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치는 일이 커리어가 될 때
나는 즉시 성과가 나오지 않는 일을 하는걸 꽤나 어려워한다는걸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A를 하면 B를 얻을 수 있다” 혹은 “C를 만나면 D를 논의할 수 있다” 라는 확실한 아웃풋이 전제되어 있는 일이라면 어떻게해서든 해낸다.
그런데 “E를 하면 F가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지만 일단 한번 해보자” 라는 식의 일을 해야 한다면, 꽤나 두렵고 하기 싫어한다. 나는 불확실성을 굉장히 사랑하고 즐긴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렇지가 않더라.
이런 <하기 싫음>에 대해 며칠간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생각을 해보았다기 보다는, 결국 일을 미루면서 누워서 과자를 먹으며 멍때린 것에 가깝다.
뭔가가 의욕이 샘솟지 않아서 아주 확실하게 나를 놓아버리고 육체적인 휴식을 제대로 취했다.
정신적인 휴식은 아니었지만.
나의 하기 싫음 - 은 게으름이라기 보다는 불확실성에 대한 방어적인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일 자체가 싫다기 보다도 내가 일을 해서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내가 무능해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에 회피 기제가 발동한 것은 아닐까.
단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들은 내가 상황을 통제하고 있고, 직접 좌우하고 있다는 쾌감이 즉각적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해야하는 프로젝트나 업무들은 시간, 시장, 타인의 선택에 그 결과를 맡기게 되는 경우도 많다.
내 통제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니 불안이 커지는 것이다.
결국 나는 통제가 가능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막연한 것을 결국 나는 두려워했던거다.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피드백은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실하게 이해하고 나면 결과를 밀어붙이는 힘이 빠르고 정확하고 강하다” 라는 것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동기부여가 명확하지 않을 때에는 실행력이 약해진다는 것.
조직에 있으면서 어떻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만 나의 영감을 찾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겠는가.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서 성과를 내야 하는 시장에서는 내가 스스로 나의 동기를 만들어서 끌고가는 인내력과 지구력, 근력이 필요하다.
내가 짜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결국 잡무에서 오는 반복적인 행위가 아니라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을 뚫고 헤쳐나가야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안개를 잘 헤쳐나가서 나의 커리어를 잘 빚어낼 수 있을거라고 확신한다.
다만 아직 이 구름속에 있을 때에는 앞이 보이지 않으니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나중에 터널을 지나고 나면 정말 스릴 넘치고 짜릿했어 - 라고 기억할 것을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