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이사를 오면서 우리 학원으로 옮겼다. 체르니 100번 중간까지 레슨을 받았다고 책을 가지고 왔다. 수업을 시작해 보니 아이는 악보를 스스로 읽을 줄 모르는 상태였다. 계이름을 너무 많이 틀렸고, 틀리는 음들을 누르면서도 고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배우려는 의지까지 없지는 않았다. 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성실했다. 어떻게 체르니 100번 중간까지 왔는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아이와 악보 사이에서 원인을 찾고 있을 때, 아이의 보호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학원에서 대회도 준비하시나요? 이전학원에서 대회준비하다가 옮겨왔거든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운전 중에 전화를 받았는데, 보호자와 상담전화 중 그렇게 놀라본 일도 별로 없었다. 악보를 못 읽는데 대회라니? 그날 수업 중 아이에게 대회 나가고 싶냐고 물으니 아이도 그렇다고 했다. 그래. 아이도 부모님도 원하는데 준비시키는 건 내 몫이지.
나는 대회준비를 하면서도 진도를 병행해서 같이 나간다. 대회 준비기간만 한 달이 넘는데 그 시간 동안 기본 교재 진도를 놓아버리면 대회 준비하는 아이들의 진도가 너무 늦어지는 것이다. 진도를 빨리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성장하는 속도에 맞춰 기본 실력이 같이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회공지가 없더라도, 대회에 나가고 싶은 학생들은 먼저 대회곡을 골라 병행해서 연습하기로 했다. 어차피 대회가 열리는 시즌은 매년 비슷하고, 그전부터 악보를 찬찬히 읽다 보면 학생들도 부담 없이 기본기부터 테크닉까지 챙길 수 있으니 모두에게 좋았다. 전공을 하려는 것도 아니어서 부담은 덜고 준비할 수 있었다.
결과부터 먼저 말하자면 아이는 대회에서 아주 좋은 성적을 거뒀다. 기본 교재에서 계이름을 못 읽는데 더 어려운 대회곡을 잘 치는 아이러니라니. 그 원인 모를 괴리는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레슨내용을 책에 표시해주지 않는다. 대신 반복연습해야 되는 부분만 '동그라미 또는 별표', 손 끝 세우기를 내내 까먹는다면 악보 빈 곳에 '손 끝'정도 표시한다. 어떤 것을 더 연습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따로 레슨 노트를 만들어 참고해서 보게 한다. 그러면 아이는 학원에 오면 책과 레슨카드를 꺼내서 고쳐야 할 부분을 염두에 두고 악보 자체를 보고 연습하게 된다. 레슨 받을 때도 연습할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체크한다. 물론, 당연히 책에 계이름을 써준다거나, 조표를 표시해 주고 레슨노트를 안 쓰는 것이 내겐 훨씬 편한 일이지만, 아이가 악보를 보고 생각하고 고민할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 이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수고를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강사 시절, 나도 배운 대로 책에 색연필이나 연필로 악보에 표시하며 레슨을 했었다. 그런데 하루는 아이가 책을 안 가져와서 똑같은 새책을 주고 같은 곡을 연습하게 했는데 계이름을 잘 못 읽는 것이다. 나는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았다. 같은 악보인데 못 본다고? 그럼 내가 아이를 잘 가르친 게 맞나? 물론 모든 사람이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해 보시라.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면 악보를 스스로 볼 줄 아는지.
이후 나의 레슨의 목표는 단 하나. '선생님이 없어도 악보를 스스로 읽을 줄 아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되었다. 조표가 붙는 음표 머리마다 색칠해 주는 친절한 레슨은 아이의 스트레스는 덜어줄지 몰라도 스스로 악보 읽는 힘을 기를 기회를 빼앗는 결과가 돼버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진도가 너무 느린 것처럼 느껴진다. 박자도 세야 하고, 조표도 계속 기억해야 한다. 바이엘 떼는데 한참이 걸린다. 하지만 그 훈련이 내내 되고 나면, 체르니 악보부터는 더 잘하는 아이가 된다. 악보가 눈에 전부 들어오니 음악에 자신이 생긴다. 다른 악보도 막 연주해보고 싶다. 처음 보는 악보인데 어떻게 치면 되는지 다 보인다. 신나서 더 연주하게 되고, 실력은 쑥쑥 자란다.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것 같다. 꾹꾹 담겨있던 꽃잎이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터지듯 만발하는 순간을 보는 것 같다. 그래, 이 모습 보려고 우리 지름길 꾹 참고 걸어왔지! 이렇게 자라 고학년이 되면 피아노 연주가 스트레스 풀리는 취미로 자리 잡는다.
배우는 법이 바뀌어 힘들 법도 한데 (원래 처음부터 배우면 몰라도 중간에 방법이 바뀌면 더 힘든 법) 아이는 내색하지 않고 꾸준히 다녔다. 어느 순간 아이의 연습실에서 틀린 음이 들린다. 멈칫. 아이가 그다음에 어떻게 하는지 나도 귀를 기울여 기다린다. 몇 초가 지났을까. 아이가 틀렸던 음을 악보에 맞게 다시 눌렀다! 나는 뛰어가 문을 벌컥 열었다.
"너 이제 소리를 들으면서 치는구나! 스스로 틀린 음을 알아차리고 악보에 맞게 고칠 줄 알고! 정말 넌 최고야! 힘들었을 텐데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까지 자란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정말 소란스럽게 칭찬을 퍼붓는다. 괜한 칭찬이 아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선생님 없이 악기 앞에 앉아서 치는 막막함을 느껴본 사람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그 순간이 떠올라 소름이 돋는다. 아이는 호들갑 떠는 나를 보며 그저 싱긋 웃었다.
두 마디 진도 나가기가 며칠이 걸리던 아이가, 이제는 한 페이지쯤 그냥 연습해 온다. 정확히. 선생님이 연습해 올 분량을 내준 것보다 더 많이 연습해 온다. 또 나는 칭찬하느라 입이 아플 지경이다. 이렇게 행복한 고통이라니. 이제 아이는 악보에 표시해주지 않아도, 선생님의 응원과 자신을 스스로 믿는 믿음으로 힘 있게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