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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잼 Feb 02. 2023

초밥으로 보는 일본 사회의 특징

스시로 사건과 한국인을 향한 와사비 테러를 통해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은 국내 대학에서 일본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부생으로 글의 내용과 실제 사실이 맞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본인의 전공 지식이 부족한 경우이니 댓글을 통해 피드백을 남겨주시면 본인의 배움에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출처: 株式会社ジール


최근 일본에서는 회전초밥 대형 프랜차이즈 인 '스시로(スシロー)'를 둘러싼 영상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스시로를 찾은 손님이 간장병을 핥거나, 셀프 바의 그릇을 핥고 두는 영상이 올라 온 것입니다. 스시로 운영사를 산하에 두고 있는 FOOD & LIFE COMPANIES는 입장을 통해, "조속히 경찰과 상담하며, 민형사상으로 엄중히 처분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먹는 걸로 장난치면 안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음식은 인간의 생명과 연결 된, 의식주 중 하나를 맡고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큽니다. 먹는 걸로 장난치면 안된다는 말도 음식의 중요성과 연관이 있어보입니다. 그런 가운데 일어난 이번 사건을 스시로는 "안전하고 안심이 되는 초밥을 제공하는데 있어 고객과의 신뢰관계를 해치는 중대한 사안"이라 규정하고 엄중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위생을 강조 받고 있는 음식점의 특성 상 스시로의 단호한 대응은 당연하다 생각 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문득 기사를 읽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밥과 관련 된 장난이 말입니다. 바로 불과 몇 주 전, 후쿠오카의 한 초밥집에서 한국인이 와사비 테러를 당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사진 출처: 뉴시스(네일동)


한국인을 향한 와사비 테러는 상당히 오래되고 자주 발생한 뉴스입니다. 제 기억으로 한국에 어느 때보다 가장 잘 알려진 뉴스는 2016년 오사카의 한 초밥 전문점에서 일어난 사건일 것입니다. 특히 2016년은 일본을 찾은 방일(訪日) 관광객 약 2,400만 명 가운데 한국인이 약 500만 명으로 2번째로 일본을 많이 찾았습니다. (日本政府観光局) 그런 가운데 일어난 한국인 대상 혐오 사건은 아주 잠깐 불매운동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최근 몇 차례 한국인을 향한 와사비 테러가 있었습니다. 지난 해 외국인 입국 규제(水際対策)를 풀기 얼마 전 도쿄 긴자의 한 초밥 가게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와사비 테러 사건이 있었고, 불과 몇주 전 후쿠오카의 한 초밥 전문점에서 와사비 테러를 겪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한국인을 향한 일본의 그늘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스시로 사건과 와사비 테러 사건의 공통점은 일본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알려진 '초밥'을 둘러싸고 일어난 선 넘는 장난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사건을 개별적으로 살펴본다면, 스시로 사건을 통해 'SNS를 통한 익명성의 위험성' 그리고 와사비 테러 사건을 통해 '이방인을 배척하는 일본 사회'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SNS가 확산하며 익명성을 통해 사람이 일으킨 모든 불편한 사건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때문에 이 글에서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일본 사회의 이방인에 대한 배척성입니다.


특히 2016년, 오사카의 한 사철의 전차 내에서 '외인(外人)으로 인해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방송을 내보낸 사건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외인이라는 표현은 내인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우리 집단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차별어입니다. 다문화 사회를 표방하는 21세기에 와서도 이방인을 향한 배척성은 일본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음을 보여줍니다.


에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은 당시 청·조선과 비교하자면 개방성이 있는 사회였습니다. 나가사키를 통해 포르투갈과 교역을 시작해 17세기 중반부터 에도 시대가 끝날 때까지 데지마에서 네덜란드와 교역했습니다. 물론 청, 조선과 같이 일본도 쇄국 정책을 펼쳤고, 기독교 배척을 위해 선교사를 추방하는 등 유럽과 비교하면 상당히 폐쇄적인 사회입니다. 그러나 여타 다른 동아시아의 나라와 비교한다면 어느정도의 무역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나가사키가 있는 규슈 지역은 많은 이들이 기독교를 믿기 시작했고, 네덜란드에서 넘어온 학문을 난학(蘭学)이라하여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일본이 이방인에 대한 배척성이 강해진 건 메이지 시대 이후라 생각합니다. 일본은 일본이라는 사회가 형성된 이후부터 끊임없이 우리 공동체를 보호하고, 다른 민족과 자신들을 구분해왔습니다. 그러나 일본 사회의 배척성이 강화된 요인으로 메이지 시대를 꼽은 이유는 바로 '국민 국가의 형성'에 있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메이지 정부의 최대 목표는 천황 아래 전 국민이 일본을 위해 일하는 국민 국가의 형성이었습니다. 의무 교육을 통해 도덕과 역사 교육을 철저히 시켰고, '내 나라', '애국심'이라는 개념이 일본인에게 스며든 것도 이 시점입니다.


이후 일본은 수많은 나라와 전쟁합니다. 청을 시작으로 러시아, 독일, 그 이후에는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과 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국민들을 향해 내세운 메시지는 '목숨을 다바쳐 조국을 지켜라'는 것입니다. 일본인들끼리 뭉쳐 일본을 구하는 애국적 집단성이 매우 강했던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 50년 가까이 치룬 전쟁으로 외국에 대한 배척성 역시 강해졌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류의 규모가 커지면 명(明)도 커지지만 동시에 암(暗)도 커집니다. 초밥에 와사비를 더 많이 넣는 것으로 표출되는 외국인에 대한 배척성(특히 한국인에 대한)은 익명성과 집단성이 보장된다면 더욱 격렬한 형태로 표출될 수도 있습니다. 21세기 들어 '다문화' 정책을 수행하고 있는 일본 입장에서 달갑지는 않은 표현 방법일 수 있습니다. 진정한 다문화 사회가 일본 문화와 타 문화의 평등적 공존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외국인에 대한 배척성은 우리나라에게 시사하는 점도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참고기사>

https://www3.nhk.or.jp/news/html/20230130/k10013965171000.html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008434?sid=104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701757?sid=102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1656434?sid=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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