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감 중독에 관하여 (운동과 자존감의 상관관계에 관하여)
나는 3가지 일을 한다. 그리고 그 3가지 모두 운동에서 파생된 일들을 하고 있다. 다이어트식 전문 음식점, 바디프로필 스튜디오, 헬스장까지. 뭐 정확히는 피트니스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일들이다.
나는 20대 때 긴 방황을 했다. 내가 잘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져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해 구태여 가시밭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 겪어보는 소속감의 부재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잠식시키려 알바만 전전했다. 그리고 운 좋게 입사하게 된 회사에서 느낀 안도감 때문에 과도하게 애를 쓰기 시작했다. 결국 직무적성에 맞지 않은 일에 과도하게 애를 쓰다가 마음의 병을 앓았고, 그 마음의 병 때문에 신체 기능의 저하까지 겪었다.
그리고 나는 운동으로 마음의 병이 치유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침 달리기로 시작했고, 헬스에 재미를 붙였다. 그렇게 달리기 (유산소)와 헬스는 내 삶에 떼려야 뗄 수 없는 행위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햇수로 6년의 시간 동안 평일 기준 매일, 공휴일과 연휴 여부를 막론하고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 5시에 기상해서 6시까지 헬스장에 가서 유산소로 하루아침을 연다. 유산소 이후에 복근운동을 마치고 줄줄이 이어진 얼마간의 아침 수업들을 마치고 나면, 그제야 웨이트를 시작한다. 그렇게 6년을 꾸준히 하다 보니 빚어진 몸에도 썩 만족스러움이 느껴지지만 그 행위들을 통해 형성된 누적된 자존감이 현재의 3개 사업체를 운영할 수 있게끔 된 환경 조성에도, 새롭게 맞닥뜨리는 사람들에게도 세련된 에너지가 풍겨지는 것 같다고 여겨지니 운동은 피곤하기 그지없는 나의 일상 속에서 반드시 영위해야만 하는 나와의 약속이다.
한국에서 피트니스 시장이 전례 없이 커진 만큼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콘텐츠들이 우후죽순 생겨난다.
'열등함은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바닥난 자존감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기능을 퇴화시키니 자존감을 위해서 성취감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그 성취감은 운동을 통해 얻는 것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내 뜻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체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 또한 운동을 통해 내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채운 사람이지만 위와 같은 일반화는 다소 폭력적인 확증편향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꼭 굳이 운동일 필요가 없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과도한 근육은 징그럽다고 평가되었다. 나는 원래 뚱뚱했지만, 몸에 근육이 잘 붙는 체질이었다. 쉽게 말해서 내가 노력을 통해 얻어낸 결과가 요즘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져 사회가 높게 평가해 주는 기준이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인고의 시간 끝에 얻어낸 자존감은 나에게 해당할 뿐 그 방식과 결과를 타인에게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운동으로 자존감을 채우는 것은 성취감 중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운동은 말 그대로 나를 위한 행위다. 내 건강의 기능을 위한 행위이며, 내 몸이 좋아지기 위한 행위로 사회적인 기능으로 이어지기엔 한계가 있다. 사회적인 기능은 결국 생산성과 이어져야 하는데, 몸이 좋은 것으로 이어지는 생산성은 트레이너 혹은 선수로써 연봉을 받는 것으로 축소된다. 그러나 많은 피트니스 시장에서의 소위 '운동'인들은 선수로써 연봉을 받는 사람들은 극히 (그것도 아주 극히) 소수이다.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본인 몸을 뽐내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생산성과 개인의 성취감을 혼동하는 경우를 목격할 수 있는데 바로 이것이 운동으로 자존감을 채우는 필수적인 도구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이다. 운동은 그냥 날 위한 행위일 뿐이다. 그것은 마치 문장구조에서 수식어처럼 문장을 꾸며주는 역할을 할 뿐, 생산성 그 자체로 이어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뭐 예를 들자면 서울대 출신의 n연차 백수, 허름한 노포에서 본인의 왕년을 큰소리로 회상하며 세상을 탓하는 어르신들로 볼 수 있다. (*나는 서울대도 아니고 아직 어르신도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예시를 드는 게 좀 건방질 수 있지만 뭐 예시니까 헤헤 봐주세요)
사실 일종의 마케팅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치부하고 프레임을 씌워야만 본인을 더 높은 상품으로 패키징 할 수 있으니, 어찌 보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러한 일반화는 일종의 전략이다. 그러나 트레이너로써 많은 유형의 회원을 맞닥뜨리며 본인이 가진 다양한 분야에서의 재능을 무시하고 요즘 유행과 트렌드가 빚어낸 이분법적인 열등과 탁월함에 좌절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트레이너로써 이 시장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모순이지만, 이 사람이 운동으로 꿈꾸는 자신의 모습은 아주 먼 미래까지 유지된 후에나 얻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생전 운동 한번 해본 적 없던 사람이 난데없이 3개월 이내로 워너비 몸을 만들고 싶다고 하거나, 역으로 3개월 내로 몇 킬로까지 '빼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난감하기 짝이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자 자아를 실현해야만 하는 동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반드시 자신이 느끼는 열등함을 극복해야 사회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나의 존재가치를 위해 애를 쓰는 행위이며 그 조건은 다른 사람에 비해 내가 가진 재능에 부합할수록 좋다. 그래야 지속할 수 있고, 지속되어야 더 견고한 자존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그것은 운동일 필요가 없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이 트렌드와 부합한 운을 타고났을 뿐인 사람이, 본인을 위한 행위를 사회적 생산성과 혼동하여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성취감 중독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