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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잼 Aug 21. 2023

키워드로 보는 일본(6) 쌀밥

한국만큼 쌀밥에 진심인 나라


우리도 그렇지만 일본에서도 쌀밥을 참 좋아한다. 한식에는 밥과 국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와쇼쿠(和食)에서도 하얀 쌀밥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 드라마나 영화, 심지어 애니메이션에서도 가족이 둘러앉아 한 손에 밥그릇을 들고 김이 올라오는 새하얀 쌀밥을 먹는 모습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모습일 정도다. 그렇다면 일본은 언제부터 쌀밥을 먹기 시작했을까? 이번 글에서는 일본이 쌀밥을 주식으로 선택한 시기와 일본에게 있어 쌀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탐구해보고자 한다.



고훈 시대부터 재배한 쌀, 국민의 음식이 된 건 메이지?


일본은 국토의 70%가 산지이다. 게다가 화산활동으로 생긴 섬인 만큼 지형의 영향으로 논농사를 하기에 유리한 곳은 아니다. 논농사에 유리한 곳은 간토평야(도쿄를 중심으로 한 평야지대)와 아키타, 니가타 등 일부 지역 정도이다. 때문에 쌀은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쌀은 야요이 시대(기원전 3세기~기원 후 3세기) 이후 중국이나 한반도에서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 일본의 지형은 쌀을 보편적으로 재배하기에 적합하지 않아 일부 평야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재배되었다. 이탓에 주로 지배 계급이 쌀을 주식으로 먹었고, 쌀에 대한 갈망은 고대 신도(神道)에서 공물로 채택되며 신성시되었다.


그렇다면 이 시기 일본인들은 무엇을 먹으며 살았을까. 쌀이 일본 전체에 보급되기 이전에는 산나물이나 바다의 해산물을 먹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밭농사를 통한 밭작물이 주식이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산촌과 어촌은 각 마을에서 재배한 산나물이나 해산물을 물물 교환하는 형식으로 부족한 식량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 전체에 쌀이 보급된 것은 언제일까. 쌀이 외부로부터 전래된 것은 3세기 경이지만 일본 전체에 쌀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600년 정도가 지난 메이지 시대 이후로 알려져 있다. 에도 시대에도 쌀을 조세의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다이묘의 권위가 쌀 재배량인 고쿠다카(石高)로 나타낼 정도로 쌀은 중요한 작물이었다. 그럼에도 일반 서민층에서는 쌀을 먹긴 했지만 늘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메이지 시대 이후, 근대화에 따른 급격한 인구 증가와 전체적 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쌀 수요가 급증하였다. 쌀에 대한 갈망은 쌀을 향한 투기로 이어졌고, 전국적인 쌀 부족 현상으로 1918년 쌀 폭동이 일어나기에 이른다. 1921년 일본정부는 미곡법을 통과시켜 쌀 가격을 정부가 조절하도록 하였고, 1920년대에는 식민지 조선에서 식량 증산 계획을 실시해 조선에서 재배한 쌀을 일본에 공급했다.


1930년대 이후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 등 연이은 전쟁으로 인하여 다시 쌀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1940년대에는 쌀을 시작으로 주요 식량에 대한 배급제가 시작된다. 이러한 현상은 패전 이후에도 계속되어 196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다시 쌀을 주식으로 넉넉히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인에게 쌀이란


와쇼쿠(和食)의 기본 구성, 1즙 3채와 밥


일본인에게 쌀이란 어떤 의미일까. 일본의 일반 가정식인 와쇼쿠는 쌀밥과 1즙 3채(국 하나, 반찬 혹은 나물 3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주식이 쌀밥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 쌀밥은 언제나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작물은 아니었다. 영양가 높고, 보존이 쉬운 만큼 재배 면적이 작고 재배량이 많지 않았다. 때문에 고대부터 특권층이 주식으로 쌀밥을 먹었으며, 이 같은 특권층의 문화를 선망한 일반 서민층이 시대가 흐름에 따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며 일본인 전체의 주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벼 파종을 하는 나루히토 덴노(왼쪽), 신도에서 공물로 바쳐지는 쌀(오른쪽)


이러한 일본인의 쌀 사랑은 고대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자연물을 숭배하는 애니미즘으로부터 시작된 고대 신도(神道)는 외부로부터 쌀이 들어오자 그 보존성과 영양, 맛에 매료되어 신에게 바치는 공물로써 쌀을 채택했다. 이를 증명하듯 현재에도 덴노는 연례행사로 벼를 파종하고, 모내기를 하는 등 쌀농사를 하나의 의식처럼 행하고 있다(일본 고쿄(황거) 내부에는 논이 있다).


신도가 일본 제국 시절 국가 신도를 거쳐 지금에는 종교보다는 일본인의 생활양식처럼 변화한 현시점에서 덴노의 이러한 행위는 전통의 유지와 계승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신에게 바쳐지는 공물로써의 쌀, 귀족들이 먹던 주식으로써의 밥을 선망한 수많은 일본인들은 그 정신을 대대로 이어, 지금의 일본인의 주식, 쌀밥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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