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하프 50회 완주의 의미
16년 전인, 2010년 가을에 가벼운 다짐 하나를 남겼던 기억이 난다.
"쉰 살 전에는 하프 완주 100회 꼭 채워야지!"
41번째 하프마라톤을 앞두고 던진 호기로운 약속이었다. 당시 마흔을 갓 넘겼던 내게 ‘50’이라는 숫자는 까마득히 먼 나라 이야기 같았고, 100회 완주라는 목표는 야심 차 보였지만 결코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숫자는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날 나는 마침내 하프마라톤 50회 고지에 올랐다. 2000년 10월, 경주 동아마라톤에서 첫발을 뗀 지 12년 만에 거둔 결실이었다. 의연하게 대처하려 했지만, 내심 마음이 꽤 분주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의 기록을 떠올려보면 대회 준비 과정이 마치 철인 3종 경기를 앞둔 사람처럼 유난스러웠다. 계속될 달리기 인생에서 스쳐 지나가는 한 지점일 뿐이라 생각하면서도, ‘5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을 완전히 무시하기란 어려웠던 것 같다. 멋진 기록으로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고 싶은 욕심도 슬며시 고개를 들었으나, 운동은 정직했다. 마라톤은 오직 땀 흘린 만큼만 허락하는 냉철한 세계라는 것을 그때 다시 한번 절감했다.
달리는 동안 지난 12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첫 완주의 환희와 풀코스 주자들을 향한 경외심으로 가득했던 첫 대회. 생애 최고 기록을 경신했던 광양 대회. 정확히 어디였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해도, 우리 집 앞길을 지날 때 시간에 맞춰 손을 흔들어주던 아내의 모습도 떠올랐다. 사실 빨래를 널러 나왔다가 우연히 마주친 것이었지만, 그 응원이 내게는 큰 동력이 되었다. 박사 과정 시절, 하프를 뛰고 돌아와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과제보고서를 작성했던 열정, 어머니를 모시고 온 가족이 제주도 마라톤 여행을 떠나 달리기와 관광을 병행했던 즐거운 소란까지 모두 소중한 기억들이다.
유난 떨지 않고 묵묵히 나의 운동을 지켜봐 준, 그래서 내가 이 여정을 나름의 방식대로 즐길 수 있게 해 준 아내에게 참 고마웠다. 12년 세월 대부분을 혼자 참가하며 때로는 결승점에서 반겨주는 이 없는 쓸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이미 나는 그 고독마저 즐길 줄 아는 여유를 배워가고 있었다.
그날 하프 50회를 완주하며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나의 마라톤 인생을 응원한다고, 힘내라고. 100회를 맞이할 미래의 어느 날에는 또 어떤 추억들이 내 마음의 지도를 채우고 있을지 기대하며 말이다.
사람은 저마다 마음속에 아련한 추억 한 조각씩을 품고 산다. 어떤 계기로 인해 불쑥 떠오르는 그런 기억들 말이다. 내게는 2014년의 서울 레이스가 그랬다.
그로부터 다시 13년 전인 봄날, 나는 혈혈단신 서울로 향했었다. 친구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다음 날 광화문 광장에 섰던 기억이 선명하다. 도로 통제에 걸려 인도로 밀려나기도 하고, 후반부에는 체력이 고갈되어 뛰다 걷다를 반복했던 고단한 레이스였다. 휑한 잠실 주 경기장에 들어선 후에는 김포공항까지 갈 기운조차 없어 지하철역 분식점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허기를 달래야 했다. 말동무 하나 없고 결승점에서 반겨주는 이도 없던,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한 고독한 마라톤 여행이었다.
그리고 다시 13년이 흘러 마주한 서울은 사뭇 달랐다. 대회 전날, 철인 클럽 회원들과 트랙을 돌며 마지막 점검을 하고 렌트한 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향하던 길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휴게소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숙소 근처에서 당구 한 게임을 즐기며 웃음을 나누던 시간들. 일요일 새벽, 콩나물해장국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모여 결의를 다지며 찍은 기념사진 속의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레이스가 시작되고 km당 5분 45초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릴 때, 20km 지점 이후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도 했었지만 5km마다 챙겨 먹은 파워젤 덕분인지 몸은 가벼웠다. 35km를 넘어서자 어김없이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워졌고 지독한 허기가 몰려왔지만, 그때 타 클럽 자원봉사자가 건네준 콜라 두 잔의 달콤함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구원이었다.
땅바닥만 쳐다보며 멈추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버텨낸 끝에, 비록 4시간의 벽은 넘지 못했지만 풀코스 개인 기록을 경신했었다. 13년 전의 외로움은 어느새 함께하는 즐거움으로 변해 있었고, 그 길 위에서 나는 추억이 얼마나 큰 에너지가 되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서울 대회가 끝나고 3주 후, 나는 합천벚꽃마라톤 풀코스 출발선에 다시 섰었다. 2003년과 2004년, 초창기 대회 때 내 곁을 지키던 어린 묘목들이 어느새 울창한 벚꽃 터널이 되어 나를 반기던 그 풍경이 눈에 선하다. 나무가 자라는 동안 나의 마라톤도 조금은 성숙해졌기를 바랐다. 기록은 여전히 4시간을 넘겼고 '서브 4'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더 이상 그 숫자가 나를 증명한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덧 50을 훌쩍 넘긴 지금, 지난 시간들을 돌아본다. 한때는 100회 완주나 4시간 이내 완주 같은 목표에 집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달리기는 단순히 숫자를 쌓아가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그 길 위에는 걸음걸음마다 쌓인 추억이 있었다. 집 앞길에서 손을 흔들던 아내의 미소, 완주 메달 옆에서 작성한 밤샘 과제물, 가족과 함께했던 제주도의 바람, 그리고 서울 레이스에서 느낀 뜨거운 동료애까지. 결승점에서 반겨주는 이 없어 허전했던 그 시절조차,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소중한 에너지였음을 이제는 명확히 깨닫는다.
"100회를 달성할 수 있을까? 4시간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나는 앞으로도 계속 달릴 것이라는 점이다. 추억이라는 연료를 채우고, 희망이라는 이정표를 보며. 혼자일 때도, 혹은 누군가와 함께일 때도. 기록이 4시간을 넘든 넘지 못하든 상관없이 나는 달릴 것이다.
나의 마라톤 인생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과거의 내가 나를 응원했듯, 지금의 나도 내일의 나를 응원한다. 힘내라, 김영일!
나는 오늘도 나만의 속도로 세상을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