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학원에 들어왔는데, 레슨 할 시간이 되어도 안 보이길래 연습실을 가보니 책만 덩그러니 있다. 아이가 집에 갔나? 아닐 텐데. 인사도 없이, 수업 시간과 상관없이 몰래 도망가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럼 화장실을 갔나? 화장실을 살펴봐도 아무도 없다. 머리가 하얘진다. 언제나 안전 문제에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는 학원에 온 아이가 안 보이니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연습실을 뒤지고 또 뒤졌다. 화장실을 가보고 또 가봤다. 학원이 있는 상가건물도 한 바퀴 돌았다. 학원이 있는 상가건물도 한 바퀴 돌았다. 엄청나게 값진 보물을 맡았다가 주인이 찾으러 왔는데 맡은 보석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계속해서 찾아 헤맸다. 130cm 정도 되는 아이가 이렇게 안 보일 수 있을까. 돌고 돌다 다시 연습실 문을 열었을 때 피아노와 의자 사이에서 눈동자가 보인다.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들켰네." 한마디를 허무하게 뱉어며 스스로 나왔다. 아이는 왜 거기 숨어 있던 걸까. 아이를 찾았다는 안도감은 들었지만, 더 깊은 고민에 휩싸였다. 나의 수업 방식이 아이를 괴롭게 한 걸까?
100% 부모님의 의지로 학원에 다니는 아이였다. 하지만 영민해서 진도는 잘 나갔다. 전에 배우던 선생님께 체르니 100번 중간까지 배웠지만 늘 의욕이 없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또 악기 하나 취미로 배워놓게 해야 아이 인생에 보탬이 된다는 부모님의 사랑으로 이어가는 수업이었지만 아이가 그 사랑을 깨닫고 '그래, 내가 하기 싫어도 참고 열심히 해나가야지!' 할 수 있는 어린이는 없지 않은가. 악보를 읽을 수 있기에 피아노를 칠 줄은 알지만 치는 것 자체가 싫었던 것이다. 치기 싫은 피아노 앞에서 악보를 째려보다 울며 뛰쳐나간 나의 어릴 적이 생각났다. 아이에게 연습실은 얼마나 괴로운 방이었을까. 악보와 피아노, 그리고 자신이 2:1로 싸우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 아이를 맡아 가르치면서 나는 아이가 채울 수 있는 연습량을 주고 수업 외 아이가 관심이 있어하는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친해지는 것부터 시작하는 중이었다.
나는 아이를 혼내지 않았다. 왜 숨어 있었냐고 따지지도 않았다. "네가 사라진 줄 알고, 위험한 상황에 노출됐을까 봐. 선생님은 그게 너무 걱정됐어. 선생님이 앞으로 연습량을 줄여줄게. 우리 오늘 수업 얼른하고 남는 시간은 음악을 듣거나 책도 읽으면서 편하게 쉬자."
그렇게 아이와 밀고 당기기 하며 수업을 이어 나갔다. 아이는 갈수록 나와 친해져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 등을 한차례 털어놓고 수업을 시작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칭찬과 잔소리와 수다를 주고받으며 시간이 흘렀다. 해마다 돌아오는 대회 준비 시즌이 되었다. 내 책상 위엔 온갖 대회의 홍보물과 아이들에게 배분할 대회곡을 고를 악보집이 쌓여갔다.
내 레슨 피아노 위에는 두 개의 트로피가 있다. 아이들은 내 트로피를 보며 선망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트로피는 나의 실력 보장 증명용과 동시에, 아이들이 대회를 준비하며 '나도 저 트로피를 가질 테야!' 목표가 되어주었다.
입시를 준비하면 보통 어릴 때부터 음악을 꾸준히 하거나 음악에 관한 특별한 관심으로 시작한다. 음대를 가기로 결정이 되면 고등학교 초반부터 준비를 하기 때문에 대회를 나가서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은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예술이기에 내가 준비한 음악을 들려줄 기회는 단 한 번밖에 없다. 수정도 할 수 없다. 흘러가면 그만인 것이다. 게다가 연주자도 사람이기에 아무리 연습해도 실수할 수밖에 없다. 안 틀리고 칠 수도 있지만 틀리는 상황을 감안하며 연습해야 한다. 한번 틀렸다 하더라도 마치 틀리지 않은 것처럼 (틀리게 들렸다면 기분 탓이에요 하하) 뒤이어 연주해야 할 음들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고 흐름을 끊기지 않게 타야 한다. 나의 곡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고 하더라도 끝세로줄이 나올 때까지, 혹은 마치는 종이 울릴 때까지 자신의 무대를 책임져야 한다. 나는 무대에서 연주할 땨마다 음악은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 같다는 생각을 늘 하며 연주한다.
차라리 대회라면 무대를 망쳤을 때 심사위원의 벨소리는 곧 구원의 종소리가 된다. 이제 그만 무대를 내려가도 좋아. 책임감에서의 해방을 허락하는 종소리. 하지만 입시시험은 나의 손 끝에 지금까지 연습해 온 시간의 결과가 단 한 번으로 결정되기에 모든 부정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혹 무대를 망치더라도 마지막 인사 때 얼굴이 구겨져도 안된다. 나갈 때 발걸음이 터덜거려도 안 된다. 어마무시하게 실수를 해서 망치더라도 내 한탄이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삼켜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실패가 있더라도 다시 악기 앞에 앉아 다음 연주를 준비하고 또다시 무대에 서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부담감을 이기며 무대에서 내려올 때까지 버텨야 하는 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피아노를 잘 치는 것과 무대를 견디는 것, 이 두 가지는 굉장히 다른 영역이기에 각자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원 강사 시절 아이들의 대회를 함께하고 나면 너무 많은 아이들이 대회가 끝나면 학원도 그만두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은 대회에 나가 트로피를 받아오는 조건으로 지긋지긋했던 피아노 학원을 끊는 것을 부모님과 협상했다고 말해줬다. 안타까운 것은 대회를 나가는 아이들이 피아노를 잘하는 편이라는 것이다. 잘해서 대회에 나갔는데, 대회 끝나니 피아노와 악보에 지쳐서 다시 연주할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니. 아무리 대단한 트로피로 마무리를 한다고 해도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는 피아노가 좋아서 음대에 간 것이 아니었다. 입시 때와 대학 때 사사해주셨던 교수님들은 모두 입을 모아 "제발 연습 좀 해!"를 외치셨다. 클래식 피아노에 애정이 없는 클래식 피아노 전공생.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글 쓰는 것이 좋았고, 시를 읊고 소화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좋았다. 책이 빽빽한 대형서점이나 도서관의 책장 사이는 내게 숲이거나, 바다이거나, 하늘이었다. 모든 생각을 가지고 모든 생각이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들, 활자들, 종이묶음들. 초등학교 6년간 글쓰기로 받았던 상장만 40여 장이었다. 6학년 땐 학교에서 글쓰기 대회에 글을 써서 내라고 하시며 교장실을 나 혼자 쓰게 하신 적도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니 국어 선생님께서 내가 쓴 단편 소설을 보시곤 나를 주축으로 신문부를 만들어 주셨다. 신문부 아이들과 기사를 쓰고 교정하고 발행하며 당연히 나는 커서 작가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엄마가 말씀하셨다.
"작곡을 공부해 볼래? 네가 좋아하는 글도 쓰고, 피아노도 잘하잖아."
초등학교 4학년, 교회 사모님께서 내게 강제로 반주를 가르치셨었다. 간택당한 기분이 바로 그런 것일까. 어느 순간 나는 모든 예배 반주를 하고 있었다. 5학년이 되자 엄마는 이번엔 드럼 연주자 선생님이 온 교인의 사랑을 받으니 따라 배우는 게 좋겠다고 하시며 드럼도 배우라고 하셨다. 또 중학교 2학년이 됐을 땐 엄마가 작곡하는 선생님을 만났는데 너무 좋아 보인다며 이번에는 작곡을 배우라고 하셨다. 모든 것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엄마 뜻대로 가고 잇는 것이 탐탁지 않았지만, 딱히 반박할 생각도 없어서 그대로 따랐다. 게다가 작곡은 글도 쓰고 음악도 한다니, 꽤 근사하지 않은가?
고등학교 1학년 되니 엄마는 또 어디서 들으셨는지 작곡을 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 때 악기를 전공하고 대학원을 작곡 전공으로 한다며 이번엔 피아노 입시학원을 가라고 하셨다. 주위에 음악 하는 사람이 없었고 엄마가 그렇다고 하시니 해야 하나보다 생각했던 나는 그렇게 피아노 입시생이 되었다.
그런데 피아노는 진짜 재미가 없었다. 똑같은 악보를 몇 달 동안 매일, 몇 시간씩 보며 계속 치는 것에 흥미가 없었다. 실력은 당장 그 자리에서 늘지 않았다.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늘어 있었다. 누구보다 꾸준히 오래 하는 그것을 못하는 나는 클래식이 싫었다. 그냥 엄마가 하라고 하는 것들을 했을 뿐, 열심히는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연습을 열심히 하지 않는 나 때문에 화를 자주 내셨다. 하지만 때려치우라고는 하지 않으셨다. 하라는 사람은 있지만 그만두라는 사람이 없어서 나는 계속했다.
대학은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피아노 교수님마저 나를 레슨 하는 것을 힘들어하셨다. 배우고 싶어 하지 않는 전공생이라니. 그래도 음악대학을 가서 플루트를 교수님께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좋았다. 어릴 때부터 플루트는 내가 배우고 싶은,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였다. 반짝이는 악기와 맑은 소리. 교수님은 개인 스튜디오에서 연습하게 해 주시고 대학원 진학까지 제안하셨다. 하지만 플루트는 엄마가 반대했다. 엄마가 잘 모르신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나를 집어넣었다. 화성학과 더불어 내내 A+을 받았던 딱 두 과목 중 하나였는데.
엄마의 권유(?)로 입시학원을 가니 전부 피아노를 사랑하는 아이들 뿐이었다. (입시학원이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대회 곡과 입시 곡을 연습하고 별을 보며 막차가 끊기는 시간까지 버스를 타며 입시를 준비하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어느 날 밤 10시가 되어 연습을 마무리하고 같이 연습하던 동생과 집에 가던 중 물었다. 넌 왜 피아노를 하냐고. 자신은 피아노가 너무 좋다고 했다.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단식투쟁까지 해봤다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동생의 눈은 우리 머리 위에 떠있는 별보다 더 반짝였다. 지금도 그 아이의 눈은 피아노 앞에서 반짝이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아니, 꼭 그럴 것이다.
입시 곡을 가지고 무대 경험을 쌓기 위해 다 같이 대회에 나간 날, 어찌 된 영문인지 본선에는 나 혼자 진출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황당해하셨다. 나보다 연습 때 더 잘한 친구들이 대놓고 티는 안 냈지만 속상할 것이 분명하다. 그다음 대회도 내가 제일 큰 상을 받았다.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 가르치는 입장에서 대회 준비를 해보니 왜 내가 대회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긴장을 안 했기 때문이었다. 긴장하고 준비할만한 욕망이 없었다. 하지만 대단한 피아니스트들은? 사실 무대에서는 같은 이유다. 긴장하지 말 것.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면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예민해지고 작은 자극에 강하게 반응하게 된다. 악순환에 컨디션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무대에서 기량을 보여주기가 어려워진다.
무대에서는 완전히 릴랙스 해야 한다. 하지만 정신은 초집중해야 한다. 정신을 초집중하면서 온몸에 힘을 다 빼라니. 불가능 같다. 훌륭한 연주자는 이렇게 될 때까지 연습하고, 준비한다. 나는 정신은 초집중하지 않았고 무대에서의 부담감은 없었으니, 훌륭한 연주자는 아니나, 준비한 것에 비해서 좋은 결과를 받았던 것뿐. 그것뿐이었다.
이제 나는 트로피 앞에서 선생님의 몫을 생각한다. 선생님은 대회 때 무엇을 가르쳐줘야 할까? 연주를 잘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 못지않게 또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회의 결과가 어떻든 그것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남아있지 않게 마인드 트레이닝을 시키는 것이다. 대회가 끝나도 음악과 멀어지지 않도록. 무대에서 큰 실수를 하더라도 악기와 멀어지지 않도록. 자신과 악기를 탓하며 무너지지 않도록. 그래서 무대 이후에 자신의 연주를 들려주는 것에 주저함이 없도록. 연습했을 때보다 훨씬 많이 틀렸더라도 훌훌 털고 다음 연주곡을 더 즐거운 마음으로 탐색할 수 있도록. 완벽한 연주는 아니어도, 남보다 더 화려한 기교가 아니어도, 나는 오늘 내 몫으로 받은 무대를 채웠음에 자신을 기특해 할 수 있도록. 이것이 바로 내가 대회 시즌이 되면 테크닉 레슨보다 더욱 아이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이다.
체르니가 싫어서 피아노와 의자 사이에 몸을 피했던 아이는 쇼팽 에튜트 <흑건>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언제나 아이를 응원하고 격려해 주시던 어머님께서도 이번에는 너무 어림도 없는 곡을 고른 것 같으니 아이를 설득해 달라 부탁하셨다. 아이의 환상과 현실에서 고민을 하다 결정했다. 어머님을 설득하기로. 피아노와 의자 사이에 있던 아이는 흑건 한마디를 스스로 계이름 하나하나 읽고 하루에 한 마디씩 겨우 연습하며 무대를 꿈꾸고 있었다. 그래, 밤 10시. 버스 정류장에서 보았던 그 아이의 눈에서 빛나던 별. 그 별이 이 아이 눈에도 들어왔구나.
나는 전화를 들었다. 어머님께 제안했다. <흑건>을 가르치겠다고. 대신 이번 대회는 못 나간다고. 저는 계이름 하나도 읽어주지 않을 것이고 아이가 스스로 악보를 다 읽었을 때, 그때 열리는 대회에 이 곡을 들고나가겠다고. 그게 그 아이에 눈에 반짝이는 빛을 목격한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먹었다. 흑건을 치게 될 때까지 너의 감정쓰레기통이 되겠다고.
아이는 훌륭하게 <흑건>을 연주했다. 어머님은 내 몫의 꽃다발을 준비해서 건네주셨다. "선생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어머님의 진심 어린 인사가 마음에 진하게 와닿았다.
"아니요. 저 계이름 하나도 안 읽어줬어요. 아이가 연주했고요, 어머님이 믿고 보내셨잖아요. 아이와 어머님 덕분입니다." 그리고 다른 원장님들은 내게 물었다. "저 친구 입시생이에요?"
지금 그 아이는 베토벤 월광 소나타 전 악장을 연습하고 있다. 새로 연습하는 베토벤이 지겨울 때, 공부로 스트레스 쌓일 때, 혹은 심심할 때, 손 풀고 싶을 때, 연습실에서 수시로 들린다. <흑건>으로 자신의 마음을 달래는 아이의 반짝이는 연주. 아, 물론 그 싫어하던 체르니마저 사랑하게 됨은 말할 것도 없다. 체르니 40번을 기어코 끝까지 한단다. (사실 나도 40번 끝까지는 안쳤는데.)
이 이야기는 우리 학원 꼬맹이들에게 전설이 되었다. "그 이야기가 우리 학원에서 피아노도, 기타도, 드럼도 제일 잘하는 형이라고요? 거짓말!" 몇 년 전 피아노 아래로 숨었던 아이는 이제 정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