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과 바람을 담아 보내는 편지

가을에서 보내는 마음.

by 제이앤



사랑하는 신이와 진이, 안녕? 너희들에게 편지를 쓰는 지금은 아주 더운 여름이야. 우리는 매일 땀 흘리고 부대끼며 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이번 방학 때는 너희들과 특별한 추억을 쌓기 위해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다녀왔어. 미리 알려주지 않고 공항으로 출발하는 차 안에서 우리가 갈 곳의 영상을 보여줬지. 도대체 엄마, 아빠의 말이 믿어지지 않아 하던 너희들이 표정을 카메라에 담으며 그래, 이 얼굴 보려고 내가 두 달간 머리를 쥐어짜며 첩보작전을 펼쳤지, 싶더라.

기억나니? 첫날 숙소에 가는 길 맛있는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너무 많아 고민하다가 짐을 풀고 다시 오자, 했는데 막상 도착한 숙소 앞에서 키박스 비밀번호를 몰라 못 들어간 이야기. 숙소에 짐을 넣고나니 시간이 늦어 식당이 모두 닫아버렸지. 어쩔수 없이 편의점에 가서 도시락을 마구 담아 계산할 때 놀랐던 순간. 숙소로 돌아와 신나게 도시락을 먹는 우리를 보며 미안해한 아빠의 표정. 다음 날 아침 일찍 도착해 입장한 유니버설에서 어리둥절해하며 반짝이는 눈에 곳곳을 담던 너희들의 눈. 무서운 것도, 물이 튀는 것도, 시시한 것도, 이것도 저것도 싫다고 하더니 나갈 때가 되서야 못 탄 놀이기구를 다시 타고 싶다 했던 신이. 엄마, 아빠도 무서운 놀이 기구를 타고 내리더니 이것보다 더 짜릿한거 없냐며 묻던 진이. 엄마의 치열한 눈치싸움으로 점심 먹을 테이블을 사수한 것. 주문 방식을 잘 몰라서 테이블에서 결제하고 내내 기다리고 있다가 겨우 먹은 이야기. 사진을 찍자고 하는데 너희들이 자꾸 안 찍는다고 해서 엄마가 서운해했던 것. 너희들의 순간을 담아주고 싶다는 말에 그 뒤로 먼저 사진찍을 자리에 서서 찍게 해주던 사랑스런 너희들, 너희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시간이 생각난다. 너희들이 엄마, 아빠에게 와주며 우리들의 봄은 함께 시작되었지. 너희들이 태어나 아주 천천히, 아니지. 돌아보면 너무 빨리 시간이 흐른 것 같아. 초보 엄마 아빠라 모든 것이 서투르고 부족했는데, 너희들은 어찌나 사랑스럽게 자라는지.

아빠 품에서만 울음을 그치는 신이. 자기도 고작 두 살이면서 한 살 아기를 좋아하는 신이. 다른 사람에게 항상 웃어주어 낯가리는 엄마가 처음보는 사람들과 말하는 법을 배우게 해준 신이. 동생이 태어나자 너무너무 좋아하던 신이. 평소에는 잘 웃지 않다가 신이에게만 환한 웃음을 보여주던 진이. 진이가 울면 항상 제일 먼저 달려가 달래주고, 우유를 먹여주고, 또 그 남은 우유를 얻어먹기 위해 온갖 개인기를 보여주던 신이. 신발을 못신는 동생 신발을 언제나 신겨주던 신이. 욕조에서 물놀이를 할 때마다 비누로 동생을 씻겨주던 신이. 두 살부터 둘이서 자려고 들어가서 밤늦게까지 문밖으로 웃음소리가 들려오던 날들. 분명 둘 다 말을 잘 못했는데 어떻게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하며 웃음이 터졌던 걸까? 한 명이 혼나면 다른 한 명이 늘 먼저 울음이 터지던 너희들. 엄마가 코로나로 격리해야할 때도 잘 놀던 진이가, 형과 격리될 땐 문 앞에서 반나절을 내리 서럽게 울어 엄마가 황당했던 적도 있지. 참 서로에게 애틋한 형제라니까.


이렇게 사랑스럽고 순한 너희들이라서 부족한 나도 엄마랍시고 살아갈 수 있었다. 엄마는 키우기 쉬운 아이들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우리들의 봄을 지났다.


이 편지를 읽는 너희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만발하는 여름이, 엄마에게는 가을이 시작되었겠네. 엄마의 여름은 시트콤 같아서 정말 재밌었는데, 너희들의 여름은 어떻게 지나게 될까? 나의 여름보다 더 기쁘고 더 좋은 시간으로 찬란히 반짝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때론 작열하는 태양 아래 피부가 그을리고, 땀이 비 오듯 흘러 온몸이 젖을 때도 있을 거야. 어쩌면 너희들의 힘으로 감당 안 되는 태풍을 맞을 때도 있겠지. 너무 강한 태풍이라 정신 못 차리게 흔들릴지도, 혹은 부러질지도 몰라. 하늘에 구멍 난 듯 쏟아진 비에 겨우 조금씩 쌓아 올린 소중한 것들이 모두 떠밀려 무너질지도 몰라.

그 순간에 너희들의 뿌리는 이상하게도 질기고 튼튼해서 꿈쩍 않고 버틸 수 있기. 그 순간을 위해서 엄마가 열심히 낙엽을 쌓아 삭혀줄게. 모든 순간이 좋은 날들이 아닐지라도 얼마든지 그 여름을 잘 보낼 수 있게 말야. 때론 벌레들이 괴롭힐지도 모르지만, 친구삼아 부대끼며 지내다보면 덕분에 잘 삭힌 낙엽들이 영양 듬뿍 머금은 흙이 되더라.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태풍 또한 엄마의 낙엽을 떨어뜨리기 위해, 더 잘 삭히기 위해 온 걸지 몰라. 그렇게 무수히 엄마의 잎들을 떨어뜨려 좋은 흙들로 너희들의 뿌리를 붙잡아줄게. 가지가 무참히 부러져 버려도, 밑동이 훤히 드러나 절망스러울 때도, 그 태풍의 흔적조차 성장통의 추억으로 남길 수 있을 힘이 되어주기 위해 엄마의 가을을 더 성실히 살게.

너희들을 낳고 언제나 해 쨍쨍한 날이 이어지길 기도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란걸 곧 깨닫게 되었어. 그래서 엄마는 기도를 바꿨어. 너희들이 누구보다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나 자신과 타인에게 다정하기를. 인생의 바닥에서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 가볍게 털고 자신만의 길을 수용하고 다시 걸음을 뗄 수 있는 용기가 함께 하기를. 마음이 끌리는 것을 여러 가지 이유로 합리화하며 외면하거나 피하지 않고 두려운 마음이 들더라도 끊임없이 시작하기를. 흙바닥에 주저 앉았더라도 마침 그 바닥이 부드럽고 쉬기에 마침 딱 좋은 곳이라면, 눈뜨기 어려운 햇빛 아래 그늘을 찾는 중 문득 서늘한 바람 한 줄기를 만난다면, 엄마의 가을이 가닿은 것이라 여겨주기를. 그렇게 너희들의 몫만큼의 여름을 오롯이 담고 나의 가을보다 더 풍성한 가을을 맞이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다면 엄마도 나의 몫의 겨울을 기쁘게 맞이하고, 겨울에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더 잘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우리의 봄이 시작된 순간부터 엄마의 행복은 너희들의 행복으로 더 빨리 차오르고 있는 것을 느껴. 휴가지로 출발하며 어리둥절함에서 기쁨으로 바뀌는 너희들의 표정을 따라 엄마의 고단함도 행복으로 바뀐 것처럼 말야. 너희들이 아니었다면 엄마의 계절들이 이렇게 풍요롭고 행복했을까? 나는 단언할 수 있어. 절대 아니었을 거야. 신이와 진이라서 참 다행이고,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너희들의 초여름을 응원한다. 앞으로의 반짝이는 순간들과 막막한 시간들까지도.

힘든 시간은 있더라도 외롭지는 않기를. 엄마의 낙엽과 바람 한 줄에 사랑을 느껴주기를. 나의 인생을 걸어 축복한다. 나의 존재가 너희들만을 위한 것일지라도 기뻐하며, 2025년 여름에,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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