작했다면 운전해서 가는 게 귀찮아서 금방 의욕을 잃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