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딱 한번 개정된 일본의 헌법
일본의 헌법은 흔히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헌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이는 옳은 표현이 아니다. 일본 헌법의 전체적인 역사를 보면 딱 한 번 개정된 전래가 있다.
헌법의 체제를 두고 본다면 지금의 일본국 헌법은 1947년 이래 단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다. 한국과 프랑스는 9차례 헌법을 개정했고, 미국은 헌법에 부분적으로 추가하거나 수정이 가능해 수정된 헌법 조문을 수정 헌법이라 부를 정도로 잦은 헌법 수정을 거쳤다.
그렇다면 일본 헌법은 전후 왜 한 번도 개정 작업을 거친 적이 없었을까. 또, 일본 헌법은 근대화 이후 어떤 역사를 가졌던 것일까. 이번 글에서는 일본 헌법의 제정과 개정의 과정 및 그 특징에 대해 탐구해보고자 한다.
헌정사의 시작, 대일본제국헌법(大日本帝国憲法)
일본에서 처음 헌법이 만들어진 것은 19세기말, 이른바 '제국 헌법'으로 불리는 대일본제국헌법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덴노를 일본의 통치자로 돌려놓은 번벌파(藩閥派)는 본래 헌법을 통한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다. 덴노를 일본의 통치자로 올려놓기만 할 뿐 실질적 통치는 막부 시절처럼 자신들이 할 생각이었다.
1880년대가 되면 번벌파가 아닌 지식인을 중심으로 헌법을 제정하고 의회를 창설하라는 자유민권운동이 전개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부는 헌법 제정 요구를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일본 제국의 외교 상황에서 변화하게 된다.
일본은 미국과의 수호통상조약을 시작으로 서양 각국과 맺은 불평등 조약을 자신들에 유리하게 개정하려 했다. 그러나 서양 각국의 반응은 "법치 체계가 없는 일본을 뭘 믿고 조약을 개정해 달라는 거냐"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법치 체계를 위해서 헌법 제정 필요성을 느끼고 헌법 제정에 착수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대표로 하는 정계 주류 세력은 미국, 영국, 독일 등 서양의 헌법을 검토하고, 강력한 황제의 통수권을 지지하고 있던 독일 제국 헌법을 참고해 1889년 제국 헌법을 제정, 공포하고 이듬해 시행했다.
제국 헌법의 큰 특징은 전제군주적 입헌군주제라는 것이다. 군주가 헌법에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군주가 중세처럼 강력한 통치기구로써 지휘를 가지고, 헌법이 이를 보장하는 것이다. 특히 군통수권이 덴노에게 주어지는데, 이 조항으로 1930년대 일본은 정계의 컨트롤을 받지 못한 육, 해군이 자신들 멋대로 국가 정책과 전쟁 수행을 집행하게 된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 만들어진 근대적 헌법은 군주의 권력을 제한하고 근대적 의회와 정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것이 특징인 것에 반해, 제국 헌법은 덴노에 모든 권력을 집중시킴과 동시에 국민(신민)의 권리와 의무는 덴노를 나라의 어버이로서 모시며 충성하는 것에 따른 산물이라는 '가족국가관'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제국 헌법 하의 일본 제국은 덴노를 향한 절대적 충성과 복종을 종용하고, 청일전쟁부터 아시아·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쟁 기간 일본 국민이 철저히 국가가 주도하는 전쟁 수행에 협조하고 동원하도록 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했다.
미국의 강요 혹은 현대 일본의 근거, 일본국헌법(日本国憲法)
제국 헌법 체제는 아시아·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하며 그 체제 자체의 존립이 위태로워졌다. 연합군최고사령부(GHQ)의 맥아더는 일본이 전쟁의 길로 걸어간 것이 제국 헌법이라 지적하며 헌법을 새로 제정하는 수준으로 개정할 것을 결정했다.
맥아더의 결정이 있자 당시 일본 내각인 시데하라 내각은 헌법문제조사위를 구성하고 헌법 개정안을 검토하는데, 제국 헌법에서 문구만 조금 수정하는데 그친 헌법 개정안에 맥아더는 불만을 표시, 이윽고 GHQ가 직접 헌법 개정 초안을 작성하기로 결정한다.
GHQ가 만든 헌법 개정안의 핵심은 3가지다. 첫째, 상징천황제. 덴노를 국가 원수로 두되, 모든 권한은 헌법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다. 둘째, 평화주의. 모든 무기와 육해공군 전력을 포기하며,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 법 앞의 평등. 화족(귀족) 제도를 없애고 이들을 평민과 똑같이 만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헌법 개정안을 일본 정부에 들이민 GHQ는 천황제를 유지하고 싶다면 GHQ의 헌법 개정안을 받아들이라 압박했다. 다른 것보다 천황제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던 일본 정계는 결국 이 헌법을 받아들이고 1946년 헌법 개정안을 공포, 이듬해 5월 3일 지금의 헌법을 시행한다.
1947년 시행된 일본국헌법은 현대 일본의 초석이 되었다. 심지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고 지금의 일본 시스템을 이루고 있다. 헌법의 개정 절차가 복잡한 경성(硬性) 헌법이라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전쟁으로 "민간인"인 "일본 국민"이 막대한 피해를 봤다는 점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여론이 헌법을 개정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여론 역시 최근 들어 급변하고 있다. 중국의 지속적인 부상과 북한의 도발로 일본의 여론 역시 나라를 방어해야 하기 때문에 평화주의를 규정한 조문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대세이다.
여러분은 일본 헌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가 민주화를 쟁취하는 과정 속에서 9번이나 헌법을 개정한 데에 비해 일본은 단 한 번도 국가의 시스템을 바꾸지 않았다. 또, 그 헌법은 미국에 의해서 미국의 압력으로 만들어진 헌법이라는 견해도 있다. 반면, 일본 헌법의 평화주의 조문으로 일본이 전력을 완전히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타국의 헌법임에도 우리가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하는 이유는 일본의 헌법이 바뀜에 따라 동아시아의 군사적 상태가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일관계에 있어서 자위대의 존재가 어떤가 보다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로 향하고 있는 동아시아에 있어서 자위대의 존재가 어떻게 되는가가 일본 헌법의 개정으로 크게 변화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간략하게 일본 헌법의 역사와 특징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이번 글의 연장선상으로 일본 내 헌법 개정 논의의 핵심인 9조와 자위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