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잃은 순수함

by 한드로

우리는 어떤 말들 앞에서 유난히 쉽게 울컥합니다. 모성, 고향, 민족, 조국 같은 단어들이 그것이죠. 우리는 탄생과 함께 선택하지 않은 것들 속으로 떨어집니다. 어머니의 몸, 처음 듣는 언어, 일생동안 익숙해질 냄새와 소리. 우리를 평생에 걸쳐 지배할 이 원초적인 감정들은 개념이 정립되기도 전에, 생의 초창기부터 감각을 통해 몸에 각인됩니다. 너무 이른 시기, 판단이 형성되기 전에 만들어진 이 원형의 감정은 그 어떤 전제 조건도 갖지 않기에 지독히 순수합니다. 여기서 순수함은 '나'와 '나를 둘러싼 것' 사이에 어떠한 간극도 존재하지 않는 원시적 밀착을 의미합니다.


밀착되었다는 것은 내가 감정을 소유하는 주체가 아니라, 그 감정 자체가 되어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느끼고, 속하고, 반응하는 모든 것이 곧 '나'와 일치하는 상태. 여기엔 관찰자도, 판단하는 이성도, 해석하는 자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존재와 감정 사이에 어떠한 거리감도 없기에 질문과 이유도 생겨날 수 없습니다. 이 농밀한 밀착 상태에서 감정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며, 신념과 가치는 그 자체로 나와 하나가 됩니다. 계산도, 이성도, 설득도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이 절대적인 완결성을 우리는 순수함이라 정의하죠. 하지만 이 견고한 순수함은 질문 앞에서 위태로워집니다. 질문은 필연적으로 나 자신으로부터의 소외, 즉 '분리'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순수함이 위험해지는 지점은 질문을 거부할 때입니다. '왜'라는 물음을 불경한 도발로 규정하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행위를 배신이라 낙인찍으며 '그래야 한다'는 준엄한 명령으로 군림할 때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당위와 '설명이 필요 없다'는 독단 속에서 감정은 성장을 멈추고 박제되어 버립니다. 의식 이전에 몸 안에 각인된 이 원초적 감각들은 취향처럼 변모할 수도, 의견처럼 조정될 수도 없죠. 하지만 너무 이른 시기에 형성된 이 맹목적인 순수함을 성인이 된 후에도 여과 없이 소유하는 것은 위태로운 일입니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감정은 방향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지만, 거칠고 투박한 이 날것의 감정은 외부의 힘에 손쉽게 그 방향을 탈취당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순수함은 본래의 선함과는 관계없이, 타자를 향한 폭력의 가장 뜨거운 연료가 됩니다.


이 감정이 의식의 탄생보다 앞선 것이었음을 자각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대다수는 분리의 고통이 따르는 불경한 질문 대신, 이를 신역에 가두고 신성화하는 안이함을 택합니다. 나 역시 이 거대한 원형의 감각 앞에서 자주 말을 잃고 무력해지죠. 그래서 이 글은 나 자신에게 남기는 메모에 가깝습니다. 순수함은 분명 매혹적이며 아름답지만, 그것이 반드시 정당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을 상실한 순수함은 쉽게 통제 불능 상태에 놓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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