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는 이름의 여행자

by 한드로

어른이 되면 생기는 이상한 여유들이 있습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 오해를 무리하게 수습하지 않고 공백으로 남겨두는 여유, 기꺼이 지는 쪽을 택하면서도 초조해하지 않는 여유, 그리고 타인의 삶을 섣불리 단정 짓지 않는 여유들이 그것입니다. 예전 같으면 기어코 한마디를 보태며 증명해야 했던 순간에도, 이제는 침묵을 선택하곤 합니다. 어른이라는 외피를 입기 위해 애쓴 적은 없으나, 어느새 달라진 자리에 놓여있는 나를 문득 발견하곤 합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때의 우리는 여유를 허락받지 못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살아온 시간이 짧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았던' 기억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눈앞의 선택이 생의 전체를 결정지을 것만 같고, 타인의 평가가 내 본질을 규정할 것만 같은 공포 속에서 모든 순간은 과장된 무게로 우리를 짓눌렀습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궤도 밖으로 밀려날 것 같던 조급함은 사소한 일조차 생존의 문제로 둔갑시켰죠. 미래라는 거대한 폭력의 협박 앞에, 현재의 나는 속수무책으로 저당 잡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 우리에게 여유는 위험이고 사치였을지 모릅니다.


여유는 기억의 합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정도는 지나간다, 이건 견딜 수 있다, 이 선택이 전부는 아니다. 여러 번 끝날 수 있었던 삶이, 여러 번 끝나지 않던 경험. 그 반복된 경험이 쌓여서 생겨나는 연속성에 대한 신뢰입니다. 이 신뢰는 낱개의 사건에 매몰되어 있던 나를 일으켜 세우고, 점이 아닌 선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응시의 힘을 길러주죠. 사건과 나 사이에 생겨난 이 서늘한 간격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시공간을 더 크게 감각할 수 있습니다. 더 넓은 시간의 지평 안에 나를 놓을 수 있고, 더 광활한 인과의 공간에 나를 배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넓어진 시공간의 좌표 안에서 우리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결코 전부가 될 수 없습니다.


실패의 궤적 안에서도 생은 지속되었고, 오해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관계의 실타래는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선택의 끝에서 예기치 못한 새로운 갈래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기억은 우리에게 하나의 진실을 일깨워주죠. 나의 결함을 목격하고도 곁을 지키는 존재들이 있으며, 관계의 변주를 곧 종말로 치부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세상이 일방적으로 부여한 의미에 압도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세상이 던지는 규정을 그대로 수용할지, 아니면 나만의 언어로 다시 정의할지를 선택할 수 있는 주권의 회복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나는 여전히 고통과 마주하고 있지만, 더 이상 그 고통을 세계의 중심에 두지 않습니다.


여유는 투쟁하여 쟁취한 강인함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과하며 얻게 되는 부산물이죠. 그것은 나를 오해해도 떠나지 않는 누군가가 존재하고, 어긋난 길 끝에 예상치 못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음을 온몸으로 믿게 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세상이 강요하는 의미에 매몰되지 않을 존엄한 자유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지금의 내가 전부가 아니라는 서늘하고 명징한 해방감, 그 감각이야말로 어른이라는 이름의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사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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