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결핵은 가장 대표적인 호흡기 감염병으로, 기침, 가래, 콧물 등을 통해 전파된다. 그러나 결핵 잠복기에는 증상이 없기 때문에 감염 여부를 잘 파악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결핵균은 주로 폐에 영향을 미치지만, 다른 장기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발견되기도 하며 급성일 경우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
결핵이 무서운 이유는 사실 지난한 치료과정에 있다. 일반적으로 다제요법이 필요해, 2~3종 이상의 약을 한번에 복용해야 하며 매일 정해진 시간에 6개월 이상을 꾸준히 복용해야 치료가 가능하다. 또한 약이 굉장히 독하고, 잘못된 복약은 약제내성결핵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복약지도사와 함께 꾸준히 복약 및 부작용 상황을 점검해야한다.
결핵은 HIV나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과 같이 면역 체계가 약한 사람이 걸릴 확률이 높다. 또한, 지난 연구에 따르면 빈곤, 비위생적인 주거환경 및 근무환경 등과 높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결핵은 '가난한 자의 질병'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또한, 오랜 치료 과정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라는 오명을 갖게 되었다.
이 낙인이라는 것이 실제로 어떻게 전염병을 더 빠르고 무섭게 전파시키는 지 실제 사례를 가지고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몇 년 전 결핵협회와 몽골지역에서 결핵퇴치사업을 한 적이 있다. 몽골지역은 통계적으로 아시아에서 4번째로 결핵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나라다. 특히, 몽골은 한창 개발이 진행되는 곳들이 많아 현장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결핵이 급속하게 전파되고 있다. 여기에 보건개입을 하기 위해서 WHO에서 권장하는 DOTS(direct observed treatment, short course)라는 치료전략을 도입했는데, 말 그대로 복약요원이 매일 적시에 환자가 약을 복용하는 것을 직접 관찰하고 지도하는 치료법을 말한다. 따라서 복약요원이 환자의 집에 매일 방문하여 약 복용을 지도할 수 있도록 지자체, 의료진, 복약요원 간 협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 치료전략이 현장에서는 거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 치료법을 거부하는 환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뷰 조사를 해보니, 복약요원이 매일 집에 드나드는 모습을 보면 온 동네 사람들이 자신이 결핵환자라는 것을 알게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나왔다. 지자체, 의료진, 복약요원 그 누구도 생각하지도 못한 '낙인'의 문제가 병의 치료를 막는 요인이었다. 환자들은 그런 식으로 치료받기를 원치 않아했다.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과거의 유목문화, 집단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한번 낙인이 찍히게 되면 그 커뮤니티에서 쫓겨나게 된다는 공포심 같은 게 있었다. 또한 완치가 된다고 해도 한번 찍힌 낙인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완치 후에도 커뮤니티에 다시 통합되기가 매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많은 결핵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참고, 숨기고, 음지화하는 쪽을 택했다.
사회학자 Erving Goffman은 이 같은 '낙인'을 이론화한 학자인데, Stigma(낙인)는 한가지 속성과 고정관념을 연결지은 개념으로, Stigmatization(낙인화)를 당한 사람은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차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핵에 관해서도 이 같은 낙인화를 연구한 결과들이 많은데, 결핵의 전염성이나 치료에 대한 잘못된 지식,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집단과 결핵을 연결짓는 풍토가 결핵환자들을 낙인화여 결과적으로 치료를 어렵게 만들고 전염을 가속화 시킨다고 설명한다. 고프만 같은 학자들의 주장은 이론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고증이었다.
충격적인 경험이어서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 많은 이해관계자들, 그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치료전략이라고 세운 것이 단지 그들만의 리그였고, 정작 환자들은 치료전략에서 빠져있었던 거다. 사회학자 Strauss는 효과적인 의학 치료를 위해서는 환자와의 협상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질병의 궤적(trajectoire de la maladie)에 있어서, 의료전문가, 의료기관, 가족, 환자 등과 같은 관련 행위자 간의 상호작용과 그들 간의 협상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Strauss의 관점에서 보면, 결핵 DOTS 치료전략은 결핵환자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치료협상의 과정에서 그들을 배제했기 때문에 애초부터 실패할 내재적 위험이 있었던 거다.
결핵에 대한 낙인화는 늘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향해있다. 지난 학기 레포트 주제로 프랑스, 영국, 벨기에에서 발간된 지난 20년간의 뉴스에서 결핵과 관련된 기사를 수집해 조사해봤더니, 2005년 난민 사태가 있기 전까지 결핵은 주로 도시빈곤지역의 거주민들과 연관지어졌는데, 난민 사태이후로 결핵을 이민자들과 연관짓는 기사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실제로 열악한 환경에서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에 결핵이 그들을 중심으로 퍼지는 게 사실이라 할지언정, 그들이 전염병의 원흉이라는 것처럼 주객전도 형태로 낙인 찍는 것은 공중보건의 관점에서도 매우 잘못된 행태다.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 잘못이 아니라, 걸릴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잘못이 있는거다. 환자를 탓해서는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는다. 환자가 병에 걸릴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을 돌아봐야, 후에 있을 지도 모르는 똑같은 보건재난 상황에 대한 대비가 가능하다.
이 같은 결핵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현재의 코로나 사태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전염병 환자에 대한 낙인, 환자가 잘못했기 때문에 병에 걸린 것이다 라는 식의 프레임은 몽골의 사례에서처럼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더욱 숨기고 은폐하게 만든다. 결핵보다 전파력이 훨씬 빠르고, 무증상 기간도 긴 코로나의 경우, 이렇게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숨기기 시작하면 전염병 통제는 점점 더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역학조사로 환자들의 동선을 모두에게 밝히는 것이 동선이 겹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발적인 검사를 받도록 유도하기 위한 좋은 취지의 전략이나, 한편으로는 환자를 낙인찍는 것에 빌미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이 전략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일으킬 지 여러모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도 든다.
*Goffman E (1975) Stigmate. Les usages sociaux des handicaps. Les éditions de Minuit, Paris
**Strauss A (1992) L’hôpital et son ordre négocié, in Baszanger I., La trame de la négociation, L’Harmattan,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