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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잼 Oct 30. 2023

키워드로 보는 일본(14) - 신사

걸어서 신의 세계속으로

교토의 야사카 신사(八坂神社)


성당, 교회, 절, 모스크. 세계 각지에는 다양한 종교 시설이 있다. 언급한 네 곳은 적어도 복수의 나라에 퍼져 국경을 초월하여 세워져있다. 한편 일본에는 일본만이 가지고 있는 종교 시설이 있다. 바로 신도의 신사(神社)다.


2022년 기준 종교법인을 포함한 신도계 종교단체는 87,072개(종교통계조사, 문화청, 2022)로 이는 곧 일본 정부가 파악(혹은 인정)한 신사의 총 수와 같다. 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극소형 신사까지 포함하면 2~30만 개의 신사가 일본 전국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신사의 역사와 종교 시설로서의 역할, 그리고 현재의 신사의 기능에 대해서 탐구해보고, 우리는 이 신사에 대해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면 좋을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신사는 무엇일까?


앞서 신도 편에서 언급했듯 신도는 자연물에 영령이 깃들어있다는 애니미즘 사상에서 발전하였다. 자연만물에 저마다의 신이 있기 때문에 초기 신사는 지금처럼 신을 모시는 본전이 없고, 그저 제사를 지내면 다양한 신이 찾아온다고 믿었다.


이후 시대가 흐르며 중국, 한반도의 다양한 사상(특히 불교)의 영향을 받아 본전을 세우게 된다. 특히 석가모니 하나를 모시는 불교의 사원의 영향으로 하나의 신사에 하나의 신만 모시도록 발전되었다. 무사들의 시대를 거치며 전쟁 속에서 신사들도 많이 훼손되었는데, 지금 우리가 보는 신사들은 모두 에도 시대 때 세워진 것이 계승되고 있는 것으로, 에도 시대 때에는 기록을 토대로 과거 신사는 이랬을 것이라며 추측해 세운 것이다.


팔백만의 신의 종교라는 이름에 걸맞게 신사마다 모시는 신도 제각각이다. 이세 진궁은 일본 신화의 시조라 알려진 아마테라스 오오카미라는 여신을 모신다. 하치만 신사는 도래인으로 일본을 발전시킨 오진 덴노를 하치만신으로 모신다. 덴만구는 학문의 신으로 불리는 헤이안 시대 귀족,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모신다.


이렇게 사람이나 신화 속 신 외에도 여우를 곡물의 신으로써 모시는 이나리 신사, 원숭이를 모시는 히요시 신사 등 특정 동물에 의미를 부여해 신으로 모시는 곳도 많다.


신사는 초입에 세워진 토리이(鳥居)를 지나는 순간  시작된다. 이곳부터는 신이 머물고 있는 공간으로 몸과 마음 가짐을 바르게 해야한다.


토리이를 지나 참배길 초입에는 입과 손을 헹굴 수 있는 테미즈샤가 있다. 이곳에서 바깥의 더러움과 말로서 행한 더러움을 씻어내 본격적인 참배를 행할 준비를 한다.


참배길을 지나면 배전(拝殿)이 나오는데 이곳이 일반 사람들이 새전을 하고 기도를 하는 곳이다. 배전보다 더 안쪽에는 본전 혹은 신전(本殿、神殿)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신사에서 모시는 신을 모셔두는 곳이다.


경내에는 운세를 점치는 오미쿠지(おみくじ)나 바람이나 소원을 적어두는 에마(絵馬)가 있으며, 신사에 따라 주로 모시는 신 외에 다른 신을 모시는 섭사(摂社)가 있는 경우도 있다.



신사의 격


신사에도 격이 있다. 나라 시대 다이호 율령에 나라에서 관리하는 신사의 격을 규정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을 관사 혹은 식내사(式内社)라고 부르는데, 조정으로부터 제사에 필요한 곡물 등을 봉납받았다.


중세에는 한층 세밀화되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지휘를 가지는 이치노미야(一宮), 특정 지역의 제신들을 모아 한꺼번에 모신 총사(総社), 조정에서 신령에게 급히 고하기 위해 헤이안쿄와 기나이 22개 신사를 지정한 22사 등으로 나뉘었다.


이세 신궁의 토리이


이후 메이지 시대가 되면 국가 신도의 부흥을 위해 중세의 자료를 바탕으로 신사의 격을 지정했는데, 이를 근대사격제도라 한다. 이세 신궁 아래 관폐사와 국폐사로 나눈 뒤, 그 안에서 규모에 따라 대, 중, 소로 다시 나누었다. 이세 신궁의 경우 일본 황실의 조상 신인 아마테라스를 모시기 때문에 사격을 초월한 존재였다. 근대의 사격제도는 불교 전래 이후 신불습합으로 신도와 불교가 혼재 된 신사를 다시 신도만을 위한 신사로 재편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메이지 신궁의 토리이


근대에는 황실의 권위가 중요한 만큼 덴노의 대리자로서 칙사가 파견되어 제사를 올리는 칙제사가 존재했다. 도쿄의 메이지 신궁과 야스쿠니 신사, 교토의 헤이안 신궁, 가모 신사, 바다 건너 조선의 조선신궁이 이에 해당되었다. 특히 조선신궁은 관폐대사로 사격제도에서 이세 신궁 다음으로 높은 격을 부여받았다.



신사의 현재와 미래


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이후 GHQ의 간접통치를 받던 시기, 일본의 신사들은 국가 신도를 통해 일본 국민을 전체주의와 전쟁 지지로 몰아넣었다며 대대적인 개혁을 받게 된다. 국가 신도와 근대 사격 제도가 폐지되고, 신도가 종교 법인으로 떨어져 정교가 분리되며 각 도도부현별로 고대에 쓰던 사격을 비공식적으로 쓸 뿐, 공식적인 사격 제도는 폐지되었다.


일본인의 관습이 되어버린 신도 특성 상, 아이가 태어났을 때 혹은 일정 나이가 되었을 때 신사를 참배한다던지, 새해 건강과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신사 참배를 한다던지, 신도식 결혼식을 신사에서 한다던지 등 관혼상제와 관련 된 모습으로, 불교나 기독교 등 타 종교처럼 유일신에 대한 신앙의 모습은 거의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과거부터 영엄하다 알려진 신사들을 돌아다니며 참배한다던가(신사 순례), 일생에 한 번은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를 모신 이세 진궁을 간다던가(이세마이리) 하는 등 신앙으로서의 관습과 전통도 유지되고 있다.


조선 신궁


외국, 특히 식민지배를 당한 한국의 입장에서는 신사에 대해 시선이 좋지만은 않다. 한반도에 세워졌던 신궁과 신사는 모두 폐쇄되어 다른 건물로 대체되었고, 평양 신사의 경우 신을 하늘로 올려보내는 승천식도 못한 채 평양 시민들에 의해 불태워지기도 했다.


또, 아시아·태평양 전쟁기 A급 전범과 전쟁을 수행한 일본인을 비롯해 징병, 징용으로 끌려간 식민지 주민들까지 전쟁 영웅 혹은 호국 영웅으로 신으로 모셔져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 된 것은 많은 국가로부터 비판받는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신사는 이렇게 양면적인 요소를 가진채로 일본 전국 각지에 퍼져있다. 일본에 있어서 일본인이 지치고 힘들 때 기댈곳이자, 중요한 관광자원, 그리고 문화재의 하나이다. 외국인에게 있어서도 일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임과 동시에 일본에 식민지배를 당한 국가에게는 아픔을 주는 신사도 있다. 신사라는 것을 일본 고유의 문화로서 인정하고, 동시에 우리가 겪은 아픔 역시 함께 나타내야 신사가 가지고 있는 그 역사에 대해서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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