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온 날
출석 일수 채우려면 며칠을 더 쉴 수 있더라?
언니의 대학 진학과 우리가 살던 아파트의 재개발로 우린 자의반 타의반 순천으로 이사 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와 언니는 올해 초에, 나는 이틀 전에 올라왔다. 여수에서 다니던 중학교가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간다는데 놓칠 수 없지 않은가! 나는 고집을 부려 막내 이모 집에 두 달여 얹혀살았다. 그렇게 친구들과의 이별 인사도 미리 끝내놓고는 제주도에서 돌아오자마자 미련 없이 순천으로 올라왔다.
당장 학교에 안 가도 되지 않나 싶어 이틀을 침대에 붙어살았다. 수학여행 때 곰 인형을 선물해줬던 같은 반 남자 사람 친구가 전학 간 학교는 재미있냐며 메일이 왔다. 이대로 검정고시를 준비할까 하는 헛된 꿈도 꿨다가 스스로에게 공교육을 떠나 졸업장 딸 열정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생각을 접었다. 이제 정말 학교에 가야 한다. 엄마는 교육청에 가서 어디 학교로 보내고 싶냐는 질문에 어떤 곳이 좋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독교재단 학교라고 하셨단다. 나도 딱히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엄마의 의견대로 확정되었다. 그런데 등교는 다른 문제지. 최대한 미루고 싶다. 하지만 이틀을 쉬고 나니 조금씩 불안해진다. 출석 일수 계산할 재간은 없다. 가야지. 가긴 가야지.
그렇게 엄마와 전학한 학교에 가는 날, 하필이면 내가 제일 싫어하는 비가 온다. 여름비라 더위는 조금 가져가 주지만, 양말 젖는 것도 싫고 우산 들기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어지간한 비면 그냥 맞겠는데 너무 많이 와서 꼭 우산을 써야 한다. 첫날부터 이게 뭐람.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데다 엄마도 학교 위치를 잘 모르시니 택시를 타고 학교에 가기로 했다. 그나마 이것은 횡재군.
등교 시간인데도 거리에 학생들이 없다. 이상하네.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나랑 같은 교복입은 학생들이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학교는 가파른 언덕까지 올라간다. 택시에서 내렸지만, 학교는 더 고요하다.
‘막 처음 전학온 날이 개교기념일 아니야? 그럼 진짜 대박.’ 겨우 15년 차지만 같은 나이에 비해 꽤나 별일 다 겪어본 인생이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정말 현실이 되었다.
학교 문은 하나도 빠짐없이 단단히 잠겨있었다. 엄마는 두 번 오기 싫으셨는지 건물을 한 바퀴 도시며 보이는 문은 다 흔들어 보셨지만 모든 문이 야무지게도 잠겨있었다. 교육청에 전화했다. “아~ 그 학교 오늘 개교기념일이에요!” 역시 내 인생.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양말은 다 젖었고 내려가야 할 언덕의 경사는 엄청났다. 형편상 집에 가는 길에도 택시를 탈 수는 없었다.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한다.
다음날 다시 엄마와 학교에 왔다. 입구에 들어서니 나보다 예닐곱 걸음 앞에 먼저 교문을 들어선 학생과 그 학생의 엄마가 보인다. 설마 저 친구도 전학 온 건가?
이쯤 되면 예언가가 아닌가 싶다. 아니, 내 생각대로 다 이루어지는 건가? 교무실로 들어서니 선생님들도 거의 동시에 전학생이 두 명이 왔다며 신기하시며 반겨 주셨다. 선생님들이 굉장히 다정한 분위기여서 맘에 들었다. 어쨌든 그 친구가 먼저 왔으니 9반, 난 10반.
엄마가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동안 교무실 칠판 아래 소파에 앉았다. 풀썩 앉았다가 생각보다 더 푹신한 의자라 휘청하며 머리를 칠판에 박았다. 아쿠쿠……. 선생님들이 쿵 소리에 놀란 눈으로 돌아 보셨다가 뒷통수를 잡고 있는 날 보시더니 웃음을 참으신다. 역시 시트콤같은 내 인생.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시고 난 담임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간다. 마룻바닥이 엄청나게 삐거덕거린다. 100년 된 학교라나 뭐라나. 아! 이전 학교는 지은 지 2년밖에 안 돼서 모든 것이 새것이었는데. 형편상 새 교복을 살 수는 없어 물려받았다. 원래 이 교복 주인은 나보다 더 날씬했는지 교복이 꽉 낀다. 걸음을 뗄 때마다 마룻바닥 삐그덕 대는 소리가 마치 내게 무겁다며 화내는 것 같다. 미간이 찌푸려진다. 이모 집에서 친척 동생들의 시중과 영양과잉의 이모 밥 덕분에 행복하긴 했는데, 살을 빼긴 빼야겠지. 하지만 이 나무 바닥도 문제가 있긴 있어. 100년 동안 안 바꾼 거 아니야? 내 살보다 더 심각한 건 이 나무 바닥이야, 라며 생각할 때쯤 앞서가던 선생님께서 복도 가장 끝 교실로 들어가신다. 나도 얼른 따라 들어갔다.
“인사해야지?” 소란스럽게 놀던 60여 개의 눈동자가 경계와 호기심을 가득 몰고 쏟아진다. “아, 안녕.” 어색한 침묵 속에 선생님이 박수로 정적을 깨셨다. 아이들은 예의상 박수를 친다. 나는 그저 뻘쭘하게 서 있다. 아무래도 이 순천에서의 새로운 시작은 삐그덕 그 자체다. 전학생의 기를 초장에 잡고 싶은지 아이들은 자기 무리 중 가장 센 아이를 은어로 지칭하며 가리켰지만, 그 친구들이 쓰는 단어를 이해하지도 못한 나에겐 아쉽게도 먹히지 않았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다가와 준 친구들이 같이 손 모양 맞춰 때리기 놀이를 하자고 한다. 그저 친해지려는 것이었는데 신나게 게임을 하다가 힘을 주체못한 나 때문에 친구가 놀라 울어버렸다. 전학 첫날 왕따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난 식은땀까지 흘리며 사과했다.
청소 시간이 되니 같은 분단에 배정받은 남자아이가 보이지 않아 남자 화장실까지 쫓아 들어가 찾아온 날이었다. 그 친구가 청소하는 걸 처음 본다며 담임선생님께 칭찬을 들은 날이었다. 짝꿍이 수업 시간에 자다가 잠꼬대로 책상을 쳐서 깜짝 놀라 소리를 질러 버린 날, 반 친구들과 버디버디 아이디를 나누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겨우 잡아타고 돌아온 날, 전학 간 학교에 적응 잘했냐는 친구의 메일에 비로소 답장할 수 있었던, 눈부시게 뜨거운 여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