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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실섹시 Mar 03. 2024

30대의 삶 - 14

양날의 검, 소속감

예전에 누군가에게 직장인에게 월급은 필로폰과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끔찍한 생활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즈음, 한계에 봉착하기 일보직전에 통장에 급여가 찍히곤 하는데 이게 정말 귀신같은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길진 않지만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약 5년가량의 힘겨운 직장 생활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직도 한 직장을 10년 이상 다닌 게 일반적이던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신기하다. 뭐 시대상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이전에 직장생활을 하던 때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2017년 말미에 썼던 글. 간단히 축약하자면 저때의 직장생활은 월급 말고는 그 어떠한 만족도 얻을 수 없었다.  


당시에 나는 회사가 싫었다. 월급을 받는 것, 그리고 남들이 인정해 주는 소속감 말고는 아무런 만족이 없었다. 그때 내가 했던 일은 아주 도식적인 일이었다. 지금의 기술로는 물론, 당시에도 충분히 기계가 할 수 있을법한 일들이었다. 그런 반복적이고 성취가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사회에서는 내 직무를 나름대로 인정을 해주곤 했다. 아주 담백하게, 거품을 다 빼고 단순하게 이야기를 하더라도 늘 그러했다. 지금 떠올려보면 단순히 내가 속한 집단의 규모 때문에 그러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당시에 나는 근무시간이 아닌 시간에는 늘 사람들을 만났다. 새로운 사람, 아는 사람 가릴 것 없이 늘 사람들의 찾아다녔다. 한국 사회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음주와 연결이 되었다. 아닌가 내가 술을 좋아해서 그런가. 아무튼 그랬다. 나는 내가 진짜 필요한 게 뭔지 나와의 독대를 피하며 사람들만 찾다가 결국 망가졌었다.


요즘의 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개인 사업자는 외로움의 연속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서 다 해내야 하며, 당장의 현상유지를 위한 것은 물론 앞으로를 위한 것들까지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겨야만 한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업무전환을 버텨내고 잠시 자리에 앉기 무섭게 잔업이 떠올라 '아 맞다'를 외치기를 반복한다. 내가 하는 사업의 특징이 혼자 할 일이 많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아는 많은 자영업자들이 이렇게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나도 일하는 시간이 아닌 시간에는 늘 사람을 만난다. 특히 최근에 나는 아주 감사하게도 방송 촬영을 계기로 아주 매력적이고 멋진 사람들이 잔뜩 모인 집단을 마주했다. 그곳에서 친해진 몇몇들과 자주 조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30대 중반에 이른 나이에 사회에서 맞닥뜨린 사람들과 이렇게 친해지는 일은 아주 드물다. 그리고 내가 여태껏 살아온 세상에서 도저히 맞닥뜨릴 일이 없을 법한 사람들과, 그것도 사회에서 소위 '한 따까리' 한다는 날고 기는 사람들과 이렇게 가까워지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러니 밤낮으로 이들과 카톡 하며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시간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보니 혼자서 많은 일들을 해야 하는 자영업자로써 시도 때도 없이 업무가 누락되길 반복한다. 그렇게 요즘의 나도 아니 내 사업이 망가져가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지난 주말에도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들어왔다. 숙취에 신음하다가 문득 과거가 떠올랐고 최근의 현재를 떠올려봤다. 멍하니 누워서 하늘을 보다가 당시의 직장생활에서 내가 망가졌던 이유 그리고 현재 자영업자로써 내가 어지러운 이유에서의 공통점은 바로 소속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나는 회사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회사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한 존재로 스스로를 인식했다. 나는 회사라는 큰 부품의 톱니바퀴에 불과했다. 하루 중 2/3의 시간을 할애하는 집단에서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지 못하니 나는 다른 집단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사람을 찾았다. 소속이 있었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소속이니 다른 소속을 찾는.


현재의 나는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개인의 소속이다. 나는 철저하게 혼자로써 나를 상품화한다. 그리고 나의 세상을 만들어 내 세계관에 함께할 동료들을 초대해야 한다. 그 역량이 키워지기까지 철저하게 혼자된 삶을 살아야만 한다. 처절하게 일과의 사투를 벌이지 않으면 월급은커녕 눈앞의 고지서들이 숨통을 조여 온다. 당장의 생존과 직결된 고된 사투이다. 사투 끝에 얻게 되는 평화의 시간을 만끽하기도 바쁠 것 같지만 역시, 외롭다. 사람은 사람으로 회복되는 존재이다. 사업과의 싸움에 지친 마음으로 외로움과의 싸움을 이어가던 중 만나게 된 새로운 사람들과 빚어진 이 소속감이 나를 회복시킴과 동시에 나를 어지럽히고 있다. 


나에게 소속감은 필요조건이자 아주 위험한 독극물과 같다.

말하자면 필로폰, 펜타닐과 같은 게 아닌가 싶다. 너무 위험하고 끔찍한 부작용을 가진 약물이지만 필요에 따라 더할 나위 없는 안식을 줄 수 있는 그런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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