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을 봅니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조승리

by 제이앤

“엄마, 저거 욕 아니에요?”

매일 같이 지나다니는 도서관 외부 천장에 매달린 현수막을 가리키며 초등학생 아들이 놀란 토끼 눈이다. 손가락을 따라 바라보니 올해 순천시 추천 도서 현수막이었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라는 제목의 오리 다섯 마리가 노랑과 초록의 작은 깃발 여러 개와 같이 있는 표지의 책이었다. 아무리 시선을 끌어야 한다지만, 기어다니는 아기부터 다니는 도서관에 ‘지랄’이 뭐야, ‘지랄’이.

그래서 읽고 싶지 않았다. 원색적으로 시선을 끌려고 하는 제목에 반감이 들었다. 며칠을 그냥 지나갔다. 다른 책들만 골라서 빌려 읽었다. 지나갈 때마다 현수막을 바라봤다. 도대체 제목을 왜 저렇게 지었을까. 그리고 또 그냥 지나갔다.

하지만 시에서 이 책을 지정한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도대체 이 책을 쓴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증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후회를 하더라도 읽은 후에 해보자. 책날개의 작가 소개를 읽었다. 자신의 글을 듣고 눈물을 쏟은 사람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글을 쓰고 보니 글쓰기는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무엇을 썼기에 자신을 위한 글이 된 걸까?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펼치자, 작가의 귀와 코와 감각으로 만들어지는 세상이 펼쳐졌다. 작가는 분명 보이지 않는 세상을 글로 썼는데 눈에 보인다. 심지어, 어떤 사진보다 더욱 선명히 보이는 것 같았다.

조승리 작가가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떻게 안 보이는데 여행을 갈 생각을 하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여행을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뜻이 아니다. 내가 여행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어서 그렇다. 내가 사는 곳과 전혀 다른 풍경이어서, 들리는 언어가 낯설어서, 처음 맡는 냄새에 적응할 자신이 없어서, 한국만큼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서 외국 여행을 꺼리는 나는 ‘보임’에도 겁먹었다. ‘보임’에 더 겁먹은 걸까? 작가는 ‘보이지 않음’에도 나보다 더 멀리 여행했다. 사람들을 모아 비행기를 탔다. 나보다 더 용감하고 선명하게 세상을 본 것이다.

작가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보며 춤추는 사람들을 동경하면서도 자신의 팔다리에 어떠한 기대도 걸지 않는 내 손을 이끌어 호흡에 집중시켰다. 어디선가 음악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화려한 드레스와 파트너의 호흡과 맞춰 추는 탱고가 펼쳐진다. 깔린 어둠을 배경판 삼아 더욱 아름다운 불꽃축제처럼, 보이지 않는 지랄맞음을 배경 판으로 삶의 조각조각 틀은 눈부시고 찬란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지랄맞음……!


열다섯, 한창 사춘기인 나이였다. 이제 아기 티를 벗고 친구들과 이곳 저곳을 놀러 다니며 철없이 그 눈에 세상을 담을 나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 시력을 되돌릴 방법이 없음에 절망하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책에 있는 문장들이란 그 고통의 티끌만큼만 삐죽 남겨 보여준 것이겠지. 시간이 흐르는 것, 다음 날이 되고 다음 주가 되는 것. 그 흐름에 갈수록 좁아지는 시야와 절망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인생에 어찌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누가 그 튀어나오는 ‘지랄!’을 상스러운 소리라며 혀를 찰 수 있을까. 앞으로 얼마나 어둠 속을 걸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걷는 걸음은 얼마나 아득할까. 그 앞에서 어찌 감히 희망을 가지라 이야기하며, 세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것이 축복이란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볼 수 있어서 다행일까?

우리는 ‘보이는 것’에 지배당하고 산다. SNS 중독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금 현시대는 쏟아지는 ‘행복의 순간 포착’으로 사람들의 소비와 행동 패턴을 끌고 간다. 남들이 누리는 행복에 뒤처지고 싶지 않다. 작은 기계 속 행복한 사람은 잠깐 지나간다. 그리고 이어 그에 못지않게 행복한 사람이, 또 그다음 행복한 사람이 줄지어 알고리즘을 타고 나온다. 바다에 빠진 요술 소금 맷돌처럼 ‘남의 행복’은 멈추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화면을 가득 채운다. 거울 앞에 앉아 고단한 몸으로 하루를 겨우 마무리하는 나의 행복은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겨우 소금 한 알 같은데, 모두가 긍정적이고 건강한 정신과 아름다운 몸을 가졌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현실을 살아내기에 급급할 뿐이다.

그러므로 더욱 업로드되는 것들을 열심히 살핀다. 그래도 덕분에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는 밝은 슬기로운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멋진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따라 해 본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밤새 세상에는 참 많은 일이 일어나 있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 간밤의 세상을 둘러봐 줘야 하루동안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기 수월하다. 혹 여러가지 해야 할 일에 치여 종일 인터넷을 켜지 못한 날에는 세상 돌아가는 속도를 따라잡기 쉽지 않다. 자기 전에는 일과 중에 놓친 세상을 다시 한번 훑어보고 잠이 든다. 우리는 잠을 잘 때 빼고는 언제나 ‘보는 중’이다.

우리는 정말 조승리 작가보다 ‘잘 보고’ 사는 걸까? 시력을 가졌다는 것으로 ‘잘 본다’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셀 수 없이 업로드되는 영상들에 밀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보는 것이, 정말 조승리 작가보다 많은 것을 보는 걸까? 각자의 ‘지랄맞음’을 애써 포장하며 단지 볼 수 있다는 것에 안심하며 정작 축제가 되지 못하는 삶이 되는 것은 아닐까?


잠깐의 정전에도 아수라장이 되어버리는 우리는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암전된 세상에 발조차 딛지 못했을 것이다. 볼 수 있어서 보지 못하는 것들, 볼 수 없어서 볼 수 있는 것들. 우리는 그 어느 곳에 속해 있더라도 잘 보기 위해 노력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펴서 알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삶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또 이 지랄맞음이 쌓인 축제가 얼마나 용감하고 아름다운지 알게 되었으며, 무엇이 ‘잘 보는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으니.

나는 이제 조승리 작가의 보는 법을 배우고 싶다. 두려워하지 않고 여행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음악에 귀를 기울여 몸을 맡기는 법을 배우고 싶다. 계절의 온도와 습도, 타인의 냄새와 감각으로 길을 느끼는 법을 배우고 싶다. 눈으로 보는 것에 마음이 끌려다니지 않고 마음이 끌리는 것을 눈으로 보고, 또 눈을 감고 볼 줄 아는 법을 배우고 싶다. 그것으로 지랄맞은 인생을 축제로 즐길 수 있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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