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위스키가 된다-(2)바 몰트룸

by 보통의 기억

야마자키 증류소 투어를 끝내고 교토로 돌아가 신칸센으로 갈아탔다. 일본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기차에서 에키벤을 먹는 것이었다. 교토역에는 다양한 에키벤 가게가 있었고, 그중 소고기 도시락을 구매했다. 밥을 차갑게 먹지는 않는 편이었기에 살짝 긴장했지만 맛있었다. 특히 스테이크가 굉장히 부드러워서 좋았다. 가격은 생각보다 있었지만 일본에서 기차 여행을 한다면 에키벤을 한 번은 먹어보면 좋을 것 같다.

신칸센을 타고 시즈오카에 도착한 후 숙소에서 쉬었다. 시즈오카에는 시즈오카 증류소가 있다. 공식 투어 프로그램도 있으나, 내가 시즈오카에 있는 날엔 투어 일정이 없어서 아쉽게도 가지 못했다. 덕분에 시즈오카에서는 일정이 거의 없었다. 평소에도 여행을 와서 무언가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기에 그냥 쉬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에 호텔 조식을 먹으려 했으나 늦잠을 자 먹지 못했다. 점심쯤 정신을 차리고 점심 메뉴를 알아보던 중 참치덮밥이 괜찮은 가게가 있다고 해서 먹었다. 꽤나 맛있는 참치덮밥이었는데, 특히 와사비가 굉장히 맛있었다. 평소에 먹던 와사비랑은 다른 느낌이었다. 처음에 주문할 때 점원분이 무슨 말을 했는데 못 알아듣고 오케이 했는데 알고 보니 밥 추가를 하겠냐는 거였다.

시즈오카에서 먹은 참치덮밥

점심을 먹고 주변에 슨푸성 공원이 있다고 해서 산책할 겸 구경하러 갔다. 공원은 산책하기 좋게 잘 되어있었으나 너무 더워서 조금만 걷고 숙소에 돌아가서 드라마 보면서 쉬었다. 저녁에 되어 메뉴 고민을 하던 중, 그래도 일본에 왔으면 라멘을 한 번은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라멘집을 찾아보았다. 그중 현지 느낌이 많이 나 보이는 곳을 찾아 들어가서 먹었다. 참치 덮밥과 라멘을 같이 주는 세트가 있었길래 먹었다.

라멘을 먹고 바를 갈까 싶어 주변에 바를 찾아보았다. 사실 바가 가고 싶긴 했지만 일본어를 거의 하지 못해 바에서 소통을 할 수 있을까 걱정되어 꺼려졌었다. 그래도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여행지의 바를 가지 않는 것은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기에 가기로 결심했다. 처음 찾은 바는 4층에 있는 바였다. 엘리베이터를 내리고 바 문을 열려했는데 잠겨있었다. 하지만 안에는 분명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조금 더 기다려봤는데 열리지 않아 다른 바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중 숙소를 가는 길에 있는, 번화가와는 조금 떨어져 있는 바가 있어서 갔다.

바는 크지 않은 크기였다. 바 테이블만 있고 일반 테이블은 없었다. 백바에도 여러 술들이 있었고, 바 테이블 위에도 다양한 술이 놓여 있었다. 특히 일본위스키들이 많이 있었는데 거의 다 처음 보는 위스키였다. 손님은 없었고 풍채가 있고 친근하게 생기신 사장님이 계셨다. 나는 글렌리벳 18년을 주문해서 마시던 중, 다른 손님 한 분이 더 오셨다.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손님은 단골인 듯하였다. 사장님과 자연스럽게 대화했고, 가게 TV에서 유튜브가 틀어지고 있었는데, 원하는 영상을 틀어주길 부탁했다. 캠핑 영상을 보기 시작했는데, 나에게도 말을 거셨다. 사장님은 내가 한국인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러자 통역기를 켜서 나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캠핑을 좋아하고, 최근에 앙코르와트를 다녀왔다고 이야기했다. 그 후에도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위스키를 좋아하는지, 피트 위스키를 자주 먹는지 등의 대화들. 나는 위스키를 좋아해서 일본에 증류소들을 투어 하러 왔다고 이야기했더니 시즈오카에도 증류소가 있고, 그곳의 위스키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했다. 시즈오카 증류소를 못 가 아쉬웠기 때문에, 시즈오카 위스키를 마셔보기로 했다. 내가 마신 위스키는 시즈오카 증류소의 프라이빗 캐스크의 피티드와 논피티드였는데, 각각 28병, 34병 밖에 없는, 사장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퍼레어한, 위스키였다. 숙성연도가 그리 길진 않았지만 CS(Cask Strength)였기 때문에 맛은 꽤나 진했다. 무엇보다도 그 지역 증류소에서 생산된 매우 희귀한 위스키를 마시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바라는 공간은 술이 주는 즐거움만큼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오는 즐거움도 큰 곳이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바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기대하곤 한다. 비록 언어의 장벽과 번역기의 한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타지에서 만난, 언어도 다른 사람들과 위스키를 통해 소통하는 일은 너무나도 값진 경험이었다. 증류소에서 많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위스키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만약 다시 시즈오카를 오게 될 기회가 있다면, 일본어를 더 공부해서 이 바에 꼭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땐 시즈오카 증류소도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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