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서 겨울로, 그리고 봄이.

겨울은 곧 봄.

by 제이앤



나는 지금껏 자신의 인생은 너무 평탄했노라고 말하는 몇몇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봤을 때 그들에게도 괴로운 순간과 슬프고 답답한 상황을 만나는 것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내 인생은 너무 평탄해서 오히려 고민이야.’ 라고 이야기했다. 그들에게는 고통을 고통으로 남기지 않을 힘이 있나보다. 그런 힘은 어디서 얻는 걸까?


나는 슬픔과 아픔을 겪어낼 힘이 적어 그 괴로움을 세세히 기억한다고 한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나만의 슬픔과 아픔을 ‘겪어’ 봤다는 것이다. 그리곤 ‘주저 앉아’ 엉엉 울어버렸다는 것이다. 겪은 슬픔과 아픔을 외면하거나 치워버리지 않고 그 위에 당당히 ‘서’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되었다는 것이다.

기쁨과 행복만 겪었다면, 슬픔과 아픔을 겪지 않았다면 서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이런 고통이 있었노라고 발 끝에 둔다는 것, 그리고 ‘나’로서 당당히 서있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전소영 작가가 쓴 ‘연남천 풀다발’ 책은 그림보다 글이 많은 책을 선호하던 나에게 또 다른 세계를 열어준 그림책이다. 글과 그림이 동시에 독자를 사로잡아 순식간에 책의 세계 안에 매몰시켜버리는 힘을 나는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작가의 시선에 홀린 듯 따라다니다 책이 끝나면, 더이상 눈 앞의 세상을 이전과 같이 볼 수 없게 되는 그림책의 힘을 나는 모르고 당했다. 길을 걷다 책과 비슷한 장면을 만날 때마다 작가님의 문장이 공기처럼 맴돌았다. 그리고 나는 이후로 계절의 시작을 가을이라 믿게 되었다. 낙엽과 씨앗들이 흙 속에 몸을 던지는 가을, 가을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가을이 시작인 것을 믿어버렸으니, 그렇다면 겨울은 자연스레 성장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나의 겨울은 너무나 춥고 혹독해마지 않았는데 성장이라니!


그렇다. 겨울은 참으로 자라는 시간이다. 겨울을 위해 나무의 가지를 쳐내고, 번데기가 될 준비를 한다. 언 땅 속에서 씨앗은 끝이 아니라 시작을 다짐한다. 지독한 추위와 외로움을 견디는 것, 그것이 성장이 아니라면 무엇을 성장이라 할 수 있을까. 한참 키가 클 때 정강이에 오는 성장통은 유일하게 잠을 깨울 수 있는 고통이었다. 밤마다 울었고, 아파서 컸다. 인생은 겨울은 누구에게나 온다. 갑자기 찾아올지도, 누구의 겨울보다 길지도 모른다. 그 겨울을 지나는 방법은 단 한가지, 버티는 것이다. 온 힘을 다해 버티는 것이 답보하는 것 같을 지라도, 마치 내 인생이 이대로 겨울에 갇혀버릴 것 같을지라도 견디는 것이다. 온실 안으로 도망치지 않고 온전히 겨울을 껴안은 사람은 다시 마주한 추위를 또 겪을 힘이 생긴다. 이 겨울이 나에게 남긴 상처가 나이테로 남은 것을 깨달은 사람은 오히려 겨울을 온 몸으로 맞으며 환영할 것이다. 우리에게 무엇이 좋은 것인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안다. 대개 좋은 것은 당시에는 괴롭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 다음 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봄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겨울을 오롯이 껴안은 사람만이.


그러므로 우리 겨울을 두 팔 벌려 환영하자. 살을 에는 날 선 겨울 바람에 온실에 편안히 있는 누군가가 부러워 지더라도 지나온 겨울 나이테를 셈하며 번데기가 되어보자. 번데기 만이 나비가 된다. 꽁꽁 언 땅에 뿌리를 내리자. 그 버틴 힘이 나에게 한여름 땡볕을 홀홀히 지낼 힘이 될터이니. 누구보다 춥고 외로운 겨울을 반가이 맞이하자. 겨울이 지난 후 더 따듯할 나의 봄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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