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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Gray Mar 29. 2019

삶의 균형에 관한 이야기

한동안 글을 쓰질 못했다. 

프랑스 도착 후 지금까지 줄곧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기초적인 것조차 혼자 힘으로 해결이 안 되니 뭘 다른 걸 할 생각조차 못한 것 같다. 어떻게든 말을 배우고 사는 법을 익히는 게 먼저였으니까.


그렇다고 또 마냥 괴롭고 힘든 시간의 연속은 아니었다. 프랑스인들의 삶의 방식이라던지, 여러 사연을 안고 프랑스에 온 한국인들의 이야기라던지 흥미로운 것들도 많았다.


여행과 사는 것은 굉장히 다른 터라,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았던 처음과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사뭇 다른 감정들이 많이 느껴졌다. 이 곳에 살면서 자유로움보다는 자연스러움을 많이 느꼈다.


한국에서의 나는 집-학교 또는 집-회사, 그리고 간혹 변주로 집-카페를 오가는 게 전부인 사람이었는데 역시나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단조로운 동선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기막히게 다이내믹한 활동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외국 친구들이 몇 생겼고, 줄어가는 잔고 덕택에 한국에서보다 아껴 살게 되었다는 것 빼고.


한국에서의 일상과 이곳에서의 일상이 크게 다른 점은 없으나 난 여기 와서 단 한 번도 억지로 버티며 살아 본 적이 없다.


언어를 배울 필요가 있으니 학교를 가고, 외식비가 너무 비싸니 집에서 음식을 해 먹고, 시간은 많은 데 오락거리는 없으니 띄엄띄엄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한국에서는 돈을 모아야 한다기에 억지로 눈을 떠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고, 억지로 시키는 일을 하다가, 혹여나 자기 계발에 밀려날까 퇴근 후 억지로 공부를 하곤 했다. 모든 게 참 억지스러웠다. 뭔가를 늘 버텨야 했다. 


그때는 직업인이었고 지금은 백수 비스무리하니, 당연히 단순비교는 불가능하다. 밥벌이는 고단함은 어디나 다를 바가 없을 테니. 어디가 더 낫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은 건 아니지만, 좀 의문이 들긴 했다.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자연스럽지 못하게 살았을까? 왜 그렇게 쫓기듯 살았을까. 오히려 살림살이는 돈을 벌던 그때가 더 나았을 것이고, 직장인이라는 신분은 어쨌든 지금의 만학도 신분보다야 훨씬 안정적이었을 텐데. 뭐가 그렇게 사람을 안달하며 살게 만들었을까.


프랑스의 인상적인 점은 제도도, 사람들도 어떻게 해서든지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퇴근 후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에서 요리를 하는 게 일상이고, 주말이면 가족들과 식사하면서 여섯 시간이고 일곱 시간이고 한자리에서 이야기를 한다. 퇴근 후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해도 크게 늦은 귀가가 되지 않고, 몸이 안 좋다면 쉬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인지 삶이 참 자연스럽다.


물론 이로 인한 단점도, 또 이와 다른 한국의 방식이 가지는 장점도 굳이 짚지 않아도 모두들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두 방식을 모두 살아보니 결국은 환경보다는 선택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분위기가 숨 막히긴 하나, 그 안에서도 쫓기듯 살지 않는 방식들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에 살아도 한국적 방식을 추구한다면 아무리 제도와 사회적 분위기가 다르다 한들 한국에서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어떻게 먹을 건지,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 분위기에 못 이겨 뛰쳐나온 주제에 이제서야 그 안에서도 나름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다니. 배신자가 된 기분은 어쩐지 지울 수가 없다. 맞다. 이 이야기는 상사가, 친구가, 심지어 가족들이 뭐라 하든 말든 개X마이웨이를 할 수만 있다면 한국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 뭐 그런 말과 다름없긴 하다. 이제 보니 역시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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