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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Gray Jun 26. 2021

중요한 일들을 자꾸 놓치게 되는 것

(지난 5월에 쓴 글)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간다.


졸업을 앞둔 지가 한달.


그 와중에 결혼을 한 친구들도 많이 생겼고, 아이가 생긴 친구도 있고, 승진을 한 친구도 있다.


내 시간이 흐르는 만큼 부모님의 시간도 흘렀다. 늘 아침 8시면 직장에 나가던 아버지가 은퇴를 하셨고, 어머니는 잠이 일찍 깬다며 매일 새벽같이 절에 나가 108배를 하신다. 동생은 벌써 직장인으로서 6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나를 예뻐해주시던 친척 어르신 중 한분이 얼마 전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셨다.


겨우 서른이라고 생각했다.

이십대와 다름없이, 나를 둘러싼 세상은 늘 큰 변함없이 비슷하게 돌아가겠거니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도 모르게 가장 최선의 시나리오만을 생각하고 살았나보다.


아직도 나를 예뻐하셨던 작은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등학교 영어 교사셨던 할아버지. 아홉살 먹은 내게 '영어를 잘해야 한다. 앞으로는 영어를 잘해야 기회가 많이 오는 세상이 올거다'하신, 열여섯 먹은 내게 '서울대 앞에서 이 할아버지가 플랜카드를 들고 서있으마. 꼭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 가거라' 라고 응원하시던 할아버지셨다.


공부에 늘 열정적이셨던 당신은 아들 셋을 정말 서울대로 보내셨고, 그 아들들은 고시를 합격하고, 하버드로 유학을 가고, 누가 봐도 참 자식을 다 잘 키우셨구나 했다.


서울로 간 아들들을 따라 대학로 근처에 자리를 잡고 그 곳에서 10년 넘게 사시면서, 오며가며 만나는 학생들과 대화하는 게 삶의 큰 낙이라고 하셨다. 독일어를 잘하는 할아버지로 소문났다며 손사래를 치곤 하셨는데, 실은 당신은 독일어를 할 줄 모른다고 하셨다. "인사 몇 마디 할 줄 아는 게 무슨 언어를 잘 하는 거라고. 언어를 할 줄 안다는 말을 그렇게 쓰면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여전히 언어에서만큼은 꼬장꼬장한 생각이 그대로셨다.


유학을 떠나기 전 찾아뵈었던 외할아버지는 당신이 참 외롭다고 하셨다. 성공한 아들들은 각자의 일을 하느라 너무 멀리로, 멀리로 가버렸다고.


그 뒤로 나는 몇 년간 할아버지를 찾아뵙지 못하였고, 그 시간 사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외롭다 하셨던 그 때가 외할아버지에 대한 나의 마지막 기억이 될 줄 몰랐다.


좋은 시절에 함께 좋아하지 못하고, 슬픈 시절에 함께 슬퍼하지 못하는 이방인이 되버리고 말았다. 값어치로 따질수 없는 일들이 자꾸 생기면서, 내가 도대체 얼마나 큰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이 먼 땅에서 말 같지도 않은 개고생을 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지낼 땐 몰랐던 많은 고마움들과 그리움들이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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