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이다.
달력에 표시해 둔 것처럼
내 머릿속에
선명한 날.
미리
압박을 해 왔지만,
이번엔 어떨까.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하며
잡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퇴근하고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띡. 띡. 띡. 띡
현관문이 열렸다.
그는 빈손이었다.
'괜찮아.
사실
기대는 없었거든.
다만,
꽃 한 송이어도
행복했을 거야.
그 기억으로
지루한 일상을
버틸 수 있었을 텐데.'
날 보고 멈칫하고
다급하게 나간 그.
'밖엔 비가 마니와.
이미 늦었어.
이 저녁에 문 연 곳이
어디 있겠어.
그저 소소하게
웃고 싶었는데,
힘들기만 한 집안일에
내가 웃을 일은 별로 없거든.'
설거지하며
졸졸 흐르는 물소리만
적막함을 깰 뿐.
조용하다.
그 순간
철컥하고,
문이 열렸다.
습기 찬 안경,
비에 젖은 생쥐가 되어
신문지에 싸인
새빨간 장미 한 송이를 든 채로,
그가
왔다.
수줍게 건넨
그 꽃 한 송이에
한숨은
사라졌다.
그제야 비로소
서로의 눈 속에
미소가 담긴다.