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에 나와 있는 대로 쳤는데 노래를 부르면 이상한 것 같아요."
나를 찾아오는 성인 수강생 중 많은 분의 하소연이다. 취미로 가요나 CCM 등을 연주하고 싶은데, 양손 악보가 모두 나와 있는 악보는 그냥 연주할 때는 괜찮은데 노래를 같이 하면 어색하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양손 악보가 다 나와 있는 악보는 멜로디(노래)와 반주가 모두 표기된 악보이다.
피아노로 멜로디를 하나하나 다 누르는데 목소리로 또 그 멜로디를 부르니 과유불급,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악기와 목소리의 포지션이 겹치는 상황이다. 실제 노래에 연주되는 악기의 악보는 굉장히 단순하다. 멜로디를 받쳐주는 분위기를 연주한다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내가 혼자 할 땐(독주)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보여줄 심산으로 최대한 많은 것을 표현해도 좋다. 음악을 풍성하게 하는 여러 가지 연주 기술을 연마해서 그 시간과 공간을 채우고 음악을 듣는 이의 귀와 마음에 멜로디가 흐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연주자일 것이다. 연주자는 번복할 수 없고 수정할 수 없는─흩어지는 민들레 홀 씨처럼─시간의 흐름을 타고 보이지 않는 마음속으로 흩어져 버릴 음들을 위해 악기와 1:1, 곧 나 자신과의 씨름에서 이겨내야 한다. 독주하는 연주자의 무대는 찰나에 화려하지만 그 화려한 시간을 위해 셀 수 없는 시간을 버티며 한 음, 또 한 음을 숱한 고민과 노력들로 눌러 담는 것을 연습한다. 그렇게 듣는 이는 그저 오롯이 아름답고 평안한 시공간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것,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것이 '연주'다. 하지만 반주는 다르다. 반주는 노래하는 주체를 다른 악기(또는 목소리, 몸짓 등)에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있다. 그리고 그 노래가 돋보일 수 있도록, 더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노래를 돕는 반주에 힘입어 더 자유롭고 온전한 노래를 표현할 수 있도록 장치가 되어준다. 시각적인 요소로 빗대었을 때, 반주는 곧 무대가 된다. 노래가 그 무대 위에서 마음껏 그 기량을 표현할 수 있도록 탄탄하고 안전한 무대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반주는 노래보다 자신이 돋보이도록 애쓰면 안 된다. 공기처럼 의식할 수 없도록 존재하다가 노래가 나비면 꽃이 되어 주고, 비라면 구름이 되어주고, 번개라면 천둥이, 새라면 바람, 꽃이라면 잎새가 되어주어야 한다. 반주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고 노래보다 더 돋보이려고 할 때, 그것은 풍성한 음악이 아니라 어울리지 않거나 오히려 없느니 못한 화음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반주는 노래가 마음껏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최고의 '조연'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연주와 반주'의 차이다.
그렇다면 반주가 연주보다 더 중요하지 않은 위치일까? 절대 아니다. 반주와 연주가 어우러져 노래해야 관객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하모니를 듣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반주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연주가 다르게 들릴 수 있을 만큼 그 어느 것도 둘 중에 더 낫고 덜 나음을 가를 수 없는 것이다. 목소리로 노래하며 악기를 연주할 때는 으레 생각하는 오른손으로 치는 멜로디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 가사가 잘 전달되기 위해서는 가만히 누르고 있거나, 아예 무성도 적절히 들어가야 한다. 반주하다가 답답함을 느껴 배우러 오신 분들에게 내려주는 솔루션은 '연주하지 않기'다. 최소한의 음만 치고, 방금 연주한 음 이전까지만 치고 멈추기. 누를까 말까 고민되면 누르지 않기.
처음에는 많이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한다. "손이 멈추니까 이상해요. 뭔가를 더 눌러야 할 것 같아요."라고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숙제를 내줄 차례. "직접 노래를 부르면서 연주해 오세요."
악보 보고 나온 코드를 전위해서 누르기도 정신없는데 노래까지 하라니. 너무 어려운 단계로 건너뛰는 것 아닐까? 정답. 어렵게 느끼도록 내주는 숙제다. 노래를 부르면서 연주하려니 연주를 많이 할 수 없다. 노래를 부르는 대로 오른손이 멜로디를 치기도 어렵다. 처음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내 노래와 반주가 동시에 들리는 순간이 온다. 목소리와 악기가 동시에 내는 화음이 들리면 스스로 멜로디가 연주할 자리를 만들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다.
아무리 해도 들리지 않는다면 노래하면서 연주하는 걸 녹음해 보자. 내가 연주하며 들었던 음악과 녹음한 음악이 다르게 들린다면 두 음악이 같아질 때까지 녹음하고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내가 상상하고 바라는 음악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내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을 때, 우리는 진정한 하모니를 이룰 수 있다. 그렇게 내 노래와 반주가 들린다면 이제 남의 노래에 나의 반주도 적절히 얹을 수 있다. 다른 악기의 멜로디에도, 또 다른 반주의 흐름에 내 노래를 연주할 수도 있다. 이렇게 우리의 노래는 연주여도, 반주여도, 그 자체가 조화로운 음악으로 흐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