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쓸모 없게 느껴졌다.

by 자몽

내가 쓸모없게 느껴졌다.


열한 살 때부터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고,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해서도 나의 꿈은 작가였다.


부모님을 실망하게 하기 싫다는 핑계로 몇 년간 공무원 준비를 했지만 사실상 거기엔 관심이 없었다. 공부하는 대신 글 쓰는 일에 집중했고, 그러다 우연히 웹툰 스토리 작가가 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제안을 받아들여 장편을 기획해 계약서에 사인을 했지만, 장편을 잠시 미루고 경험을 쌓자는 의미로 짧은 단편 작업을 먼저 하게 됐다.


그렇게 좋은 기회로 시작된 데뷔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종종 연락되지 않고 잠적하는 웹툰 작가들이 있었는데, 내게 스토리 작가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던 사람이 딱 그런 사람이었다. 몇 편 안 되는 단편을 하는 동안 작가와 연락이 닿지 않아서 애를 태웠고 덕분에 생전 처음으로 내용증명을 보내기까지 했다.


겨우겨우 데뷔작을 론칭하고 나니 그래도 '되는구나'하는 마음이 들고 뿌듯했다. 그다음에는 다른 그림작가와 인연을 맺어 미리 얘기가 됐던 장편도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장편 데뷔작은 아무런 체계도 없고 경험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지금 보면 부끄럽고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은 작품이지만 그래도 내게는 첫발이었고, 정말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지금 그걸 토대 삼아서 좀 더 나아진 작가가 됐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차근차근 많지는 않아도 꾸준하게 경력을 쌓았지만, 사람의 인생은 뜻대로 안 되는 때가 있다.


작년의 나는 무슨 자신감인지 좀 놀았다.


웹소설 두 편을 계약하고 집필했지만, 그것으로는 생계가 충분하지 않았는데, 배짱을 부려 쉬듯이 일했다. 애초에 보는 콘텐츠를 위한 글보다 읽기 위한 글을 평생 썼고, 소설을 쓰는 게 자유롭게 느껴졌다. 이것저것 덜 재고 자유롭게 세계를 구축하고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쓰는 게 재미있었다. 불현듯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자유로웠다.


그리고 추위가 찾아올 즈음 다시 삶을 제 궤도로 올려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로웠던 두 편의 웹소설 작업을 마무리 짓고, 또 한 편의 소설을 계약하는 동시에 다시 웹툰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사람의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준비한 웹툰이 연달아 미끄러졌고 공백이 생기기 시작했다. 잠깐이겠거니 곧 계약을 할거라는 기대감으로 모아둔 돈을 쪼개서 쓰다가 어영부영 해가 넘어갔다.


세번째에 연재를 제안한 기획이 통과하고 거의 계약이 성사되었지만 모든게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웹툰은 사전 작업에 몇 개월이 걸리고, 그 사이에는 최소한의 벌이만 가능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잠시나마 내 재정을 유지해야했다.


웹툰&웹소설 작가로 커리어를 쌓으면서 동시에 나는 나이를 먹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보니 자리도 많지 않고, 지원해 면접을 보더라도 채용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면접 때는 분위기가 좋아서 기대했던 곳들은 내게 연락을 주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서 일해왔고, 그래서 나이를 먹었는데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불안함이 고개를 쳐들었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이제 쓸모가 없다'라고 세상이 내게 얘기하는 느낌이 들었다.


계약을 한 일이 있고, 계약을 앞둔 일이 있는데도 내 자신이 너무 쓸모없고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끔찍한 기분이 들었고, 동시에 겁도 났다. 만약 내 창작의 샘이 말라버리고 다른 길을 걸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내가 쌓아온 것들은 허상처럼 취급받게 되는걸까 하는 절망이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밤새 뒤척이다가 아침에 일어나 아르바이트 공고를 뒤적거리는게 요즘의 내 일과다. 어디든 뭐라도 가능한 곳에는 전부 연락을 넣고,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글을 쓴다.

소설을 쓰고, 웹툰 작업에 필요한 콘티 작업을 하면서. 내 삶을 끊임없이 굴리는 동시에 내가 세상이 내게 너는 별볼일 없다고 조용하게 속살거리는 것 같은 불안을 느끼면서 지내고 있다.


'사람은 제 밥그릇을 타고 난다.', '산 입에 거미줄 안친다.'라는 부모님과 어른들의 말로 가끔 떠밀려오는 불안을 밀어내면서 나는 계속해서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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