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미안해하며 삽니다. 부모에게, 자식에게, 가족에게, 연인에게, 오래 알고 지낸 친구에게까지. 충분히 잘해주지 못한 것 같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 같고,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은 것 같을 때,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어도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나오게 됩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미안함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태도가 되었습니다. 미안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를 소중히 여긴다는 표식처럼 보이니까요. 그래서 미안해하지 않으면 어딘지 모르게 차가운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애정이 깊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고, 관계를 가볍게 대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죠. 그런데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정말 사랑해서 미안한 걸까.
끌림, 애착, 함께 있고 싶은 욕구, 상실에 대한 두려움. 사랑의 처음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 안에는 미안함이 없습니다. 이 감정들은 순간적으로 발생하고, 강렬하고, 때로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기도 하죠. 하지만 이 감정들은 그 자체로 관계는 아닙니다. 관계는 감정만으로 유지되지 않죠. 더 정확히 말하면 관계는 지금만으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 감정이 내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제가 필요하죠. 다음에 다시 만날 거라는 기대, 다음에도 같은 마음일 거라는 가정, 시간이 흘러도 끊어지지 않을 거라는 약속. 그래서 관계는 현재의 감정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겠다는 나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종종 관계의 친밀감을 표현할 때 이런 얘기를 하곤 합니다. 얼마나 오래 만났는지, 언제부터 알았는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는지. 이 질문들은 상대의 마음보다는 시간의 길이와 방향을 묻고 있습니다.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얼마나 버텨왔는지로 관계의 깊이를 가늠하는 것이죠.
가령 부모와 자식처럼 혈연으로 엮인 관계는 처음부터 영원할 것이라는 전제 위에서 시작됩니다. 서로의 몸속에 흐르는 피로 그만둘 수 있는 선택지를 지워버리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이 관계를 선택을 넘어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헤어질 수 없고, 끊어낼 수 없고, 완전히 사라질 수 없다는 믿음이 있는 관계. 이 점에서 혈연은 다른 어떤 관계보다 시간에 깊이 묶여 있고, 그래서 더 강력합니다.
하지만 관계 속에 내재된 시간이라는 속성은 늘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시간은 어떤 것도 그대로 두지 않죠. 예전 같지 않은 마음, 점점 달라지는 거리, 이유 없이 가벼워지는 감정. 시간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니야. 하지만 그대로는 아닐 거야.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닫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약속을 만들고, 관계를 정의하고, 규칙을 정하고, 서로의 역할을 정하고. 하지만 시간을 닫으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오히려 더 불안해지죠. 시간이 그것을 배신할 가능성도 같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미안함이 등장합니다. 미안함은 잘못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미래에 벌어질지 모를 균열을 막기 위한 감정입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미안함은 뭔가를 잘못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지만, 관계에서 매번 반복되는 미안함은 대부분 그런 잘못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을 때, 마음의 속도가 어긋난 것 같을 때, 내가 이 관계를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확신이 없을 때 올라오는 미안함이죠. 이 미안함은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라는 내면의 신호입니다. 시간이 만든 어긋남을 감지하고 관계를 다시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한 장치이죠. 우리는 모두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나를 지금과 다른 존재로 만들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반면 혈연처럼 운명이 되어버린 관계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미안함이 시작됩니다. 영원이라는 시간의 굴레에 묶여버린 이 관계는 언제나 완료형이 될 수 없죠. 좋은 자식이 되었다. 충분한 부모가 되었다. 이런 완료형 문장은 영원이라는 시간 앞에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더 해야 할 것 같고, 아직도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죠. 끝내 다 채울 수 없을 것 같은 이 미안함은 부모가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자식이 성장하여 멀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한층 더 심화됩니다. 끝나지 않을 시간 앞에서 끝내 충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사랑해서 미안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거대한 불안을 의식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미안합니다. 그래서 이 미안함은 도덕이나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관계가 시간과 함께 흐르고, 변할 수밖에 없고, 결코 채워질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그래서 사과한다고 끝나지 않고, 잘 행동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결코 누군가에게 좋은 누구가였다는 문장으로 관계를 매듭지을 수 도 없습니다. 이 미안함은 우리가 일생 동안 감당해야 할 시간의 굴레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