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자전거, 그리고 달리기 - 동생들과 나눈 통영의 하루
"우리 철인 3종 릴레이 함 해볼래?"
형제 모임에서 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였다. 식사를 마치고 차 한 잔 나누던 평범한 자리에서 트라이애슬론 이야기를 꺼내다 문득 스친 생각이었다. 혼자서 수영하고 자전거 타고 달리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이 즐거운(?) 고통을 우리 형제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팀이 꾸려졌다. 수영은 혜란이, 자전거는 나, 달리기는 영신이. 고민할 필요도 없는 완벽한 배분이었다. 혜란이는 나보다 오랫동안 수영을 해왔고, 영신이는 당장이라도 10km를 거뜬히 소화할 체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럼 언제?" "내년 통영?" "좋아."
둘째 여란이는 응원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의 '통영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사실 나에게 트라이애슬론은 '고독'의 상징이었다. 2012년 대구대회에서 첫 경기를 치를 때의 그 막막한 긴장감을 아직 기억한다. 수영 1.5km, 자전거 40km, 달리기 10km. 세 종목을 혼자 다 해내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어리둥절하고 무거웠던지. 거친 몸싸움으로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던 수영, 고된 호흡으로 슈트를 벗고 자전거 주행을 준비했던 바꿈터, 걱정했던 40km 자전거 주행을 무사히 끝내고 마지막 10km를 남겨 두었을 때의 피로감. 이후 아이언맨 대회(수영 3.8km, 자전거 180.2km, 달리기 42.195km)를 세 번이나 완주하며 더 긴 거리를 혼자 감당하는 법을 배웠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특별한 경험을 우리 형제들이 나눠서 해보면 어떨까. 각자가 잘하는 것을 하나씩 맡아 함께 완주하는 그림 말이다.
2019년 10월, 마침내 그 바람을 이루는 날이 왔다. 창원과 진주, 대구에서 각자의 시간에 맞춰 통영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아내와 민정이와 함께 창원에서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달려 통영에 들어서자 눈부시게 푸른 통영의 바다가 우리를 반겼다. 조카들까지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무려 10명의 대규모 '선수단'이 꾸려졌다. 그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내일 저 바다를 혜란이가 멋지게 가르겠구나.'
검차와 함께 선수 등록을 무사히 마치고 들른 엑스포장은 활기가 넘쳤다. 유독 통영대회 20주년 기념 티셔츠가 눈에 들어오길래, "이거 형제들 수대로 4장 주세요"라며 기분 좋게 지갑을 열었다. 아니, 정확히는 우리 형제 모임의 총무이자 이번 대회의 일등공신인 아내가 거침없이 카드를 꺼냈다. 숙소 예약부터 일정 조율, 자잘한 준비물까지 아내의 세심한 지원과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이 무모한 도전은 결코 현실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저녁 식사는 그동안 호흡을 맞추며 훈련해 온 회사 수영 동우회 회원들과 함께했다. 작년에 짝을 맞춰 릴레이 팀으로 참가했던 이들이 올해는 당당히 정식 개인전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아마도 작년 릴레이가 심어준 용기 덕분에 진짜 철인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을 것이다.
불판 위에서 삼겹살을 굽는 조카들의 시끌벅적한 소란스러움과 내일 경기를 앞둔 어른들의 비장한 각오가 묘하게 어우러진 통영의 밤이 깊어갔다.
대회 당일 아침, 숙소인 통영동원 CC 리조트에서 차분하게 눈을 떴다. 매번 세 종목을 다 짊어져야 했던 평소와 달리, 이번엔 자전거만 책임지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인스턴트 죽으로 속을 가볍게 채우고 서둘러 바꿈터로 향했다.
"혜란아,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해."
"영신아, 너도 알지? 우리 완주만 하면 돼."
"걱정 마 형, 자신 있어."
막내의 호기로운 대답에 웃음이 났지만, 첫 주자 혜란이가 수영 워밍업을 하러 가서 출발 시간이 다 되도록 보이지 않자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5분 전, 3분 전... 알고 보니 현장에서 출발 시간이 소폭 변경된 것이었다. 출발 직전 물에서 걸어 나오는 혜란이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10년 넘게 수영을 해온 동생이지만, 막상 거친 바다 앞에 선 모습을 보니 오빠 마음엔 안쓰러움과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기우'였다. 혜란이는 이미 이번 대회를 위해 바다 수영 5km를 완영하며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출발 신호와 함께 일어난 거대한 물보라 속으로 혜란이가 사라졌다. 나는 바꿈터 입구 칩 교환 구역에서 초조하게 혜란이를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왔다!" 하는 함성이 들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들어오는 혜란이가 보였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웻슈트를 벗으며 나를 보곤 여유 있게 웃어 보였다.
"수고했어, 혜란아!"
"응, 오빠 잘 타고 와!"
바통인 칩을 건네받자마자 자전거에 올라탔다. 동우회 회원들에게는 늘 "초반엔 몸을 풀며 타야 한다"라고 조언했건만, 정작 나는 시작부터 심장이 터질 듯 페달을 밟아댔다. 나 혼자만의 경기였다면 페이스를 조절하며 여유를 부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혜란이가 열어준 길을 받아 영신이에게 이어줘야 하는 소중한 '연결고리'가 되었다는 책임감이 내 다리에 불을 지폈다.
악명 높은 통영의 오르막과 거센 바닷바람 속에서 체인이 두 번이나 벗겨지는 소동이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기름 묻은 손으로 체인을 다시 걸며 오직 '다음 주자'만을 생각했다. 마침내 최선을 다해 40km 주행을 마치고 바꿈터로 들어왔다. 체인이 빠졌음에도 평소보다 기록이 훨씬 좋았다.
칩 교환소에서 기다리던 영신이가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형! 왔어?"
"어, 단내가 나도록 타고 왔다. 자, 이제 네 차례다!"
칩을 받아 든 영신이가 출발선으로 힘차게 달려 나갔다. 나는 그 듬직한 뒷모습을 보며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 마지막 10km, 영신이가 결승선에 도착하면 우리의 도전은 완성된다.
나는 잠시 땀을 닦고 달리기 주로로 향했다. 결승점 1km 전방에서 동생을 맞이하고 싶었다. 결승점 근처에서는 혜란이와 여란이, 아내와 조카들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영신이를 기다렸다. 저 멀리 주황색 운동복을 입은 영신이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막내의 곁으로 뛰어들었다.
"영신아! 많이 힘들어?"
"아니, 괜찮아! 뛸 만해!"
나를 보며 씩 웃는 동생의 페이스에 맞춰 함께 뛰었다. 곧이어 결승점 근처에서 대기하던 혜란이도 합류했다. 왼쪽엔 나, 오른쪽엔 혜란이, 그리고 가운데 선 막내 영신이. 우리 삼 형제는 나란히 보폭을 맞추며 결승점을 향해 달렸다.
"다 왔다! 조금만 더!"
'FINISH' 아치가 눈앞에 다가왔고, 우리는 세 사람의 손을 맞잡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기다리던 가족들이 환호하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서로를 껴안은 채 땀과 숨이 뒤섞인 기쁨을 만끽했다. 10명의 가족이 한 줄로 서서 찍은 기념사진 속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막내 조카들은 "아빠 진짜 멋있어! 나도 다음에 할래!"라며 내내 들뜬 모습이었다.
창원으로 돌아와 마주한 장어구이는 그 어느 때보다 달콤했다. 술잔을 기울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2012년, 대구에서 막막함 속에 첫발을 내디뎠던 그날로부터 어느덧 7년이 흘렀다. 그사이 아이언맨 코스를 세 번이나 완주하며 고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법을 배웠지만, 이번 통영에서의 하루는 전혀 다른 배움을 주었다. 혼자서 한계를 깨는 일도 값지지만, 형제들과 고통과 기쁨을 조각조각 나누어 갖는 일 또한 그에 못지않게 특별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혜란이의 수영, 나의 자전거, 그리고 영신이의 달리기. 서로 다른 길을 달렸지만, 우리의 마음은 단 하나의 결승선을 향해 모여 있었다.
"오빠, 내년에도 또 할까? 정말 재밌었어." 혜란이의 물음에 영신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웃으며 화답했다. "그래, 내년에도 같이 하자."
주차장으로 향하던 길, 앞서 걷는 조카들의 뒷모습에 눈길이 머물렀다. 세월이 흘러 저 아이들이 자라면 언젠가 우리 형제들처럼 나란히 주로를 달리는 풍경을 상상하니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다. 곁에서 아내는 내 팔짱을 꼭 끼며 고생 많았다는 나지막한 위로를 건네주었다.
그날, 내 동생들은 참으로 근사했고 수고가 많았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동생들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