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삼각형>을 겨우 보다
상영관이 많이 없어서 힘들고 슬프게 본 슬픔의 삼각형.
개인적으로 지금 이 영화와 비슷하다고 말이 나오는 <기생충>과 비교했을 때 연출은 아주 재밌고 영화 자체가 흡입력이 있지만 다시 볼 영화인지는 모르겠다. 아주 재밌었지만 주제의식이 너무 단순하고 노골적이라고 해야 되나. 드러내놓고 비꼬는 반항적인 영화를 만들 테다 -> 매력적인 영화가 나왔다.
영화는 총 3개의 배경으로 나뉜다. 그래서 나도 3개의 파트로 나눠서 감상문을 써볼까 한다.
모델캐스팅, 저녁식사, 지상 호텔
인간군상에 환멸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그걸 함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이 맨 처음 시퀀스로 등장한다.
남자주인공 칼이 모델 포트폴리오를 내밀고 워킹을 보이자, 정말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등 뒤에서 브랜드 관계자들이 외모평가를 한다. '쟤 이 사진 사람이랑 동일인물 맞아? 너무 다른데? 보톡스 좀 맞아야겠다', 하며.
모델 캐스팅 현장에서 조금 밥맛인 인터뷰어는 상반신 탈의한 남자모델들에게 썩 기분이 좋진 않은 요청을 한다. “웃어봐, H&M 모델처럼! 난 기후변화에 민감해요! 난 만인을 사랑해요! 난 행복해요! 다 집어 치고 넌 발렌시아가 모델이야! 내가 입고 있는 걸 너넨 입을 수 없어! 난 잘났어! 그래 시크하게!!”
패션업계가 좀 특이한데, 오로지 상위 클래스, 천만 원짜리 드레스와 수억 대 보석을 걸칠 수 있는 사람들이 소비하도록 만들어졌지만, 결국 그 세계를 희망하는 대중들이 죽을 듯이 쫓아다니며 돈을 쓰게 만드는 지독한 삼각형 구조에 돛을 내리고 있다. 그 세계 안에서도 계급이 갈리는데, 상위 우수 여자 모델들과 ‘기타 모델들’이 지독한 슬픔의 삼각형 구조에 다시 한번 시달리는 기괴한 판국이다. 패션쇼에서야말로 세상에 만연해있는 계급주의가 가장 비주얼적으로 화려하게 드러난다고 해야 하나, 권력과 돈 게임에 편승되지 못하면 대기실에서 조롱받으면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면서 쇼 메시지를 띄우지만, 철저하게 자본 계급과 사회적 계급에 맞춰서 패션쇼장 맨 앞줄에 아무나 앉지 못하게 정리한다. 그냥 위선덩어리 그 자체.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약간 촌스럽다.. 고 느꼈지만 재밌긴 했다.
그리고, 저녁식사 시퀀스 - 좋은 곳에서 비싼 저녁을 먹고 밥값 계산 때문에 칼과 야야가 싸운다. 젠더와 성역할에 대해 실랑이를 한다. 칼은 평등하길 원한다고 한다. 계산을 할 때마다 아야가 딴짓을 했다고 지적한다. 칼이 ‘나는 내가 남자, 너는 여자로 단정되는 걸 원하지 않아. 우리는 좋은 친구이길 바라’라고 하자, 야야는 ‘나는 친구랑은 안 자는데’라고 응수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논쟁이었다. 커플의 경제적 평등은 어느 수준에서 이뤄지며, 얼마나 타협해야 하나? 에 대한 주제도 던져준다. 아무튼 이 주인공 커플은 싸우다가 서로 어느 선에서 타협하며 시퀀스가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야야는 약게 군 것도 있고, 칼도 좀 찌질한 것도 맞고. 둘이 사랑하긴 하는데 비즈니스 기브&테이크 관계인 것도 맞고.
크루즈
부자들 묘사하는 부분이 전형적이긴 했지만, 달리 어떻게 포장하겠는가. 시종 내내 호화 크루즈에서 먹고 마시면서 크루즈 크루한테 무리한 요구를 하고 크루즈에선 그걸 다 들어준다. 그리고 선장은 술에 곯아서 방에서 단 한 번을 나오질 않는다. 크루즈 안의 모든 살림정돈과 고객관리를 담당하는 직원만 안절부절 뛰어다닌다. 이때부터 개막장 헬파티 전개가 예상된다.
이 영화에 나오는 부자들은 너무 교과서적인 전형적인 부자들의 모습이다. 술 많이 먹고, 난 똥 판다면서 자학개그를 하기도 하고(사실 국제적으로 비료를 파는 회사를 운영), 평화에 대해 조언하면서 군수물품 무기 개발하는 이중적 태도에, 처와 첩을 같이 대동하는 도덕적 뻔뻔함까지. 상냥하고 젠틀하면서도 묘하게 꼽을 주는 그 여유란.
영화 기생충에 나왔던 부자들이 약간 나이브하면서 철부지 모습으로 그려졌다면, 여기선 전형적인 서양 졸부들 느낌을 많이 살린듯하다.
파스타 면을 돌돌 말아서 직접 먹는 것처럼 온갖 포즈 취하며 SNS사진을 남자 친구가 찍게 한 뒤, 정작 단 한 입도 안 먹는 모델 야야를 보면서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생각났지. 돈이라는 부의 계급을 향해 몸부림치고 거짓말하는 인간 군상들. 그리고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진정한 부의 먹이사슬 끝판왕 졸부들의 그사세.. 가 뒤섞여 점점 어지러워지고, 급기야 크루즈가 거의 전복될 만큼의 큰 파도와 저기압에 휩싸이면서 울렁울렁 모조리 상하좌우 다 섞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마르크스주의와 평등주의, 자본주의의 모순을 외치며 사람들을 조롱하기 시작하는 알코올중독 수준인 선장과 러시아 갑부의 긴 쓰레기 같은 만담코미디가 펼쳐지면서 사람들이 오물에 뒹굴기 시작한다. 그리고 변기마저 똥물을 뿜으며 참고 참았던 부조리에 대한 감정들이 폭발하듯 파워 역류…
그리고 그 유명한 구토 씬이 정말.. 정말.. 오래 나오는데, 와중에 괴로워하는 손님들에게 하나하나 서빙되는 디쉬들이 고급스럽고 정성스러워서 아이러니하다. 손님들은 토기를 참으며 몸부림치고, 흔들림에도 끄떡없는 크루즈 서버들은 계속 식사를 이어가라고 권한다. 한쪽에선 억지로 밥을 먹고, 다른 한쪽에선 토하고 쓰러지고…. 카메라가 너무 흔들리는데 이 시퀀스가 길기도 길어서 나도 울렁거렸다. 좀 역하긴 했는데, 나중엔 더럽다기보다 승객들이 너무 불쌍했다.
너무 어이없는 그다음 전개 - 승객 중 한 부부가 평생의 숙원사업으로 일궜던 수류탄이 해적의 도발로 배로 날아오고, 모두 다 죄다 폭발하면서 호화크루즈가 박살 나는 장면. 대부분의 승객들이 토하고 싸는 와중에 오물 속에서 뒹굴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으악.
섬
해적들에 의해 난파되고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 가장 원초적인 기술인 사냥능력, 불 피우기, 민첩한 생존전략을 갖춘 크루즈의 청소부 출신 ‘애비가일’이 살아남은 크루의 대장이 된다. 기존의 사회=크루즈에서 가장 최하단에 위치한 노동자였던 그녀가 섬에서 갑자기 계급 전복으로 인해 왕이 되고, 아야는 남자 친구를 너무 쉽게 뺏긴다. 계속해서 성역할의 평등성을 주장했던 칼은 자신의 성적인 매력을 응용(?)해서 매일밤 노동(?)의 보상으로 프레첼스틱을 받게 된다.
애비가일의 평화로운 폭정(달리 표현할 다른 말이 없다)에 불만을 품은 백인 남성들이 일어나서 암컷 당나귀를 잡는다. 당나귀가 왜 외딴섬에 서식하지..? 했는데, 그게 복선이었다.
말 그대로 다들 잡은 물고기도 잡아먹고 섬에 적응하고 있을 무렵, 아야와 애비가일이 섬 중심부의 숲을 헤치고 탐색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해변가에서 쉬고 있던 난파 크루즈선 사람들 앞에 짝퉁 롤렉스와 가방들을 파는 관광지 잡상인이 등장한다.. 사실 섬 자체가 고급 리조트가 있는 조경의 일부였고 사람들이 드나드는 인간 문명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아야는 숲 너머에서 리조트 클럽 음악이 신나게 나오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발견한다. 아야가 어서 들어가서 도움을 구하자고 소리를 치며 부르지만, 애비가일의 표정이 절망적으로 무너진다. 돌아가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으니까. 돌아가서 다시 최하층의 삶을 살고 싶지 않은 그녀가 짱돌을 들고 야야의 뒤통수에 접근하는데… 그 순간 야야가 ‘당신을 돕고 싶다’고 중얼거린다. 독기 가득 저주를 품었던 애가일이 돌을 들고 울컥해서 눈물이 고 몸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근데 그 정적을 깨는 아야의 한마디,
“도와주고 싶어요. 돌아가면 당신이 내 어시스턴트를 하면 좋을 것 같네요” 이 천진난만한 대사가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관통하며 끝난 느낌이었다. 뒤이어 칼이 마지막에 미친 듯이 숲을 헤치고 달려가는 장면이 이어지면서 영화는 끝.
아야는 세치 혀를 놀리는 대가로 죽었을까?
칼이 달려가는 이유가, 야야가 돌에 찍혀 죽으면서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을까? 아니면 뭔가 낌새를 느끼고 섬 반대편으로 달려가보는 걸까? 알 수 없다. 검색해 보니까, 배우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처럼’ 달렸다고 하는데.. 열린 결말로 끝나는 상황. 하긴, 이 영화에서 결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결국 마지막 야야가 바다를 보면서 등 너머로 애비가일에게 하는 대사가 영화의 핵심 같았다. 끝내 벗어날 수 없는 계급과 권력의 굴레와 냉정한 계급질서. 인간이란 족속은 참 재밌고, 이기적이고, 주제파악을 못한다.
여담)
이게 대상 받을 만한 영화인가?라는 생각이 좀 들었다. 근데 요즘 칸영화제에서 상 줄 때 기준에 대한 의문+ 이런저런 오프더레코드 말들이 계속 많이 나와서… 그냥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이. 계급에 대해 똥 던지는 영화들이 수두룩한데, 기생충도 생각나고 설국열차도 생각나도 많은 영화들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아주 좋게 봤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블랙코미디의 소재로 많이 소비되는 주제지만 약간씩 비틀어 놓아서 따분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런 영화를 상영관에서 더 많이 만나고 싶긴 하다.
다양한 문화 경험을 바라며, 슬픔의 리뷰 끝. Cheers.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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