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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Gray Dec 15. 2020

치료에 관해 생각해 볼 문제들

치료에 대한 사회학적 해석

한국은 노령인구의 한의 이용 비율이 굉장히 높다. 이에 대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인들이 한의을 이용하는 주요 이유가 ‘의사가 무시하지 않고 친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때문’이라고 나타났다. 나이가 들어 자신의 증상을 빠르고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노인들은 환자가 많이 몰려 바쁜 일반 클리닉보다 상대적으로 환자가 적어 여유로운 진료가 가능한 한의을 (자발적으로 또는 어쩔 수 없이) 선호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환자의 특성에 따라 의료접근성이 의도적/비의도적으로 제한된다. 둘째, 환자는 전문가 집단에 의해 수동적으로 치료되는 객체가 아니라, 주도적으로 치료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주체이다. 이러한 해석들은 치료가 고정불변의 기계적 행위가 아니라 여러 요인들 간의 상호작용에 의한 종합적인 산물로 보는 관점에 기반한다. 이처럼 치료행위를 둘러싼 여러 행위자들의 속성 및 관계에 대한 연구는 보건사회학에서 다루어지는 중요한 연구 주제 중 하나다.


과거, 치료행위는 주로 의학적 관점에서 전문가의 지식 및 실천의 총집합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960-1990년대에 들어 치료행위를 둘러싼 메커니즘에 대한 새로운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일반인(문외한)의 관점에서 바라본 건강과 의학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치료 행위에 있어서 객체로 여겨지던 환자뿐만 아니라 변화가 없는 고정적인 집단으로 여겨졌던 환자 가족에 대한 새로운 관점 제기되었다. 또한 환자-의사의 수직적인 권력관계에 대한 대응으로, 일반인-전문가 간의 상호 작용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치료에 대한 여러 행위자들의 영향은 개인 수준과 집단 수준 두 가지 관점에서 분석이 가능하다.


개인 수준에서, 환자들의 프로필 즉, 연령, 성별, 나이, 직업, 경제력 등이 치료 행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관련된 재미있는 연구가 하나 있다. 20,000명의 프랑스 인구 샘플을 대상으로 프로필에 따라 개인이 사용하는 용어를 분석한 연구인데, 실제로 응답자들이 '당신의 질병과 아픔을 주로 어떤 식으로 표현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프로필에 따라 다르게 대답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신의 질병을 표현할 때 여성인지, 남성인지, 청년인지, 노인인지, 소득이 얼마인지, 직업 분류가 육체노동자인지 지식노동자인지 등등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다.*


이 결과는 70년대  Luc Boltanski의 "신체의 사회적 사용(usage sociaux du corp)"이라는 유명한 논문에서 나온 고전적인 주장과도 일치한다. 즉, 자기 자신의 신체에 대한 해석은 그 사람이 속해 있는 사회적 포지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볼텐스키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를 '미학적' 관점에서 아름답고 건강하게 유지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반면,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를 '경제적' 관점에서 최상의 육체노동을 생산해내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위의 한국 한의학 사례에서 보았듯이, 개인의 질병을 표현하는 방식, 고통에 대한 해석 등은 개인의 프로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이 같은 표현의 차이와 한계로 인해 특정 인구가 다른 인구에 비해 치료 관계에서 소외(객체화)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특히, 표현의 한계를 보완해주는 주변인(주로 가족)이 없는 노령 인구나 정신지체 환자의 경우, 치료 관계에서 주체적인 역할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편, 인구의 질병에 관한 언어 사용을 분석한 저자들은 동일 논문에서 이와 같은 개인의 프로필 또는 사회적 포지션에 따른 단순화접근에는 분명한 한계와 무수한 예외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개인 수준 분석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접근법으로, 집단 수준의 분석이 있다. 집단 수준의 분석은 주로 기능주의와 상징적 상호작용이라는 두 가지 사회학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전개된다.


기능주의 관점은 사회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고, 그 안의 구성체들은 이 사회 시스템이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 해석한다. 기능주의 시각에서, Talcott parsons는 의사의 역할 그리고 환자의 역할 역시 사회 시스템의 일부라고 보았다. 그러니까 누가 아프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상태이고, 많은 사람들이 아플수록 사회가 제기능을 못하니까 빨리 질병을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환자와 의사의 유일하고도 중요한 역할이라는 거다. 동 관점에서는 가족 또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하나의 구성요소로 본다.


기능주의 관점에서 보면, 의사-환자 관계, 환자-가족의 관계 등 치료를 둘러싼 여러 행위자들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고정적이다. 파슨스에 따르면, 의사-환자의 관계는 동일한 목적(질병의 치료)을 추구하기 위한 고정된 관계에 가깝다. 가족 역시 구성원의 질병 치료를 위한 보조 역할을 수행하는 고정적인 집단으로 본다. 그러나 환자의 선택권에 대한 논의, 환자 가족들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등장하면서 기능주의 이론은 한계를 마주하고 있다.


기능주의와 달리, 상징적 상호작용 이론은 질병 치료에 관여하는 여러 행위자들 간의 관계에 집중한다. 히, 상호주의 관점은 기능주의 관점에서 고정적인 집단으로 여겨진 가족에 대한 풍부한 해석을 제시한다. 대표적으로, Viviana Zelizer는 가족 간의 돌봄 및 가족 간의 유대를 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그녀는 경제적 관점에서 가족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는 기존의 해석을 비판하며, 가족 간의 금전적 거래행위가 가지는 관계적 의미에 대한 면밀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녀는 가족 구성원이 아플 때 그를 돌보는 것은 필연적으로 경제적 질문을 수반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가족이라는 이유로 가족 내 돌봄 노동, 치료를 위한 금전적 지불 등에 대해 논의하기조차 꺼려한다는 것은 가족 내 돌봄 노동에 대한 가치 절하라고 비판했다. 그녀의 주장은 넓은 관점에서 가족 내 돌봄 행위가 ‘기능적으로’ 당연한 일이 아닐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역사적으로 돌봄 노동을 제공해 온 여성의 일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가족 구성원의 질병은 한 가정의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인 희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족 내의 다양한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환자-가족 간의 관계에 대한 단편적인 ‘규범즉, 가족은 아픈 가족 구성원의 회복을 위해 기능해야 한다라는 주장은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폭력적인 정서로 다가올 수 있다. 환자를 둘러싼 행위자들 간의 관계가 당위의 영역에서 정의될 경우, 이상적인 관계로부터 벗어난 많은 수의 예외들은 죄책감과 결핍이라는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물리적인 접근성뿐만 아니라 개인의 특성에 따라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치료에의 접근이 제한되는 경우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의료접근성을 높이는 작업은 어쩌면 병원 하나 세우는 일, 의사를 많이 배출하는 일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일일지도 모른다.




*Béliard A. et Eideliman J.-S., 2014 « Mots pour maux. Théories diagnostiques et problèmes de santé », Revue française de sociologie, 55, 3, p. 507-536.

*Boltanski L., 1971, « Les usages sociaux du corps », Annales ESC, 26, 1, p. 205-233.

*Bonnet D., 1999, « La taxinomie des maladies en anthropologie : aperçu historique et critique », Sciences sociales et santé, 17, 2, p. 5-21.

*Herzlich C., 1969, Santé et maladie. Analyse d’une représentation sociale, Paris, Éditions de l’EPHE/Éditions Mouton.

*Uta G., 1990, « Models of illness and the theory of society: parsons’ contribution to the early history of medical sociology », International sociology, 5, 3, p.337-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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