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하고 독한, 변태의 신화

한여름에 스모키한 위스키 같은, 놀라운 단편영화 <매미>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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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매력 있다.

드라이한 독한 양주를 목구멍에서 눌러가며 삼켜내는 매캐한 연기맛 같은 영상, 희미한 가로등 아래 변태하는 제3의 존재를 탄생시키는 신화적 서사의 시작.


우연히 왓챠 디깅을 하다가 발견한 작품이다. 파랗게 질린 나체가 등지고 있는 포스터에 끌렸고, 왜 제목이 ‘매미’일까? 생각하면서 감상했다. 마침 7월 말, 폭염이 남아 있는 한밤의 매미 소리와 함께 와인을 마시면서 영화를 곱씹어봤다. 와인을 마시면서 이 영화를 보다 보니, 와인보다는 얼음을 띄운 위스키가 더 어울리는 영화란 생각이 계속 들었다.


보고 나서 흥분상태에서 검색해 보니, 윤대원 감독의 졸업작품이고,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수상을 한 작품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포스터보고 디깅에 선택하다니! 유레카!

영상 내내 실이 낮게 떨리는듯한 불안한 음악이 깔리다가, 결말에서 둔탁하게 내 감각을 부쉈다. 엔딩에서 포스터의 그 장면이 나오고, 퉁-하고 거대한 조형물과 함께 땅 밑 지하에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자체가 전체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처럼 진행되어, 나도 비주얼적으로 느낀 부분 순서대로 정리하기로 했다. 영화는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안 좋은 의미로 익숙한 길, 우리가 알고 있는 문제의 남산 소월길이 나왔다. 그곳에서 실제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어서 기분이 묘해졌다. 남성과 남성이 어둠 속에서 폭력과 관음에 노출된 지극히 남성적인 공간이다. 그곳에선 색욕과 슬픔이 동시에 존재한다.

담배를 피우는 여자 주인공의 파리한 얼굴이 이상하리만치 고상해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그녀가 뭘 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는데도. 작은 불빛 아래서 무표정으로 대화를 한다. 당장 이곳을 뜰 거라고, 일을 그만둘 거라고. 낮은 톤의 목소리와 힘없이 지나가는 차들을 쳐다보는 모습이 우아한데 그 우아함이 내게 혼란함을 주는 오프닝이다. 고상함, 천박함, 불경함, 외설적임, 안쓰러움, 이방인, 섞이지 못함, 동정심… 이 다 섞여있는 여자는, 어디서 왔을까?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을까. 아니,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출신이 아닐지도..

묘한 표정의 마르고 머리가 긴 주인공. 그녀가 옆에 서있는 다른 트랜스젠더에게 말한다. “나 그만두려고.”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손님이 될 승용차 한 대가 바퀴를 끌면서 다가오고, 잠시 서로 훑어본 후 여자가 차에 올라탄다. 주인공이 남자의 차에 탑승 후 차로 이동하는 장면, 시퀀스 내내 불안한 현악기 소리가 기분 나쁘게 찢어지는 음으로 깔린다.

보통 이런 어두운 오프닝으로 시작한 영화에서 항상 주인공이 정체 모를 괴한에게 공격을 당하거나 서로 죽이는 게임이 펼쳐지는데. 불안감이 의도적으로 깔려있는 시퀀스가 이어진다. 가로등이 별로 없는 한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성매매 이전에 대화를 먼저 하자는 남자의 말에 창현은 힘없이 그렇게 하자고 대꾸하고 담배를 피워 문다. 참 궁금한 것도 많지, 쓸데없이.라는 삶에 잔뜩 질린 표정.

“후회 안 해? 이렇게 살아가는 거. 이렇게 살지 않을 수도 있었잖아, 충분히.”

“이러려고 떠났니, 창현아?”

여주인공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씬이다.

파리했던 창현의 눈빛이 혐오와 두려움이 가득한 파란빛으로 변했다. 나는 이 시점에서 창현과 운전석의 남자에게 어떤 서사가 있었는지, 둘이 어느 정도로 깊었던 사이였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남자가 창현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부터, 이 전 시퀀스에선 중요하지 않았던 ‘둘의 관계’에 대한 호기심과 긴장감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왠지 둘 중 한 명은 파괴될 것이 분명했다. 영화는 클라이맥스 직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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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이, 그때 창현을 따라가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창현의 눈동자는 당황해하면서 흔들린다. “어떻게 알고 온 거야?”라고 묻는다. 운전자석 남자는, 창현에게 여자가 된 것을 후회하냐고 묻는다. 창현은 아니라고 바로 대꾸한다.

“가난 지긋지긋하잖아. 나이 드니까 비참하잖아, 평범한 삶이 그립잖아. 창현아…”

창현의 목소리와 남자의 목소리가 묘하게 겹겹이 포개진다. 지랄하지 마라고 화내는 창현의 중저음의 허스키한 여성성 목소리, 가늘게 떨리면서 격양되는, 울먹이는 남자의 높은 목소리.

남자가 창현을 향해 “넌 남자야!”하고 언성을 높이고, 둘은 격하게 실랑이를 시작한다. 갑자기 남자가 과격하게 ‘확인을 시켜주겠다’며 창현을 차로 끌고 가 목을 조른다. 힘을 내 손을 뻗어 완력으로 남자를 제압하고 키스를 하는 창현. 둘은 키스를 마치고 흐느끼며 몸을 포갠다.

여자가 남자의 등을 꽉 끌어안는다. 성관계를 하는 자세 같다.

힘들었지, 하며 빨간색 손톱의 창현의 손이 남자의 등을 어루만져주고, 있는 힘껏 다리로 온몸을 조르기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괴로움의 주체는 남자가 된다.

“내가 꺼내줄게.”

남자의 등가죽을 손톱으로 찢는다.

몸부림 속에서 남자의 척추를 찢어내고 나오는 나체의 여자. 창현의 얼굴을 하고 달도 별도 별로 없는 시퍼런 하늘을 쳐다본다. 껍질처럼 남겨진 남자는 이미 죽은 듯하다.

지리한 핏빛 밤의 결투가 끝나고 두 발로 선 주인공의 등의 껍질이 벗겨지며 완전한 변태의 과정을 끝낸 생물이 드디어 탄생한다.

외계에서 온 이방인일까? 우리가 못 본 척 눈 가리고 마주하던 불완전한 삶이 완벽하게 개화하는 순간이다. 우주의 기준으로 그녀는 이미 모든 과정을 초월한 외계여행자였을 것이다. 그렇게 시체를 내려다보며, 달을 한번 보고. 지구의 삶이 정한 순리에서 벗어난 어떤 생물체로 진화해 버린다. 이제 그녀는 여자도 남자도 인간도 아닌 존재로 탄생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희미하게 그녀의 웃는지 숨을 쉬는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퀴어, 판타지, 자기 부정과 소멸, 탄생.이라는 코드들로 풀어낸 스산한 서사이자 낮은 베이스 음만 울리는 묵직한 단편영화였다.

나는 너고, 너는 나이며, 우리는 어둠 속에서 남몰래 나의 존재를 깨부수고 나와야 한다.

어둡고 축축한 느낌의 영화였다. 차가운 계곡에 비밀을 밀어 넣고 홀로 돌아오는데, 나만의 비밀에 흡족해하며 환희에 가득 찬 느낌. 비밀과 탄생은 언제나 짜릿하니까.. 마지막에 흐느끼며 다독여주는 창현이 ‘힘들었지, 내가 꺼내줄게’라고 속삭이는 부분은, 자신을 삭제하고 변태 하면서 성정체성과 삶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어내는 쾌감이 느껴진다.

짧고 강렬하다. 미사여구가 많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는 인디적 느낌이 강하면서도 어두운 배경에서 단 두 사람의 대화만이 이어지는 장면 내내 긴장감을 떨구지 않는 훌륭한 연출을 보여줬다. 물론 등껍질을 쪼개고 사람이 나오는... 그런 연출이 있지만, ‘자극적인’ 영화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많은 부분이 드러났지만 노골적인 느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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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미’는 성매매를 하는 트랜스젠더들을 칭하는 은어라고 한다.

매미란 생물은 통상 7년을 지하에서 살다가 모두가 잠든 밤에 나무뿌리를 타고 기어올라와서 변태 한다. 그리고 단 7일 동안 땅 위에서 울다 죽는다.

- 창현 역할 여자분의 연기와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적당히 허스키하고 묵직한 보이스가 멋진 분. 다른 영화에서도 뵙고 싶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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