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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잼 Aug 07. 2023

키워드로 보는 일본(4) 와(和)의 사상

일본인의 정신은 어디에서 왔을까


와(和)는 와의 사상, 와의 정신 등 일본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단어이다. 흔히 일본인은 개인보다는 집단 내 조화를 더 강조하고, 민폐를 끼치지 않으며, 속마음을 바로 내세우지 않는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어 있는데, 이것이 와에서 기초한 문화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와는 일본을 넘어서 집단주의, 관계주의 등으로 대표되는 동양의 문화로 인식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일본의 고유 사상이자 일본인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와의 기원과 현대 일본 사회를 와라는 사상에 비춰 살펴보도록 하겠다.



와(和) 사상의 정립은 아스카 시대부터


일본인의 집단의식의 강화는 야마토 정권이 안정기에 접어들고 일본이 고대 국가 형태를 잡아가던 아스카 시대부터 발달했다 할 수 있다. 일본의 집단의식은 농경생활로 인해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본의 국토를 살펴보면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섬나라인 데다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인 일본의 국토 특성상 농지로 활용할 수 있는 토지가 극히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쩌서 일본인은 집단의식을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한 와 사상이 널리 퍼졌던 것일까. 이는 농경을 주 산업으로 한 야마토 정권에서 찾을 수 있다. 야마토 정권은 규슈에서 시작되어 긴키까지 영향력을 넓혀왔다. 야마토 정권이 시작된 규슈는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고, 이 땅을 바탕으로 규슈와 가까운 한반도에서 전래된 벼를 수확했을 것이다. 


특히 벼는 생산이 어려워 희소성이 있고, 그 영양 또한 뛰어나 주식에 대한 갈망이 컸다. 이러한 벼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 공동으로 토지나 관개시설을 쓰고 관리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일찍이 정주와 공동생활을 해온 야마토 정권의 사람들은 집단의식을 키워왔고, 야마토 정권이 혼슈로 영향력을 넓힘에 따라 이러한 집단의식이 일본 전역으로 확산된 것이다.


야마토 정권의 중앙집권체제를 마련한 쇼토쿠 태자(가운데)

와의 사상이 문서로써 나타난 것은 아스카 시대, 쇼토쿠 태자의 17개 조 헌법의 발표 이후이다. 쇼토쿠 태자는 17개 조 헌법 1조에서 「和をもって尊しとし、逆らわないのを教義とせよ。(와를 더욱 존중하고, 거역하지 않을 것을 교의로 하라)」라 하여, 와 정신의 강조와 천황 중심의 황실에 거역하지 말 것을 명하고 있다. 이는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거스르지 말고, 천황 아래 모든 이들이 일본이라는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서로 화합하여 살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일본인을 국가라는 집단에 소속시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이루고자 등장한 와의 사상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일본 사회 내 암묵적 룰이 추가되었고, 현대에 이르러 일본인을 설명하는 일본인의 정체성으로써 확립되었다 할 수 있다.




와의 사상과 현대 일본 사회


아스카 시대로부터 일본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온 와의 사상은 에도 말기 국학의 유행과 메이지 이후 일본제국의 성립에 따라 일본에 대한 정체성을 탐구하는 경향을 거쳐 현대 일본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와의 사상은 우리가 흔히 "일본인의 특징"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인의 대다수에게서 접할 수 있는 일본만의 고유문화로 정립되었다.


먼저 집단주의부터 살펴보겠다. 집단주의는 사실 벼농사 문화권에서는 쉽게 살펴볼 수 있는 특징이다. 흔히 동서양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데에도 이 기준이 사용된다. 일본의 경우에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섬나라인 데다 70% 이상이 산악 지형이며 화산에 의해 형성된 지형으로, 논농사에 적합한 지형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벼를 중시하는 일본의 중앙 문화가 복속 지역으로 확산됨에 따라 벼농사로 인해 자연생성 된 집단주의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다테마에(建前)와 혼네(本音)이다. 흔히 일본인은 속마음인 혼네를 말하지 않고 표면적인 말인 다테마에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다테마에로 인해 일본인은 속마음을 알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모든 지역이 그런 것은 아니며, 특정 지역에서는 다테마에가 강한 경향이 있다. 특히 교토와 도쿄가 대표적이다. 교토의 경우, 천 년간 일본의 수도였고, 귀족 중심 사회라서 본인의 속마음을 내세우지 못했던 것이 다테마에가 강한 경향으로 이어졌다. 도쿄의 경우, 에도 시대에 막부가 들어서며, 무사 중심의 위계질서가 다테마에를 강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서열사회이다. 일본의 고용제도의 특징 중 하나가 '연공서열(年功序列)'이다. 연차가 쌓임에 따라 그 직급과 대우, 봉급 등을 자동적으로 올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연공서열의 근간을 찾아보면, 사유재산의 등장에 따른 계급이 발생한 것보다는 에도 시대 '무사'에 의해 발생했다 보는 것이 신빙성 있다. 에도 막부는 피라미드형 계급 사회로 위계질서를 매우 중요시했다. 에도 시대의 무사는 그 직위와 봉급, 명예를 당사자는 물론 당사자의 후손까지 영속적으로 세속 하는 사회였다. 이러한 특징이 현대의 연공서열제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고대 일본 중심의 농경문화로 시작된 집단주의와 중앙집권체제 확립을 위한 17개 조 헌법의 등장으로 시작된 와의 사상은 현대 일본으로 이어져 일본인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 할 수 있다. 일본인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집단주의, 다테마에와 혼네, 연공서열 등의 문화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을 가지고 형성되었다 할 수 있다. 와의 사상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사상이 시대를 거쳐 어떻게 변화함에 따라 우리가 현대 일본을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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