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오랫동안 유학을 하다보면, 사람이 가장 우울에 취약해지는 시기에 대한 감이 생긴다.
그게 바로 9월을 넘어가는 지금에서 11월 찬 바람이 불어올 때 까지인데, 바로 지금이 우울이 다가오는 첫 시기이다.
이 시기에 다가오는 우울을 조심해야 한다.
나는 프랑스 생활을 한지 3년이 넘어가던 작년 즈음, 그 우울의 시기가 강하게 왔었다.
10월 한달 간, 두문불출하고 집에서만 보냈다. 이따금 눈물도 났다. 이유는 알 수 없었는데 그냥 노래만 들어도 눈물이 났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저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게 전부였었다. 밥 먹는 것도 귀찮아서 몇 끼를 건너 뛴 적도 많았다. 우울증을 어떻게 해서든지 이기려 든다는 것 조차도 의지가 있어야 하는거다. 그 당시에 나는 그럴 만한 의지조차 없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의 정취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11월이 되면 오후 5시쯤 부터 깜깜한 밤이 찾아온다. 지는 낙엽을 볼 새도 없이 깜깜한 밤이 찾아오니, 오히려 우울한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때부터 다시 연구실도 가고, 친구들도 만나고, 생활의 루틴도 찾았다.
다시 돌이켜보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우울할 이유가 무언가. 이런 저런 부연설명을 할 순 있었지만, 궁극적인 이유는 찾지 못했다. 그냥 그랬다. 그냥 우울했다.
그럴 수도 있구나 사람이.
특별한 이유 없이도 그냥 세상 무너지듯 우울할 수 있는 게 사람이렸다.
올해는 그러지 않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일단 돈을 내고 운동 프로그램을 끊었다. 작년에는 내는 돈이 아까워서 집 앞에서 그냥 조깅을 하면 된다 생각하고 혼자 운동을 했었다. 그러다보니 동기도, 유인도 없어서 쉽게 운동을 포기해버렸다. 그래서 올해는 돈이 아까워서라도 간다 생각하려고 큰 마음 먹고 5개월 치 프로그램을 끊었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일주일에 두번씩은 움직이게 되니, 그야말로 효과적인 예방책이다.
좋아하는 순간을 더 즐기려고 한다. 카페에서 맛있는 라떼를 마시는 게 인생의 낙인 사람인데, 작년에는 바쁘다 어쩌다 그런 이유들로 잘 가질 않았다. 올해는 주말이면 라떼가 맛있는 카페를 찾아서 투어를 다니려고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주말에 혼자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줄었다. 그만큼만 해도 우울증을 예방하는 데 좋은 것 같다.
웃긴 사람들을 많이 본다. 유튜브에 보면 태생이 즐거움인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물론 그조차도 꾸며진 모습일 지 모른다. 그러나 어떠랴. 보는 내가 느끼기에 상대방은 인생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이니 말이다. 그로부터 받는 에너지가 있다. 와, 별 것 아닌 것 같아보이는 순간에도 이렇게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만한 깨달음에도 우울이 오는 것을 예방해주는 효과가 있다.
장기간 유학을 하다보면 우울에 직면하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 순간을 이겨낼 필요도 없다. 그냥 흘러가게 놔두기만 해도 된다. 프랑스어에서는 이런 태도를 laissez-passer 라고 한다. 그야 말로 그냥 흘러가게 놔두길, let it go 하라는 말이다. 이런 저런 시도들을 해보면서, 그냥 지나가게 두자. 언제고 우리는 우울을 털어내고 다시 일어서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