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스타를 보다 우연히 다농 바이오 디스틸러 고준님의 블렌딩 클래스에 대한 광고를 보게 되었다. 클래스가 열리는 곳이 집과 가까웠고,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기에 바로 신청했다. 위스키 블렌딩은 예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다. 카발란 증류소를 가보고 싶었던 것도 카발란 증류소에서는 직접 블렌딩을 해볼 수 있는데 너무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카발란까지 가지 않아도 블렌딩을 해볼 수 있다는 건 너무나도 좋은 기회였다.
다농바이오는 충주에 위치한 증류소이다. ’많을 다‘와 ‘농사 농’을 합친 다농은 다양한 농산물을 이용하여 술을 만들겠다는 방향성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년 이상 숙성한 술은 전통주로 인정을 받을 수 없고, 그만큼 혜택도 줄어든다. 하지만 다농 바이오에서는 다년간 숙성한 증류식 소주를 상품으로 내놓고 있고, 이미 많은 매니아들이 있는 증류소이다. 예전에 친한 형이 가무치 not for sale을 가져와서 마셔봤는데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가무치 not for sale은 숙성한 소주였는데, 이제 숙성을 거친 소주는 수록이라는 라인업으로 출시되고, 숙성하지 않은 소주는 가무치로 출시된다고 한다.
처음 클래스 장소에 도착했을 때 좋았던 점은 각 자리에 이름옆에 블렌더라고 적어준 것이었다.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증류소의 블렌더가 되는 꿈을 꾸곤 했는데 이렇게나마 블렌더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제공된 원액은 세 가지였다. PX캐스크에 숙성한 싱글캐스크 CS, 레드와인 캐스크에 숙성한 CS, 토니포트 캐스크에 숙성한 싱글캐스크 CS. 클래스가 시작하기 전까지 각 원액들의 향을 맡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클래스는 다농바이오에 대한 소개, 디스틸러 고준님 소개, 테이스팅, 블렌딩, 순위발표 순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테이스팅 때 각 원액들의 테이스팅 노트를 적는 시간이 있었다. 위스키에 막 입문했을 때에는 테이스팅 노트를 많이 썼지만 최근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고 마셨다. 그러다 보니 더더욱 위스키 맛이 세세하게 나뉘지 않고 뭉쳐져서 느껴지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세부적인 테이스팅 노트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기도 하다. 오랜만에 테이스팅 노트를 적으려니 조금은 막막하기도 했지만, 비슷한 맛과 향을 찾아내는 작업이 나름 재미있었다.
각 원액을 테이스팅 한 후, 간단한 블렌딩에 대한 팁을 듣고 블렌딩이 시작되었다. 개인적으로 포트캐스크를 좋아하했기에 포트캐스크의 개성을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처음에는 포트, PX, 레드와인을 3:1:1로 블렌딩 했는데 정말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맛이었다. 두 번째 블렌딩 때엔 포트캐스크의 비율을 확 높였더니 꽤 괜찮은 결과가 나왔다. 세 번째에는 조금 더 밸런스에 신경을 쓰기 위해 레드와인의 비율을 높였는데, 두 번째 블렌딩보다 별로였다. 마지막 블렌딩은 포트, 레드와인, PX 6:3:1 비율로 블렌딩을 이번에도 괜찮았다. 두 번째와 네 번째 블렌딩 중 하나를 결정하기 위해 고민했는데 두 번째는 포트의 개성이 너무 강했기에 네 번째 블렌딩으로 결정했다. 원액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며 블렌딩 비율을 조정하는 일이 생각보다 매우 어려웠다. 내가 만든 블렌딩의 이름을 지을 수 있었는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 비워놨다.
네 번째 블렌딩을 제출하고, 마지막으로 순위 발표가 진행되었는데 이게 뭐라고 떨렸다. 먼저 디스틸러님이 향과 맛을 보고 1차로 5개를 선정했는데 다행히도 나의 블렌딩이 선정되어서 기뻤다. 아쉽게도 3위에 들지 못해 상품을 받진 못했지만, 13가지의 블렌딩 중 나의 작품이 1차로 선정되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블렌딩은 위스키의 완성이다. 각 증류소의 디스틸러들은 자신만의 철학으로 여러 원액들을 섞어 하나의 위스키를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디스틸러들은 그 증류소의 얼굴이기도 하다. 최근에 여러 증류소를 투어 하며 얻은 경험과 이번 블렌딩 클래스를 통해 많은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앞으로도 위스키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