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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Gray Apr 03. 2020

코로나와 차별

COVID-19 판데믹으로 프랑스 전역에 이동제한조치가 내려진 지 이제 3주째가 되어간다.


외국인 거주자로서, 첫 두 주가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잠시 프랑스에 들어왔던 여행객 뿐만 아니라, 한국인 유학생들, 주재원, 교민들까지 근심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부모님께서는 서른이나 먹은 딸자식이 여전히 안쓰러우셨는지, 통화 할 때마다 들어오라, 아파도 들어와서 아파라 하셨다. 내 귀국 문제로 두 분이서 다투기도 하셨다. 영상통화를 할 때면 엄마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계셨다. 나는 귀국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질병력이 있으셔서 걱정되는 것도 있었고, 귀국하는 거나 여기에 남는 거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나마 룸메이트랑 단 둘이서 방을 쓰는 상태라 여기 머물러도 괜찮겠다 싶었다. 혼자 살았다면 아팠을 때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까 귀국했을 것 같고, 셋 이상 같이 살았다면 높은 감염위험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으니 귀국했을 것 같다. 부모님이 슬퍼하시면서 들어오라 하실 때마다, 이토록 다양한 개별적 사정들은 사라지고 외국에서 귀국했다는 하나의 사실로 한국에서는 죄인이 된다는 사실이 새삼 가깝게 다가온다. 별로 놀랍지는 않다. 이 논리는 프랑스에서도 지겹도록 겪고 있으니까. 내가 전세계에서 방역시스템의 모범으로 꼽히고 있는 나라 출신이라는 사실은 프랑스인들에게 별로 중요치 않다. 중요한 사실은 내가 아시안이라는 것. 마스크를 쓴 아시안이라는 것. 외국에서 귀국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잠재적 감염자로 여겨지는 것처럼, 여기서는 아시안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잠재적 감염자로 여겨진다. 미국 일부 젊은이들은 코로나바이러스를 베이비붐세대 제거기(Boomer remover)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는 본인의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코로나로 죽었으면 싶은 나이 많은 부머가 있을 뿐.


코로나 때문에 유럽, 미국 등 소위 선진국들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는 기사가 자주 보인다. 어느 국가의 보건 시스템, 방역 시스템이 생각보다 엉망진창이었다는 현실진단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건 차별이다. 이 차별이라는 놈이 국가나, 성별, 인종, 연령을 초월해서 존재한다는 적나라한 사실이다. 코로나가 세상에 존재하던 모든 형태의 차별을 분출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나와 남을 구별 지을 수 있는 어떤 사소한 거라도 상관없다는 듯이, 너무 무섭게, 너무 빠르게, 그리고 너무 강력하게 차별이 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명사회의 일원으로서, 차별을 '비도덕'으로 교육받아왔던 모든 이들을 비웃듯이 말이다. 이런 재앙적 상황에서 차별은 어쩌면 생존본능인가,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구호는 결국 야만과 구별되는 문명인 척 하기 위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을까. 집에 갇혀 있어서 그런지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난 후의 사회가 무섭다. 난 한국인으로서, 동양인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코로나 사태 이 전이나 이 후나 변하지 않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건만 사회 역시 그렇게 받아들여줄까. 암묵적 도덕규율이 깨져버린 이 후에도, 눈치도 차별도 거의 받지 않았던 지난 유학 시기처럼, 그렇게 지낼 수 있을까. 나 뿐만이 아니다. 차별의 가해자도, 차별의 피해자도,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화해하며 전과 같은 사회적 약속에 동의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코로나가 지난 질병들과 다른 양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이 전염병이 인간사회에 남긴 사회적 상흔을 뜻하는 거라 생각한다. 


집 앞 주차장에서 30분 정도 햇빛을 쐬는 시간을 빼면 온종일 집에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히는 일이 많다. 차별이 있다는 걸 알아도 어쩔건데? 라는 질문도 종종 한다. 그 질문에 계속 대답을 찾으면서 사는 건 어떨까 상상해본다. 그럴려면 예상보다 공부를 더 오래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재난영화에서만 봤던 판데믹으로 내 진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숙고해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역시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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