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고 함께 밟은 결승선
2013년 11월 창원통일마라톤. 우리 가족 네 명은 '노블 대표팀(아파트 이름을 딴 것이다)'이라는 이름으로 출발선에 섰다. 아내와 딸 민정이는 5km, 아들 민승이는 10km, 나는 하프 코스였다. 출발 신호와 함께 우리는 각자의 코스에서 열심히 달렸다.
당시 아내는 어린 딸의 손을 잡고 5km를 완주했다. 나는 하프 코스를 뛰며 생각했다. '언젠가는 아내와 같은 거리를 함께 뛸 수 있을까?' 그 바람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6년의 시간이 걸렸다.
2019년 12월 8일, 제31회 진주마라톤대회. 전날 밤 처갓집에서 우리 부부가 함께 김장을 돕고 돌아온 뒤, 아내는 조금 긴장한 듯 보였지만 이내 잠이 들었다.
대회 당일 아침, 민승이에게 가져다줄 김치와 반찬을 챙기고 아내의 양 무릎에 테이핑을 했다. 서둘렀지만 교통통제 구간에 걸려 멀찍이 차를 세우고 대회장으로 걸어갔다. 진양호에는 이른 아침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있었다. 긴장된다던 아내는 대회장에 도착하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워밍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기온은 영하였지만 달리기에 나쁜 날씨는 아니었다.
연습 때는 km당 7분을 넘기던 아내가 초반 1km를 6분 30초 페이스로 뛰었다. 오버페이스가 아닐까 걱정했지만 아내는 괜찮다며 씩씩하게 나아갔다. 아내의 주법은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다. 휴대폰으로 뛰는 모습을 담자 아내는 진양호 풍경도 찍으라며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아내에게 이번 완주는 의미가 컸다. 그해 5월 개복 수술을 받은 후, 재활을 위해 운동장을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뜨거웠던 여름밤 내내 우리는 운동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10월부터 조금씩 거리를 늘려갔고, 10km 참가를 제안했을 때 아내는 선뜻 응해주었다.
8km 지점을 지나며 아내의 페이스가 8분대로 떨어졌다. 오르막에선 잠시 걷기도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1km를 남겨두고 아내는 아껴둔 힘을 냈고, 우리는 손을 맞잡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언제나 밖에서 지켜만 보던 아내가 직접 완주 메달을 목에 걸었다. 진주마라톤 창시자이신 교수님께 축하를 받으며 환하게 웃는 아내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나의 마라톤 첫 완주도 2000년 진주마라톤이었다. 19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곳에서 첫 완주를 기록한 셈이다.
2020년, 팬데믹으로 대회가 중단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비대면 버추얼 마라톤을 통해 아파트 앞 공터를 주변을 돌며 다시 10km를 함께 뛰었다. 대회장은 없었지만 서로의 속도에 맞춰 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2023년 12월, 다시 진주 노을공원을 찾았다. 이번엔 여동생도 함께였다. 나는 10km를, 아내와 동생은 5km를 뛰었다. 두 사람이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하려고 하프 코스 대신 10km를 선택했는데, 잘한 결정이었다. 완주 후 먹는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은 여전히 맛이 좋았다. 아내는 4년 전 함께 10km를 뛰고 먹었던 그 국밥이 생각났다고 했다. 단출한 상차림이었지만 땀 흘린 뒤에 먹는 음식은 특별했다.
지난 10여 년간 아내는 새벽에 나가는 나를 챙기고 밖에서 기다려주던 응원자였다. 이제 아내는 나와 함께 배번을 달고 출발선에 서는 참가자가 되었고, 곁에서 함께 달리는 동반자가 되었다.
2013년 딸의 손을 잡고 뛰던 5km에서, 2019년 나와 함께 완주한 10km를 지나, 이제는 달리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되었다.
종목과 거리가 달라도 우리가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땀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함께 결승선을 통과할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 그것이 달리기가 준 귀한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