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시간, 나의추억]2001년 가을

처음 그 때처럼

by 잼잼

대학 1학년.. 정말 많이 불렀던 민중가요의 제목이다.

많이 좋아했고..내가 살아가는 삶의 모토이기도하다.

사랑도 처음 시작할때의 설레임처럼..

일도 처음시작할때의 기대처럼..

공부도 처음의 호기심 그대로...

근데 반복되는 삶은 그러한 신선함을 자주 일상에서 잊어버리게하는것같다.


10월.............. 참 좋아하는 달이다.

으례 사람들에게는 이쁜 사람들이 많이 태어나는 달이라고 떠벌리고 다니지만..

실로 많은 결실들이 있고.. 시원해지는 날씨와 저물어가는 한해에대한 묘연한 아쉬움이 뒤섞여서

늘....10월은 나에게 즐거운 한달이 되어왔다.


2001년 10월.. 여느해와는 조금 달랐다.

정신없이 바쁜 회사일...

시작하면 참 기쁘고 즐거운 교회의 일과들도 조금은 삶의 무게가 되어 다가오고..

일들은 겹쳐일어난다고 신경쓰지 않아도될 사람사이의 일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그러한 모든것들이 분주한 삶을 한층더 분주하게 만들었다.


한달의 중간에 있는 내생일조차도 오히려 마음 한가운데 기대되는 이벤트라기보다는

조금더 주위 사람들의 배려에 반응해야하는 신경쓰이는 사건이 되어버리고...

엎친데 덮친격 그다지 허약하지 않은 몸에 지독스런 감기까지 얹히다보니

참으로 10월의 삼분의 이가...하루하루 되짚어보기도 전에 훌쩍 넘어가버린 그런 기분이다.


아침에 눈뜨기가 힘들고.. 가끔 온 땅이 들썩거려 현기증을 일으키고..

멈추지않는 기침은 주위 사람들에 대한 죄송함과

더불어.. 밀린 일과에대한 짜증을 배나 증가시키는것같았다...


그런 한달이 아쉽게 지나갈무렵인 오늘 새벽..

오랜만에 회식이라고 모여앉은 사람들과 헤어지면서 과장님의 한마디가 발걸음을 머뭇거리게했다.


"매일의 일과는 자신이 만들어 가는거지.. 정신력과의 싸움인거야.. 오늘 이렇게 다같이 늦게 퇴근하고.. 내일 아침 어떻게 출근하는지 보겠어...누구의 정신력이 대단한지 지켜보겠어.."


음..... 대학다닐때만해도 참 부지런했는데..

회사생활 초년때만해도 7시 40분 출근도 못미더워서 7시까지는 출근해서 뭔가를 만들어서 해야만 적성이 풀리던 나였던것같은데..요즘은 출근시간 10초전에 칼같이 출근하는 여유를 부리니 오늘아침의 정신력 테스트가 내심 자신이 없어졌다.


아침마다 쏟아지는 잠들................

택시타고 집으로 들어가면서 스스로가 참 못나보였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계획하시는 삶..

이런거 아니었을텐데 ..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들어선 작은방 내 옷걸이에..옷한벌이 눈에 들어왔다.

회색 원피스에 작은단추가 촘촘히 달린 쟈켓.. (본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네...)


2년전 9월.. 진학을 준비하다 사연이 길어 취직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어디서 월급은 작아도 엔지니어가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준단 쌍용정보통신(지금 재미회사)의 원서를 우여곡절끝에 손에쥐고는 참 가슴설레했었다.

왠지 인연이 닿을꺼라는 확신이 들어서였는지..

서울에서하는 1차 면접통지를 면접일 이틀전에 받게되었다.


당시 뽀빠이 바지에 달랑묶은 머리..운동화.. 대학생활의 주요 스타일이었던 나에게 면접을 준비하기란 이틀도 빠듯했다. 포항에 계시는 부모님이 갑자기 내려오셨고.. 3시간만에.. 구두부터...정장 장만까지 서둘러 쇼핑을하고 서울가는 기차를 타야만했다.

기차안에서야..난 옷가방의 옷을 꺼내보았다.

한눈에보고..이건가봐라고 집어들었던 옷을 꺼내보며..

난생 처음하는 면접에대한 묘한 두려움.. 기대감을 느꼈다.


면접하는날.. 이틀에 걸친 면접을 보면서 난 참 비장했었다.

하고싶었던 네트웍분야의 전문가가 되어보겠다는 각오..

업계에서 네트웍만큼은 최고라는 우리회사에대한 기대감..


" 쌍용정보통신은 지금 어떤 다른 회사보다 저에게는 1순위입니다. 그만큼 전 회사에 거는 기대가크며 회사에서도 그만큼 기대를 걸어도 절대 실망하지 않으실겁니다." 지금생각하면 참 당돌했다.

그때의 내 눈빛이 난 지금도 궁금하다.


두시간을 자고 아침 여섯시 눈을떴다.

그런 스스로에게 사뭇놀라며 난 새벽에 옷걸이에서 2년전 10월을 기억하게하는 옷을 입는다.

짧은 머리를 한껏당겨 하나로 묶어 핀을 꽂으며

10월 3일......

충무로에서 내려 검은색 핸드백을 크로스로 메고는 서류봉투하나를 들고

지금 내가 근무하는 이 빌딩을 찾아헤매던 그날의 긴장감을 기억해낸다.


회사로 접어드는 보도블럭을 걸으며

처음 우리팀에와서 선배들의 바쁜 하루 일과를 보며 참 부럽다 생각했던 12월 17일 아침을 기억해낸다.


처음맡은 프로젝트에서 애꿏은 고객때문에 밤늦게까지 회사를 떠나지못하며

혼자서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었던 2000년 봄을 기억해내다

울고있던 나를 늦은시간 찾아와 손수건이 없어 미안하다며

크리넥스 티슈 한통을 건네주던 참으로 존경했던 선배님 얼굴이 생각이 난다.


5일밤을 연장 달아서 새고도 처음 써놓은 제안서가 혹시나 잘못되었을까봐

잠한숨 못자고 결과를 기다려야했던

지난해 초여름..

제안서 합격이라는 기쁨의 통지를 받고 함께 일했던 선배들과 늦은밤 롯데월드를 달려다니며

놀이기구를 탔던 그날을 기억해낸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참 힘이났고 즐거웠던 시간들이..

2년 조금은 일에 익숙해가고 조금은 덜 긴장되는 시간들을 만들며 난 삶의 일상에 길들여지고 있었나보다.


지금은 운동화처럼 되어버린...

2년전 새로샀던 영에이지 검은색 구두에 구두약을 묻히며..

회색 원피스에 쟈켓을 껴입으며 단추 하나하나 영글게 채워나간다.


처음 시작했던 그날...

그때의 설레임.......

그때의 기억들이

오늘 아침...나에게 새로이 일어서보지 않겠냐는 달콤한 마음을 다짐하게한다.


이젠 부끄러웠고 정신없었던 일과에 대한 생각을 가만히 접어보기로했다.

감격하며 하루를 살아가도 모자른 나의 귀한 시간들을 다시 한번 추스려봐야겠다.

살아가는게 무거워질때.. 내가 뭘하고있나 자꾸 물어보고싶을때..

처음 시작했던 그날...

처음 마음을 먹었던 그날..... 그날을 끄집어내보면 어떨까??


7시 30분.. 아무도 없는 사무실을 들어서며.

이쁜 치마정장에 노트북을 울러맨 날보며 애꿏은 핀잔을 던질 고객사 개구장이 아저씨들이 생각나 웃음이 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시간, 나의추억]2002년 5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