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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민 Jan 11. 2022

배부른 연애

Y 이야기

케니더킹 - Lemonade




Y와의 연애는 배불렀다. Y는 인사보다 먼저 하는 말이 있었는데 '밥 먹었어?' 또는 '밥은?'이었다. Y는 언제든 항상 먹을 것을 지니고 있었다. 같이 데이트를 하다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릴 때면 한 다섯 봉지는 먹어야 간에 기별이 갈 듯한 미니 사이즈의 하리보 젤리나 캐러멜을 건넸다. "이런 걸 어떻게 구하고 항상 가지고 다니는 거야?" 하고 물으면 마치 국가 비밀이라도 되는 양 은밀하게 "입이 심심하면 마음도 심심하잖아"라고 속삭였다. 가끔 밥보다 잠이 더 중요하게 여겨져 끼니를 거를 때면 Y는 기어코 배달음식을 나의 집으로 시키고 리뷰 이벤트로 탄산음료까지 알뜰하게 받았다. Y는 받는 것보다 주는 걸 더 좋아하고 익숙해하는 사람이었다. 언제는 받기만 하는 게 미안해서 일을 하느라 비워진 Y의 집에 몰래 들어가 마치 우렁각시처럼 밀린 설거지와 가벼운 방 청소를 했다. 그리고 Y의 집에 가는 길에 파는 전기구이 통닭을 사서 짧은 손편지와 함께 뒀다.



퇴근을 하고 나의 흔적을 발견한 Y에게 곧장 전화가 왔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지만 수화기 너머 Y는 울고 있었다. 기존에도 일을 하고 있던 곳의 사람과 트러블이 있어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그날 갈등이 정점을 찍어 그만두겠다고 말한 날이었다. 지쳐있는 Y에게 집 안 곳곳 닿아있는 나의 흔적이 Y를 울린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간 내가 받아온 것을 생각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닌데도 그는 연신 고맙다고 하며 울먹거렸다. 우느라 다 식어버린 통닭을 눈물과 함께 먹었다고 한다. 언젠가 Y와 함께 길을 거닐다 전기 통구이를 파는 차량을 봤다. 그럴 때면 그는 어김없이 "저기 눈물과 오열의 통닭이다!" 하고 추억에 잠겨있는다. 그 모습이 애잔하면서도 멋쩍어서 괜히 웃음이 난다. 한편 'Y에게 전기구이 통닭은 이제 눈물을 닮은 음식이겠구나, 나와 이별하고 나서 전기구이 차량을 보면 또 눈물이 나려나? 그러면 그때는 어떡하지. 눈물을 흘리면서 혼자 처량하게 통닭을 먹게 두고 싶진 않은데' 같은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머리가 살짝 복잡해질 때쯤 나는 추억에 잠겨있는 Y를 가만 바라보면서 "다음엔 저거 나랑 같이 사 먹자!" 하고 등을 쓸어내린다. 언젠가 이별의 순간이 오겠지만 사랑과 연애는 끝을 보고 하는 건 아니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Y와 나란히 길거리를 걸으며 묻는다. "오늘 저녁은 뭐 먹을래, 후식은 배라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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